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친구 1호
어느날 고물같은 내 폰으로 모르는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교회 아시는 분 소개로 전화드렸어요."
"아......네......"
"저는 브리스톨에 살고 있고, 저도 아이 셋을 키우고 있어요. 영국에 온지 얼마 안 됐고, 혼자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잘 지내고 계신지 궁금해서 전화를 드렸어요."
남편 외에 누군가 나에게 사적으로 전화를 건 사람은 처음었다. 어안이 벙벙했고 조금 설레기도 했다.
그녀의 이름은 현진이다. 우리는 그렇게 전화 한 통으로 처음 만나게 되었다. 알고 보니 나와 동갑이었고, 그녀도 세 아이의 엄마였다. 나는 둘째를 임신하고 있었다.
현진이의 목소리는 따뜻했다. 전화를 끊고 잠시 어리둥절했다.
'왜 전화를 했을까?'
영국에서 처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걸려 온 전화에 좋은 줄도 몰랐고, 계속 왜 전화했는지 궁금했다.사실 남편 외에 의지할 곳 없던 나에게 생명수 같은 목소리였다. 그 한 통의 전화가 지금까지 우리를 연결하고 있다.
며칠 뒤, 또 한 번의 전화가 걸려왔고, 이번에는 직접 만나기로 했다. 장소는 현진이가 정했는데, 바스와 브리스톨 사이에 있는 멀버리 팩토리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화를 끊고 남편에게 조심스레 말했다. 주말에 그 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남편도 처음에는 어리둥절 했지만 교회 아시는 분을 통해서 연락이 온거라 믿을 만 했기 때문에 우리는 주말에 함께 가보기로 했다. 그렇게 주말에 우리는 멀버리 팩토리를 찾았고, 그곳에서 현진이를 처음 만나게 되었다.
현진이는 활짝 웃으며 나를 반겼고, 우리는 숍 안을 둘러보며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눴다. 그 사이 남편들도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먹하지만, 왠지 곧 친해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역사적인 그날 하루를 함께 보냈다.
그날 기억에 남는 또 하나는, 근처 피시앤칩스(Fish and Chips) 맛집이 있다고 안내를 해서 같이 갔는데 하필 그날 문을 닫아서 맛보지 못했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이후로 우리는 종종 만나고, 가끔 전화를 하며 그렇게 조금씩 우정을 쌓아갔다.
이 만남을 뭐라고 설명을 하면 좋을 지 아직도 잘모르겠다. 기도교적 시선으로는 하나님께서 이끌어 주신 것밖에는 설명이 안되는데, 우리는 서로 그 말을 감히 쉽게 꺼내지 못한다. 하지만 분명하다. 현진이의 용기가 아니었다면, 나는 인생의 친구를 얻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껏 해외에서 오래 살아왔지만, 나는 현진이처럼 누군가에게 손을 내민 적은 없다. 아이 셋을 키운다는 핑계로 내 삶도 벅찼고, 각자 잘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현진이도 아이가 셋이었고, 그녀는 실행을 했다.
그렇게 현진이는 15년이 지난 지금도 '영국 친구 1호'다. 영국에서 2호 친구는 없다. 내가 프라하로 갔을 때는 현진이는 가족들과 다 함께 프라하로 여행을 왔었고, 내가 베를린에 2022년 1월에 도착했을 때는 2월에 짐 정리하는 거 도와준다고 영국에서 나를 보러왔다. 그리고 내년 2월에 또 베를린에 올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현진이는 처음 내게 전화를 했을 때 어떤 마음으로 전화를 했을까?’
물어보면 아마 ‘그냥’이라고 담담히 대답할지도 모른다.
내년 2월에 오면 나는 다시 15년 전의 기억을 끄집어 내서 함께 대화를 나누고 싶다.
벌써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누군가를 떠 올리고 생각하고, 기억하는 일은 참 행복하구나.
p.s 첨부한 사진은 현진이가 베를린에 왔을 때 함께 했던 점심 식사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