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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Jun 04. 2020

누군가의 성공담

책 <다크호스> 리뷰 2. 숫자 감각이 없어도 기획자가 될 수 있을까?



휴직 기간 중에 마냥 늘어져만 있을 수는 없어 HSK (중국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네이버의 중국어 공부 카페에 가입해서 합격 수기를 여러 개 찾아봤다. 학원은 꼭 다녀야 한다, 아니다 독학으로도 충분하다, 문제를 많이 풀어라, 단어를 많이 외워라. 역시나 방법은 수십수백 가지였다 (그렇다고 후기를 수 백개나 찾아본 건 아니고...)


계획 세우는 데 너무 머리 쓰지 않고 싶어 일단 단어장 하나와 '한 권으로 모두 정복할 수 있다는' 문제집 한 권을 샀다. 요즘 문제집은 참 친절해서 문제집 서두에 30일 학습 플랜, 40일 학습 플랜을 취향 별로 선택할 수 있게 제시해준다. 나는 야심 차게 30일 학습 플랜을 선택했다.


공부를 한 지 5일째 되었을 때는 단어 플래시카드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주 째 되었을 때는 오답 노트와 헷갈리는 표현 정리하는 노트를 만들었다. 문제를 풀고 단어를 외울수록, (그리고 외운 단어를 반복 학습하는 과정에서 이전날 학습한 단어를 까먹을 때마다) 더 챙겨야 할 공부 방법들이 눈에 보였다.


HSK 시험에는 듣기, 독해, 그리고 쓰기가 있는데 나는 독해 문제에 꽤 강했다. 지문에 모르는 단어 투성 이어도 어쨌든 맥락을 파악해 답을 '찍으면' 대부분 정답이었다. 그런데 유형 별 연습문제를 다 풀고 마지막에 실전 Test를 보니 제한 시간 안에 문제의 절반도 풀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동안 내가 독해에 유난히 강했던 건, 연습문제에서 시간을 재지 않고 충분히 오래 고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시간제한이 있는 실전에선 도통 쓸모가 없는 비법이었다. 그래서 독해 문제가 많은 문제집을 한 권 더 구입했다.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공부를 하든, 소설을 쓰든, 여행 계획을 세우든 ;

성공적인 화장품 마케터가 되기 위해, 모바일 커머스 서비스 기획자가 되기 위해, 창업을 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일과 사이드 프로젝트를 병행하기 위해 준비하든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단 한 가지 방법은 없다. 나에게 맞는 방법이 있을 뿐. 그 방법은 나만 안다. 뭐라도 시작해봐야지만 찾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든 필수 자격 조건도 없다. 아니 베토벤은 귀까지 멀고도 운명 교향곡을 작곡했다고 하는데!


회사 생활 10년 동안 나는 하고 싶은 일이 생길 때마다 꼭 한 번씩은 자기부정의 단계를 맞닥뜨려야만 했다.


'사업 개발 (Biz Development) 업무가 하고 싶은데, 다양한 업체들을 만나 협상을 이끌어가기에 나는 말빨과 임기응변에 너무 약해. 서비스 기획 업무를 해보니까 재미있는데, 나는 숫자 감각이 너무 없는 것 같아... 경영경제연구소에서 연구원이 되려면 아무래도 꼭 석사나 박사 학위를 따야만 하겠지?'


(그렇다고 일을 하면서 늘 자기 연민에 빠져 있었던 것만은 아니다. 나는 되려 자신감도 있고 신이 나서 일을 하는 쪽이었지만, 회사에 출근하는 매일매일 내가 의도한 결과를 기대해서는 안될 일이었다. 남 탓할 것도 없이 내가 덤벙대다가 실수하고 내가 현명하지 못해서 일을 그르쳤을 때, 나는 그 후 며칠 동안 자기 연민의 나래를 펼치며 이 일이 정말 나한테 잘 맞는 일인지, 혹시 내가 더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이 따로 있는 데 내가 엉뚱한 데서 헤매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하며 허우적댔다.)



  내가 나의 미시적인 동기들을 찾아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았을 때, 나보다 앞서서 그 일을 잘 해내고 있는 사람 (롤모델)의 성공 사례와 후기들을 세세히 분석하고 나와 비교하며 나의 성공 가능성을 점칠 필요는 없다. 모두에게는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따로 있을 뿐이니까.


와인을 블라인드 시음해서 각각의 와인을 알아맞히고 구성 성분을 정확하게 평가해야 하는 과제에서, 꼭 후각이 유난히 민감한 사람만 시험을 통과하는 건 아니듯이 말이다. 아래부터는 토드 로즈와 오기 오가스의 공저 『다크호스』에서 모두 발췌했다.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겼는데, 누군가 먼저 정해놓은 기준 혹은 자격 요건에 내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지레 포기하지는 않겠다고, 작은 용기를 내어본다.




- 블라인드 와인 테스팅을 합격하려면?

마스터 소믈리에 자격증 시험은 이른바 '자질 검증 시험'으로, 소믈리에가 실제로 일하게 될 직무 환경과 똑같은 환경에서 소믈리에로서의 필수 기량들을 평가한다.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진 단계인 시음 시험에서는 6종류의 와인을 블라인드 시음한 후 각각의 와인을 알아맞히고 그 구성성분도 정확히 평가해야 한다.

이 시험의 응시자 대비 합격 비율은 5퍼센트 정도에 불과하다.

이미 짐작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 시험에서 대다수 응시생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문은 시음 시험이다. 시음 능력이야말로 다른 직업과 소믈리에 직업을 구분하는 핵심 재능이다. 마스터 소믈리에가 되려면, 아주아주 난해한 기량을 키우기 위한 효과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효모의 작용으로 일어난 포도의 변화들을 맛과 향으로 가려낼 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이 시험에 합격할 가능성이 가장 높을까?



브래핸은 아주 민감한 후각을 가진 복 받은 사람이다. 그는 어릴 적 층층나무의 "정신 못 차릴 정도의 냄새"를 맡지 않으려고 온갖 애를 썼는데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그 나무의 미묘한 냄새를 거의 맡지도 못했다. 브램은 이런 큰 이점을 타고난 것뿐만 아니라 농촌에서 자라면서 와인 구별에 유용할 만한 아주 다양한 냄새도 접했다. 그래서 전문가로서 와인을 평가하기 시작했던 초반에 와인의 구성성분을 대체로 직관적으로 가려낼 수 있었다. 시음 시험을 대비한 그의 연습 전략은 간단했다. 자신의 직관적인 후각 능력을 시험에서 요구되는 추론적 시음 방법에 융합시켜, 드라이함이나 산도 등 와인의 여러 특징들을 정확히 감별해야 하는 시험 방식에 맞게 적응시켰다.


에밀리는 브래핸과는 달리 종류별 개별 성분들보다는 전체적 정체성에 집중했다. "어떤 냄새를 아주 자주 맡다 보면 너무 익숙해져서 굳이 분석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건 그거야.'라고요. 저는 잔 안에 코를 갖다 대고 캘리포니아산 피노 누아를 냄새를 맡으면서 '흠, 이 와인에서는 익은 빙 체리, 감초, 오크 향이 나네.', 하는 식으로 생각하지 않아요. 그냥 '와, 이건 캘리포니아산 피노 누아잖아.' 라거나 '그래, 이건 론 북부 지역산의 시라야. 딱 그 와인이네.'라고 생각해요. 에밀리는 그녀의 말마따나 몸으로 기억하는 '머슬 메모리' 전략으로 첫 번째 도전에서 시음 시험을 통과했다.


반면에 파스칼린은 다소 별난 시험 준비 전략을 썼다. 그녀는 평생 철학에 애착을 느꼈고 프랑스에서 박사 과정을 밟으며 플라톤과 앙리 베르그송의 형이상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와인은 '왜 그럴까'라는 원인 분석에서 재미를 느끼는 저의 탐구 정신을 충족시켜줘요. 와인의 풍미에는 언제나 그런 풍미가 나는 원인이 있고 저는 철학적 추론을 활용해서 그 원인을 찾아내요. 화학, 생물학, 물리학, 사회학, 지질학, 지리학, 그리고 심지어 언어학과 형이상학의 지식이 필요한데, 그쪽 방면이라면 제 특기죠. 와인 시음은 물리의 옷을 입은 철학이에요. 그래서 와인 시음이 아주 손쉬웠어요. 그 지식들을 서로 연결시키기만 하면 돼요.



- 천문학자가 되려면 수학은 '기본 자질'이라고?

천문학은 수학 의존도가 높은 분야다. 케플러 방정식으로 행성 궤도를 규명하고, 멀리 있는 별에서 오는 전자기 방사선의 탐지와 해독에 맥스웰 방정식을 활용하며,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론 방정식으로 은하계의 움직임과 백색왜성, 블랙홀을 설명한다. 그런 만큼 모든 대학원의 천문학 과정에서는 미적분학과 선형 대수, 미분 방정식 과목을 통과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제니 맥코믹은 기초 삼각법도 배우기 전에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 입사 10년 만에 첫 휴직을 내자마자 다시 꺼내어 읽은 책,『다크호스- 토드 로즈, 오기 오가스』의 리뷰는 세 편으로 정리하여 올릴 예정입니다.

1. 내 천직을 찾는 데 딱히 쓸모없는 질문 - 장점 말고 동기 찾기.

2. 누군가의 성공담 - 나는 그 사람처럼 숫자 감각이 없는데 서비스 기획 업무를 계속해도 괜찮을까? (해당 편)

3. 나는 10년 후, 20년 후에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궁금하지 않아 (업데이트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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