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할머니들의 거품 설거지 - 영국생활 8

싱크대에서 본 작은 문화충격

영국에서 내가 처음 배운 건 언어도, 문화도 아니었다.

의외로, 설거지였다.


한국 교회가 바스(Bath)에는 없어서 처음 한 달은 브리스톨(Bristol)까지 가서 예배를 드려야 했다. 하지만 입덧이 점점 심해져 차를 오래 탈 수 없게 되었고, 더 이상 교회를 가지 못했다. 브리스톨에서 함께 예배를 드렸던 바스 교인들이 한국 목사님을 찾아서 목회를 부탁드리게 되었다.


바스에서의 첫 예배는 안식년으로 머물던 최교수님 댁 거실에서 드렸다. 함께 기도하고 말씀을 나누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일주일 내내 가족끼리만 지내다가 주일마다 같은 민족을 만나 한국말을 섞으며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우리 모두에게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회복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한국 학생들에게는 한국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목사님께서 예배 장소를 찾으시는 기간 동안 잠시 그렇게 우리는 주일을 최교수님 댁에서 따뜻하게 보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큰 홀이 있는 건물을 빌려서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되었다. 홀이 넓어서 예배가 끝나고 나면 각자 싸 온 음식들을 나눠 먹고, 넓은 홀에서는 다 같이 운동도 하고 아이들과 재미나게 놀았다. 여섯 가정에 공부하는 학생까지 그래도 북적북적한 공동체였다.


남자들이 무거운 책상과 의자를 정리하는 동안 여자들은 설거지를 했었다. 우리 예배 전에 영국 할머니들의 커뮤니티가 있었기 때문에 할머니들께서 늘 먼저 설거지를 하고 계셨다. 그런데 나는 그곳에서 작은 문화 충격을 겪었다. 할머니들의 설거지는 놀라웠다. 그건 설거지가 아니었다. 속으로 너무 놀라고 인상이 찌푸려지면서 어떻게 표정관리를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할머니들은 수세미에 세제를 듬뿍 묻혀 거품을 내고는 접시를 열심히 닦으셨다. 그리고는 거기서 끝이었다. 헹굼은 없었다. 순간 너무 놀랐지만 놀란 기색을 하지 못하고 당연히 나도 다 아는 것처럼 서 있었다. 세제가 접시에서 미끄러지듯이 뚝뚝 떨어지는 장면을 멍하니 보면서, 머릿속은 온갖 상상을 했었던 것 같다.


'왜? 왜 저러시지? 다시 씻으시겠지. 에이 설마..... 말리고 다시 씻으시는 걸까?'


혼자 멍하게 서 있던 나에게, 사모님께서 가까이 다가오셔서 속삭이듯 알려주셨다. 영국은 물 값이 너무 비싸서 설거지를 할 때 물로 헹구지 않는다고 하셨다. 그렇게 세제가 뚝뚝 떨어지고 자연스레 마르면 깨끗한 티 타월(tea towel)을 이용해서 깨끗하게 닦고 찬장에 넣는다고 하셨다. 알고 나니 영국여인들의 삶의 지혜(?)이자 절약 정신임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국에 살면서도 나는 끝내 그 거품 설거지를 따라 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학창 시절에 유럽 가수들의 떡진 헤어스타일이 그렇게 멋져 보였는데, 직접 살아보니 물 절약 정신의 비밀이었다. 멋있어서 따라 하고 싶었는데 하하,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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