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시부터 시작되는 어둠 - 영국생활 6

우울증과 회복의 눈물

영국의 바스는 아름답고 아름다웠다. 로만 바스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남아있는 도시, 특별한 돌로 세워진 집들과 쌓아 올린 담, 푸른 숲은 그림책에서 보던 것처럼 이뻤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나는 이사 후에는 새로운 삶에 조금이나마 안정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평온은 나에게 오지 않았다. 11월이 되자 찾아온 영국의 이른 어둠은 쉽게 적응되지 않았다.


우리 동네는 오후 3시 30분만 되어도 금방 칠흑 같은 어둠이 시작되었다. 칠흑 같은 어둠이란, 오후 4시쯤이면 달빛도 별빛도 없는 그런 어둠이다. 세상이 문을 닫아버린 듯한 어둠 그 자체였다. 한국에서만 살다 온 내가, 오후 4시부터 시작되는 영국의 짙은 어둠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어둠이 내려앉으면 아이는 일찍 잠들고 남편은 공부하러 방으로 들어갔다. 영국 사람들도 그 시간은 아이들도 모두 잠들고 어른들은 맥주와 축구를 즐기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그 시간은 온전히 혼자 견뎌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른 오후부터 시작된 어둠이라 밤은 길고도 길었다. 나는 식탁 의자를 창가로 옮겨 앉아 창 너머로 보이는 어두운 바깥을 구경했다. 인적도 드물고 차도 드문 텅 빈 도로에 가로등 하나만 서 있었다. 그때 가로등이 나의 친구가 되었다.


대부분의 밤은 가로등 불빛만 보일 뿐이었다. 가로등이 서 있는 어둠을 보는 순간부터 그냥 눈물이 났었다. 산전우울증과 산후우울증이 함께 온 듯했다. 둘째를 임신한 몸은 무겁고 스트레스도 많았다. 이 땅에 온 것이 후회가 되었고,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는 생각은 슬프고 답답했다.


낮에 파란색 비행기가 보이면 '대한항공' 비행기가 한국으로 가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는 자유롭게 날아서 한국으로 가는데 나는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었다. 갈 수 없다고 생각하니 공황장애까지 왔었다. 답답하고 무기력해졌지만 억지로라도 힘을 내어 아이를 돌보고 집안일을 했다. 남자든 여자든 결혼하고 가족이 생기면 없던 힘도 끌어오는 힘이 생기나 보다.


이제는 아침에도 햇살을 보기가 힘들었다. 집 밖은 춥고 마땅한 외출복도 없어서 나와 딸은 거의 집에만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자 하루 동안 해가 반짝하고 뜨는 날이 있었고, 그런 날은 분주했다. 나는 미친 듯이 빨래를 널고, 미친 사람처럼 아이를 데리고 공원으로 나갔다. 그렇게 나는 첫 아이를 위해 날씨 좋은 날은 무조건 공원에 나갔고, 아이를 위해 정말 최선을 다했다.


서른세 살이나 된 딸이 엄마가 보고 싶어 소리 없이 엉엉 혼자 울었다. 매일매일 밤마다. 엄마를 불러보며 매일 밤, 눈물을 흘리며 그렇게 나 자신을 회복시키기 위한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눈물은 내 우울의 처방전이었다.


입덧은 갈수록 심해지고 아이를 돌볼 수 있는 기력이 없어서 우리는 딸을 남편의 학교에 있는 유치원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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