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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May 29. 2020

내 천직을 찾는 데 딱히 쓸모 없는 질문

책 <다크호스> 리뷰 1. 나는 장표 그리는 걸 잘 하는 사람인가?

대학 졸업. 한 회사 안에서 보낸 10년. 그리고 입사 후 처음으로 휴직을 신청하면서 나는 INFP 답게 아주 이상적인 계획을 세웠다. 모처럼 회사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나 있는 기회인만큼, 다시 사무실로 돌아오기 전까지 나의 내면을 충분히 성찰해서

    - 내가 어떤 일을 제일 잘 하는지

    - 내가 어떤 일을 제일 좋아하는지

이번만큼은 확실하게 정리해보자. 그래서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가면 좋을지 구체적인 커리어 패스를 세워보자!!! (*뭐든 시작할 때는 의욕 넘치는 타입)


토드 로즈와 오기 오가스 공저의  『다크호스』는 그런 취지에서 내가 휴직을 시작하자마자 처음으로 꺼내든 책이었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무척 만족스러운 답을 나에게 제시해주었다.



자기계발서. 책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이 단어는 의도치 않게 종종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한다. 고전문학이나 인문교양서는 멀리한 채 자기계발서에만 중독된 독자가 있는가 하면 자기계발서를 현명하게 읽어가며 인생을 멋지게 살아내는 독자가 있고, '자기계발서' 라는 다섯 글자를 대놓고 경시하며 저는 자기계발서는 절대 읽지 않아요 라는 말을 은근한 자랑처럼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나는 따지자면 세 번째 유형에 가까운 사람이다. 한 사람의 성공을 법칙化 하고, 나처럼만 해! 내 비결만 따라하면 너도 성공할 수 있어! 라고 호언장담하는 책을 보면 반감부터 생긴다. 이런 데서 말하는 성공은 보통 CEO가 되거나 돈을 많이 벌거나 둘 중 하나로 귀결되고는 한다. 나는 이런 글을 읽을 때마다, "아 다 귀찮아 나는 별로 CEO가 되고 싶지도 않고 사장이 되고 싶지도 않은데?" 라며 딴청을 피우고는 했다.


(살아가는 방법이 단 하나이고, 성공하는 방법도 단 하나라면 세상 모든 일이 참 쉬워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다크호스』의 저자들은 어떤 법칙도 세우지 않는다. 대신, 사람들의 '개개인성'을 강조한다. 참 막연한 단어인 '성공'의 정의도, '일'이나 '꿈'의 정의도, 그리고 그것에 다가가는 방법과 전략도 사람들마다 다 다르다고 말한다.


우리의 목표는 당신이 세계 최고가 되도록 도와주려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그런 목표는 오히려 역효과를 낼 때가 많다. 우리의 목표는 세계 최고가 아닌 최고의 당신 (the best version of yourself)이 되도록 돕는 것이다.
충족감을 주는 환경은 사람에 따라 다르다. 사람마다 저마다의 관심사와 욕구, 희망이 다르기 때문이다. 다크호스들은 어떤 일에서 우수해짐으로써 충족감을 느낀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일에 깊이 몰입하면서 충족감을 느꼈다.  제니 맥코믹은 망원경으로 멀리 떨어진 세계를 응시하며 충족감을 느낀다. 앨런 룰로는 근사한 옷을 만들면서 충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서로 직업을 바꾸게 한다면 두 사람 모두 별 충족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책에서 말하는 다크호스는 매일 매일 일에 깊이 몰두하며 충족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미래의 어느 시점에 '일을 잘 하며 승승장구하게 될 나'를 상상하며 오늘은 어금니 꽉 물고 참고 일하는 사람이 절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당장 내가 매일 일에 몰입하며 나답게 즐겁게 일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일까?


바로 에게 충족감을 주는 일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에, 내가 10년 간 헤매었던 이유가 있었다. 열쇠는 나의 "장점"이 아닌 "동기"를 찾는 데 있었다. 나는 그 동안 잘못된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1. 장점 찾기 : 나는 ppt 장표 그리는 걸 잘 하는 사람인가?

"작년까지는 그래도 내가 중간 이상은 한다고 생각했는데, 올해부터 일하게 된 팀 사람들하고 비교해보니 아무래도 실력이 많이 부족한 것 같은데."


장점은 앞서 살펴봤던 동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미시적 동기는 중심적 정체성의 한 부분이라 영향력이 대단하고 변화에 저항한다. 우리의 뇌는 그 구조상 동기를 아주 직접적으로 안다(체감한다). 사실 갈망을 초대한 적도 없는데 우리의 의식으로 슬쩍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특정한 열망이나 욕구나 꿈은 하나하나 다 구별하지 못하지만 미시적 동기들의 미묘한 차이는 언제든 성찰을 통해 감지해낼 수 있다. 뭔가를 원할 때는 그것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스카이다이빙을 하고 싶거나 뱀장어 초밥을 먹고 싶거나 마블의 최신 영화를 보고 싶을 때는 확실히 안다. 하지만 동기들이 확실한 지침을 주는 것과는 달리, 장점은 파악하기 어렵고, 맥락적이며, 역동적이다. 다시 말해, 장점은 불분명하다.


장점은 상대적이고, 파악하기 어렵다.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잘 하는 사람인가?

- 5년 전에 내가 속했던 팀 안에서 나는 말을 잘 하는 편에 속했지만, 휴직 전에 속했던 부서 안에서는 상대적으로 그렇지 못했던 것 같다. 나는 임기 응변에는 약한 편이였지만 꼼꼼하게 사전 준비할 시간이 있었던 회의 안에서는 하고 싶은 말을 불편함 없이 전달할 수 있었다. 임원 보고, 혹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자리에선 무대공포증에 덜덜 떨었지만 나는 다양한 사람들의 말을 인내심 있게 듣고 정리하는 일은 곧잘 했다.


나의 장점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라고 말 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예시 1)
하지만 10년 넘에 쉴 새 없이 이런저런 정무 활동에 몸담고 보니 자신의 원래 동기가 예전에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다고 깨닫기 시작했다. (중략) 바로 정리 직무였다.

그녀는 딱 보면 구분하기 쉽게 모든 책에 색색의 라벨을 붙여 책장에 꽂아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어지럽게 흩어져 있거나 너저분한 모습을 보면 다시 가지런히 정리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상관이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말을 늘어놓아도 그 요점을 민첩하게 정리하는 재주도 남달랐다. 그녀의 두뇌는 고속 원심분리기와 같아서 정보가 입력되면 중요한 내용과 쓸데없는 내용을 재빨리 분리할 줄 알았다.

정치적 직무에서 그녀가 특히 좋아했던 활동은 블룸버그의 시장 선거 캠페인 중에 대중집회를 준비하던 일이었다. 자율권이 주어져, 사람들을 배치하고 홍보를 구상하고 행사를 포괄적으로 기획하면서 정말 신이 났었다. 워싱턴 DC에서 여러 잡다한 정치적 업무를 맡았던 기간 중엔, 현장방문 총괄직을 맡아 대통령의 현장방문 세부 일정을 편성하는 일은 즐거웠지만 정치관련 조사 업무를 맡거나 브리핑 보고서를 작성해야 했을 때는 그다지 열의를 느끼지 못했다.


예시 2)
하지만 미시적 동기의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아직도 더 깊이 파고들어가야 한다. 조류 관찰자인 알바로는 아주 짧은 순간에 스쳐 지나간 빛깔을 흘끗 보고 나서 시각적으로 새의 종류를 구분하는 것에서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같은 조류 관찰자이자 미국탐조협회의 주력 잡지인 [버딩Birding]의 편집장 테드 플로이드는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를 듣고 청각적으로 어떤 새인지 구분하는 방식에서 강한 동기가 생긴다. 머리속으로 새소리의 특징을 감별하는 그의 능력은 굉장히 수준이 높아서 어떤 새소리가 들리든 간에 음의 파형까지 그려낼 수 있다. 그가 그려낸 음파는 초음파 장비에서 기록된 실제 파형과 어긋나는 경우가 없다. 테드는 노랫소리를 듣고 새를 알아맞히는 일에서 실존적 의미를 느낀다.


→ 내가 했어야 하는 질문은 이렇다 :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인가?



나는 10년 간 일하면서 즐거움을 느꼈던 순간을 얼마든지 나열할 수 있다.


- 회사 임직원을 대상으로 뉴스레터를 작성했을 때 나는 무척 즐거웠다. 그 중에서 뉴스레터에 들어갈 내용들의 목차를 구상하고 그 달의 주제가 된 서비스의 기획자들과 인터뷰하는 일을 할 때는 콧노래가 나왔다. 뉴스레터를 발송한 뒤에 실제 읽은 직원들에게 "유익한 내용이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와 같은 피드백 회신을 받았을 때는, 너무나도 신이 나서 내적 비명을 지른 후 메일을 영구 보관함에 전달해두었다.


- 부서에서 장기적인 사업 아이템을 찾는다며 팀원 한 명씩 책을 직접 선정하여 읽고 내용을 정리하는 작업도 내가 가장 재미있게 한 일 중 하나이다. 읽고 싶은 책이 너무도 많아 행복한 고민에 빠졌고, 결국에 고른 책을 정리하느라 흔치 않은 야근을 하면서도 나는 혼자 사무실에 남아 시간이 가는 줄을 몰랐다.


- 단순 노가다도 내가 즐겨 하는 일 중 하나였다. 물론 매일 하루 종일 같은 일만 하는 건 싫지만, 가끔 방대한 엑셀 데이터를 정리할 일이 있으면 세 시간이고 네 시간이고 같은 자리에서 작업을 즐기기도 했다. 시스템 운영 업무에 있어서도 (시스템 역량이 충분히 갖춰져 있지 않았을 때) 단순 Drag & Drop을 백 번 넘게 반복해야 하는 작업을 하며 모두가 불만을 털어 놓을 때, 나는 무척 즐겁게 몰두하며 일에 빠져들었다.


내가 매일 즐겁게 임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서, 내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지 마케팅을 잘하는지, 자료 분석을 잘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나를 신나게 만들었던 '미시적인 동기'들을 열거하는 일이었다.




※글이 길어져서 세 편으로 나누어 올릴 예정입니다.

- 그 동안 나를 헤매게 했던 잘못된 질문 2 : 나는 숫자 감각이 없는데 서비스 기획 업무를 계속 해도 괜찮을까?

- 나를 헤매게 했던 잘못 던진 질문 3 : 나는 10년 후, 20년 후에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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