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된 카펫은 새것
며칠 만에 우리 집으로 이사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남편이 구한 집은 2층 플랫(Flat) 건물의 2층으로 햇살이 잘 들어왔다.
우리는 옷가지만 챙겨 이사했다. 집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좁지만 나무 바닥이 깔린 작은 복도식 거실, 카펫이 깔린 방 세 개, 타일로 꾸며진 부엌 하나 그리고 화장실 두 개. 겉에서 볼 때는 작아 보이던 건물이 막상 안으로 들어가니 훨씬 넓었다.
영국에 신기했던 것이 바로 이 점이다. 건물 밖에서 집을 볼 때는 아담한 집인데, 안으로 들어가면 현관, 응접실, 부엌, 거실, 그리고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까지 1층만으로도 제법 넓게 구조되어 있다. 그리고 1층에서 연결되어 있는 뒷 정원은, 어느 집을 가더라도 마치 숨겨진 비밀의 화원을 발견한 듯한 기분을 주면서 신기했다. 그래서 길을 다니면서 보는 집들마다 어떤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하고 머릿속으로 혼자 상상하며 걸었던 기억이 난다.
이사한 집은 하프 퍼니시드(half-Funished)였다. 즉, 가구가 반만 채워져 있는 집이다. 침대는 없었고 식탁이랑 옷장만 있었다. 덕분에 나는 난생처음으로 이케아(IKEA)를 만나게 되었다.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매장을 보면서, 우리 집도 곧 저렇게 예쁘게 꾸며질 것을 상상하며 신이 나서 구경을 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침대 프레임 없이 매트리스 두 개로 딸과 나, 남편 셋이 생활했고, 거실에는 소파하나 없었다. 옷장도 집에 있는 옷장 하나로는 부족해서 70~80년대 자취방에서 흔히 사용했던 지퍼 옷장을 하나 더 들여놓고 지내게 되었다. 사실 이케아(IKEA)처럼 꾸미고 싶은 로망은 아직도 실현되지 않았다.
영국은 카펫 문화라 이사 간 집도 방에는 카펫이 깔려 있었다. 카펫바닥은 낯설고 찝찝했다. 영국인들은 카펫 위에 신발을 신고 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주인은 카펫을 교체한 지 5년밖에 되지 않았다며 자랑하듯이 말했다. 5년이라는 숫자는 집주인과 나 사이에 큰 괴리감을 만들었다. 영국에 살면서 알았다. 이곳에서 '5'라는 숫자는 어디 축에도 들지 못한다는 것을.
길가의 건물마다 100년이 넘었고, 산책하는 공원도 역사가 100년은 기본이었다. 하물며 시내에 있는 로만 바스(Roman Baths)는 서기 60~70년대에 지어졌으니,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니 집주인이 5년이라고 말한 숫자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다. 후일담이지만, 다음번 이사를 준비하면서 집을 나도 같이 알아볼 때 알았다. 영국에서 '5년 된 카펫'은 주인의 자랑처럼 새것이라는 것을......
15년 전의 기억 속에 남은 사진이 없어서 구글 로드뷰로 집을 찾았다. 교차되는 감정들이 섞여 눈물이 난다. 그때 내 나이 33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