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정 엄마 방문 - 영국생활 18

잠시 할 말을 잃으셨다.

딸이 영국에서 출산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엄마가 영국에 오셨다.

우리는 엄마를 모시러 히스로 공항으로 갔다.

나이 드신 엄마는 씩씩하게 잘 도착하셨다.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환하게 웃고 계시는 엄마를 보자

감사함과 미안함이 함께 들었다.

우리는 들뜬 마음으로 엄마를 모시고 Bath로 갔다.


엄마는 처음 밟는 영국 땅이 낯설기도 하지만 딸과 사위, 손녀까지 함께 반기는 모습이 내심 든든하신 듯했다. 가는 길 내내 엄마는 피곤하실 법도 한데 졸린 기색 하나 없이, 아무것도 없는 고속도로를 바라보며 주절주절 말씀이 많으셨다.



막상 집에 도착하자, 엄마는 잠시 할 말을 잃으셨다. 방이 한 칸밖에 없는 집을 보면서 나오는 한숨을 참으시는 듯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이럴 줄 알았으면 이사를 하지 말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의 눈에는 딸이 단칸방에서 월세살이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비친 것이다. 도착하자마자 엄마는 쉬기보다, 이 먼 길을 온 이유를 위해 첫날부터 바삐 움직이셨다.


엄마의 가방에는 먹을거리와 가족들의 선물로 가득 차 있었다. 영국에서 구하기 힘든 것들만 하나하나 챙겨 오신 정성이 느껴졌다. 훗날 영화 '미나리'를 보던 중, 순자가 캐리어에 싸 온 미역을 꺼내는 장면에서 그때의 엄마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렀다.


엄마는 어린 사위가 안쓰러우면서도 한 집안을 책임지는 가장으로서 예우를 잊지 않으셨다. 아침상에는 정성스레 지은 밥이 올랐고, 사위는 뜨끈한 밥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채우고 학교를 나섰다.


엄마는 그걸로 된 거였다. 우리가 든든하게 밥을 먹고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속이 놓이셨던 것이다. 비록 눈앞의 현실은 상상도 못 한 환경을 마주했지만, 엄마는 내색하지 않으셨다. 우리의 삶을 조종하기보다는 지켜보고 격려와 응원, 그리고 오직 엄마만 건넬 수 있는 잔소리가 시작되었다.


"다 잘 될 거야."


짧은 그 한마디에, 엄마의 염려가 느껴졌다. 하지만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날이 길어지면서 엄마도 인내심에 한계를 겪으셨는지 엄마의 잔소리는 점점 늘어갔다.


나는 엄마의 잔소리에 대꾸는 하지 않는다. 그 잔소리 속에 엄마의 진심을 알기 때문에 그냥 참고 듣는다. 그런데 둘째가 나처럼 그렇다. 그냥 '네'가 끝이다. 내가 엄마가 되어 겪어보니 답답했다. 잔소리를 멈출 방법을 아는 듯하다. 엄마도 다 알고 계셨으리라.


무엇 때문인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화장한 어느 날 엄마가 바깥 빨랫줄에 빨래를 널며 시작된 잔소리는 어느새 서로에게 상처가 되고 있었다. 결국 엄마는 눈물을 흘리셨다. 그때 내가 어떤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날의 분위기만 기억이 날 뿐이다. 엄마의 눈물을 본 순간 나는 다짐했다. 엄마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더 잘 듣겠다고.


시간이 흘러도 그날의 공기는 여전히 내 마음 한켠에 남아 있다. 잔소리 같던 말들이, 지금은 그리움이 되어 따라온다. 또 가끔 바람에 흔들리는 빨래를 보면 그날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아래 서 있던 엄마의 눈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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