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 방문
영국에서 병원을 가려면 먼저 집 근처 GP(General Practice, 동네 주치의)에 등록해야 한다. GP의사는 특정 분야의 전문의가 아니라,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어느 병원, 어떤 전문의를 찾아가야 할지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보통 환자들은 이들을 그냥 '닥터(Doctor)'라고 부른다. 등록을 했다고 해서 곧바로 의사를 만나거나 진료를 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런 시스템이 처음에는 답답하고 의사를 빨리 만나지 못해 불안함이 크게 다가왔다. 등록 후 보통 7일에서 15일 정도는 기다려야 하고, 진짜 운이 나쁘면 한 달 넘게 대기해야 할 때도 있다. 그래서 허리를 다쳤을 때는 의사 기다리다가 진료를 못 받은 적도 있다.
나는 산부인과 전문의를 만나기 위한 절차로 우편으로 지정받은 GP를 방문했다. 영국에서 처음 가는 GP라 많이 떨리고 겁이 났었다. 병원은 꽤 컸고 GP는 따로 떨어져 있었다. GP는 낮은 1층 건물이었는데, 넓고 고급스럽게 꾸며져 있어서 첫인상이 참 좋았다. 예약제로 운영해서인지 건물에는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대기실은 한산하고 넓고 쾌적했다. 우리는 곧바로 안내받고 방으로 들어갔다.
안내받은 방이 닥터를 만나는 곳인 줄 알았는데 또 다른 대기실이었다. 그곳은 마치 개인 응접실처럼 예약자 가족이 대기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바깥 숲이 한눈에 들어와서 숲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 숲을 보자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조금씩 풀리면서 안정되는 것 같았다.
초조한 마음이 조금 진정됐을 때 나는 드디어 GP의사 '닥터'를 만날 수 있었다. 넓은 병원에서 우리 가족만을 위한 시간이 주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고, 예약자를 존중하는 의료 시스템이 놀라웠다. 이때 나는 처음으로 '역시 영국은 선진국이구나'하는 생각이 들게 되었던 것 같다. 특히 임산부를 배려하고 준비된 의료 시스템은 감동이었다. 그곳은 내게 영국이라는 낯선 땅에서 안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믿음을 심어 준 첫 번째 장소였다.
첫 아이는 서울에서 출산했기에 이미 한국의 의료 시스템을 경험해 본 상태였다. 그래서 영국에서의 경험은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한국에서는 크고 유명한 병원을 먼저 검색해 찾아갔고, 막상 병원에 들어서면 늘 주차 문제부터 부딪혔던 기억이 남아 있다.
GP 의사를 만나면 검사에 앞서 무엇보다 대화가 먼저다. 이 점에서는 솔직히 한국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느껴졌다. 한국에서는 검사를 먼저 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진료가 빠르고 명확하게 진행된다. 반면 영국은 긴 대화로 상황을 파악한 후에 검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환자가 기억을 정확하게 하지 못하면 결과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나도 그랬으니깐.^^
진료 내내 의사는 웃음을 잃지 않았고, 나를 다정하고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건네는 부드러운 목소리도 잊을 수 없는 기억 중 하나다. 그리고 의사는 함께 온 딸아이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진료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산을 넘은 하루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