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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Jan 02. 2020

파인애플 볶음밥의 반의어는 무엇일까요?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로 시를 읽고 쓰다

오래전에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을 읽었습니다. 작가의 자전적인 소설인데 사실 줄거리는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아요. 그런데 그중에 제가 모서리를 접어둔 페이지의 내용은 아직도 꽤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워낙 좋아하는 부분이라, 그동안 함께 책을 읽는 친구, 함께 글을 쓰는 친구들과 여러 번 공유했었거든요.


저희는 그때 희극 명사, 비극 명사 알아맞히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이것은 제가 발명한 놀이로, 명사에는 모두 남성 명사, 여성 명사, 중성 명사 등의 구별이 있는데 그렇다면 희극 명사, 비극 명사의 구별도 있어야 마땅하다. 예컨대 증기선과 기차는 둘 다 비극 명사고 전철과 버스는 둘 다 희극 명사다. 왜 그런지를 이해 못하는 자는 예술을 논할 자격이 없다. 희극에 하나라도 비극 명사를 삽입하는 극작가는 이미 그것 만으로도 낙제. 비극의 경우도 똑같다는 논법입니다.

"자, 준비됐어? 담배는?" 제가 묻습니다.
"비 (비극)."
호리키가 일언지하에 대답합니다.
"약은?"
"가루약이야 알약이야?"
"주사."
"비."
"그럴까? 호르몬 주사도 있는데 말이야."
"아니야. 단연코 비지. 주사 바늘이라는 게 우선 훌륭한 비 아닌가?"
"좋아. 인정해주지. 그렇지만 자네, 약이나 의사는 말이야, 그래 보여도 제법 희라고. 죽음은?"
"희 (희극). 목사도 중도 그렇지."
"아주 잘했어. 그리고 삶은 비지."
"아니, 그것도 희."
"아니야, 그렇게 되면 모든 게 희가 돼버려. 그럼 하나 더 묻겠는데, 만화가는? 설마 하니 희라고 하지는 않겠지."
"비, 비. 대비극 명사."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민음사


저는 위의 대목에서, '약'의 희비를 결정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먼저 가루약인지 알약인지를 질문하고, 주사라고 했을 때는 호르몬 주사와 주사 바늘이라는 연관 속성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비'라고 결론 내리기까지 서로 주고받고 하는 과정이요.


같은 원목의 식탁이라고 하더라도,
신혼부부의 점심 식사가 한 상 크게 차려지는 식탁은 희,

애인이 떠나고 혼자 남아 간소하게 끓여 먹는 라면이 놓인 식탁은 비 가 될 것입니다.

식탁을 앞에 두고 온 가족이 각자 핸드폰만 쳐다보고 있다면 그 핸드폰은 비

그러나 방전되어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 핸드폰은 희가 되겠네요.


그럼 핸드폰 충전기는 희일까요 비일까요?



그 당시 저는 그 비슷한 유희를 또 하나 발명했습니다. 그것은 반의어 맞히기였습니다. 검정의 반의어는 하양, 그러나 하양의 반의어는 빨강. 빨강의 반의어는 검정.
"꽃의 반의어는?"
내가 물으면 호리키는 입을 일그러뜨리고서 생각하다가 대답합니다.
"에에, 화월이라는 요릿집이 있으니까, 달."
"아니야. 그건 반의어가 아니야. 오히려 유의어지. 별과 제비꽃도 유의어잖나? 반의어가 아니라고."
"알았어. 그러면 꿀벌이다."
"꿀벌?"
"모란에... 개미던가??"
"뭐야? 그건 그림의 모티프라고. 얼버무리려 들면 안 되네."
"알았다! 꽃에는 떼구름."
"달에 떼구름이겠지."
"그래, 그래. 꽃에 바람. 바람이다. 꽃의 반의어는 바람."
"졸렬하군. 그건 나니와부시 가사 아니야. 출신을 알만하군."
"아니, 비파다."
"더 졸렬해. 꽃의 반의어는 말이야... 이 세상에서 가장 꽃 같지 않은 것, 그것을 들어야지."
"그러니까, 그... 잠깐. 뭐야, 여자군."

<인간 실격> - 다자이 오사무, 민음사


위의 내용은 일본의 문화적인 배경과 일본어의 상용어가 섞여 있어서, 한국어 사용자로서 대화의 논리를 온전히 따라가기는 어려웠습니다. 어쨌든 한 명이 꽃의 반의어를 맞추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데, 꽃과 관련된 그림, 꽃의 단어(화 花)가 들어가는 요리집, 꽃이 들어가는 가사를 떠올리며 계속 답으로 꽃의 유의어를 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문제를 내는 쪽이 '이 세상에서 가장 꽃 같지 않은 것'을 들라고 말하자 '여자'라는 (출제자가 의도한) 정답을 맞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반의어는 무엇일까요? 저는 무관심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쓰기의 반의어는요? 글쎄. 망각, 아닐까요?


아침의 반의어는요?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빈 워드 화면의 반의어는요?

파인애플 볶음밥의 반의어는 뭘까요?



단어에 희 / 비의 속성을 정해주는 일,

반의어를 찾아주는 일이 어쩌면 시를 쓰고 읽는 일과 조금은 닮지 않았을까 짐작해 봅니다.


그리고 단어에 온도를 부여하는 일도요. 얼음장처럼 차가울지, 식은 커피처럼 미지근할지, 손가락을 가까이 대기만 해도 열기가 느껴질지 상상해보는 거예요.

단어에 온도, 맛, 기분, 날씨, 색깔, 냄새, 이름을 지어주는 일이 모두 시를 짓는 일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2020년 1월 2일,


저의 오늘 하루는 따끈한 차돌박이 쌀국수 같았어요. 편안한 사람들과 몇 시간이나 함께 글을 썼거든요. 제가 좋아하는 고수를 듬뿍 넣어 국물이 진하고 향긋했습니다. 당신의 하루는 어땠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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