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출산, 미역국
"뭐, 그래가지고 애가 나오겠나......"
오늘 저녁도 별다른 기별이 없어서 엄마는 먼저 주무시기로 하시고, 자리를 펴고 누우셨다.
밤 10시가 넘어가자, 화장실 갈 신호처럼 배가 슬슬 아파오기 시작했다. 엄마도 아이를 셋 낳고 키우셨지만, 만삭인 딸이 배가 아파 화장실을 들락 거리는 모습을 보시곤 오늘은 아닌 것 같다고 하시면서 먼저 누우셨다. 영국 오시고 매일을 기다리시면 깊은 잠을 못 주무셨던 엄마는 필사적으로 잠깐 눈을 붙이셨다.
그 신호를 시작으로 두 시간 동안 아픈 배를 붙잡고 화장실만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 그리고 두 시간이 지나 넘긴 새벽 1시가 가까워지자, 진짜 신호가 시작됐다.
배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수축할 때마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따라왔다. 죽을 것 같은 고통을 넘기면, 언제 그랬냐는 듯 거짓말처럼 잠깐의 평화가 찾아왔다. 그리고는 다시, 더 큰 고통을 동반한 진통을 준다. 그렇게 몇 시간을 반복하면 아이가 세상에 나온다. 누군가는 그 시간을 하루, 며칠씩을 고통 속에 계시는 분들도 계시리라.
힘든 진통을 집에서 꼬박 세 시간 가까이 참았다. 그러다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었을 때, 남편을 조용히 깨웠다. 방에 계시는 엄마를 깨우고 병원에 가야겠다고 말씀드렸다. 미리 준비해 둔 가방을 들고 집을 나왔다.
병원은 걸어서 3분 거리였지만,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정말 코 앞에 병원이 있었는데도, 차를 타고 가는 길은 한 시간이 넘게 걸린 것처럼 길고 멀게 느껴졌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의사와 간호사들이 긴급한 상황을 알아차렸다. 그들은 나를 재빠르게 룸으로 옮겼고, 나는 그제야 침대 위에 누웠다. 그러나 진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고, 멈추지도 않았다. 진통제를 요청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고 했다. 대신 마취 산소를 흡입하라며 내 입에 마스크를 씌워주었다.
연결된 호스를 통해 하얀 연기 같은 기체가 흘러나왔다. 나는 그것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진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길 바랐다. 하지만 고통은 여전히 줄어들지 않았다. 몸이 점점 느려지고 의식이 흐려질 무렵, 나도 모르게 남편에게 말했다.
"연기를...... 더 세게 틀어달라고 해."
남편은 고통에 힘들어하는 나를 보며 간호사들에게 내 말을 전달했지만, 간호사들은 이미 충분히 마셨고 더는 안 된다고 했다. 그 고통 속에서도 마취제에 취해 더 마시지 못한 아쉬움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아이는 새벽 4시 정도에 태어났다. 잠시 후 나와 아이는 병실로 옮겨졌다. 건강한 아이를 마주하자 참을 수 없었던 고통은 사라지고 이내 형용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왔다. 잠시 뒤 간호사가 와서 버터만 바른 토스트 두 장과 따뜻한 모닝 밀크티를 주고 갔다.
허겁지겁 토스트를 먹고 남편에게 더 먹고 싶다고 말했다. 잠시 후 간호사가 웃으며 토스트 두 장과 밀크티를 다시 갖다주었다. 며칠 굶은 사람처럼 허겁지겁 먹고 나니, 금세 속이 울거리기 시작했고 결국 모두 토해냈다.
그리고 간호사가 와서 빨리 샤워를 하라고 재촉을 했다. 남편은 어디서 들었는지, 샤워는 집에 가서 하겠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산후풍을 걱정해서 아기를 낳고 바로 몸을 샤워를 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한다. 옛날엔 난방도 부족하고 음식도 충분치 않았으니까 몸을 지키기 위한 나름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잠시 병원에서 쉬었다가, 아침 7시가 되자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엄마는 이미 모든 준비를 마쳐두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딸과 사위, 그리고 갓 태어난 아이를 보며 엄마의 얼굴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감정이 스쳐 지나갔다. 기쁨, 안도, 그리고 세월이 주는 묘한 울림이 한꺼번에 담긴 표정이었다.
엄마가 끓여둔 미역국 냄새가 방 안 가득 퍼졌다. 그 냄새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둘째는 영국에서 태어난 한국 아이다. 그래서 이름은 ‘한영’. 우리 가족의 이야기를 닮은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