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펫 청소로 삐끗한 허리 - 영국생활 9

자책감의 한 알

집주인이 자랑처럼 소개한 5년 된 카펫은 눈으로 보기에 아주 깨끗했다. 카펫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카펫이랑은 달랐다. 이 카펫은 가정용 침실이나 거실에 까는 카펫으로 러그와는 다르다. 방 크기에 맞춰 시공하는 바닥재였다. 카펫을 밟고 지낼 때 내가 영국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불편한 몸을 최대한 엎드려 벌레가 기어 나니지는 않는지 뚫어지게 쳐다본 적도 있다. 평생을 걸레로 닦은 온돌바닥에서 살고 온 나에게는 이상하게 카펫이 불편했다.


교회 사모님께 들은 이야기지만, 영국에서 태어난 자녀들은 한국에 방문했을 때 가장 불편해하는 것이 오히려 카펫이 없는 바닥이었다고 하셨다. 문화 차이라는 게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 살다 보니, 내 몸에 밴 생활 습관들은 많이 보수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중에 카펫을 물로 빨 수 없다는 사실이 가장 답답했다. 그래서 나는 청소기를 이용해서 자주 청소를 했다.


임신 6개월 차였을 때, 카펫 청소를 하다가 허리를 다치고 말았다. 영국 청소기는 카펫과 맨바닥을 따로 청소할 수 있도록 기능이 분리되어 있다. 그래서 청소를 할 때마다 사용 목적에 따라 버튼을 눌러서 바꿔줘야 한다.


그날은 왜 그랬을까? 성격이 급한 나는 나무 바닥을 먼저 청소하고, 방에 들어가서 카펫 청소를 한 것 같다.


청소기 바닥이 카펫을 집어 먹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고, 나는 순간 더 큰 힘을 주며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 힘껏 밀었다. 서로 두 힘이 부딪치고 청소기는 움직이지 않았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내 몸은 나아가려 했지만, 나아가지 못하고 버티게 되면서 순간 삐끗하고 말았다.


그 시간 이후로 나는 일주일 이상을 일어나지 못했다. 내 허리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움직일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화장실을 갈 때도 몸을 옆으로 돌려서 일어난 후 무릎을 땅에 대고 기어서 화장실을 갔다. 아픈 강도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정도였다. 이미 배는 불러 있었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급한 마음에 함께 예배를 드리던 의사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임신 6개월이 넘었으니 비교적 안전한 파라세타몰(Paracetamol)을 먹으라고 알려주셨다.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고, 혼란스러웠다. 24시간 중 24시간의 고통을 견디며 버티다가 결국 나는 파라세타몰을 꺼내어서 먹었다.


임신 기간 내내 자책감과 죄책감, 그리고 불안함을 안겨 준 또 하나의 기억이었다. 약을 삼킨 건 단순히 고통을 견디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 순간부터 나는 매일같이 스스로를 다그치고 있었다. 하지만 견딜 수 없는 고통 앞에서의 한 알은 나의 최선이었다.


그리고......최선이었지만 선택의 후회가 항상 따라붙었고,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복잡 미묘한 감정으로 그림자처럼 남아있다. 또, 출산 이후 아이들이 어느 정도 자랄 때까지 내 허리는 쉴 새 없이 다치고 아프기를 반복하며 나는 진통제에 의존하게 된다.



keyword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08화영국 할머니들의 거품 설거지 - 영국생활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