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집 - 영국 생활 17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이사한 집은 이전보다 나아진 곳은 아니었다.

전의 집과 비슷한 가격이었지만 방은 하나로 줄었고, 부엌은 작은 점포를 차려도 될 만큼 넓었다.

하지만 넓은 공간임에도 어딘가 모르게 허전함이 느껴졌다.


아주 큰 방 한 칸과 무늬만 남은 벽난로가 있는 거실 하나,

하얀빛으로 깨끗하게 수리된 화장실, 오래된 오븐과 크기가 반으로 줄어든 냉장고.

그리고 크기만 넉넉할 뿐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부엌이 있었다.


집 구조는 조금 특이했다.

주차장과 연결된 작은 앞마당을 지나면 자갈이 깔린 길이 나오고, 그 끝에 현관문이 있었다.

문을 열면 바로 부엌이 보였고, 넓은 부엌을 지나면 낮은 계단이 있었다.

두 계단을 오르면 거실이 나오고, 거실의 오른쪽은 큰 방으로, 왼쪽은 화장실로 이어졌다.


역시나, 바닥은 카펫이었다.

천장이 높고 창문이 커서 햇빛이 잘 들었지만, 집 안은 온통 짙은 파란빛이었다.

카펫과 커튼은 오묘한 파란색으로, 오래된 집의 그림자 같은 빛이었다.

먼지가 쌓인 듯 바랜 카펫의 색은, 지나간 신발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위를 걸을 때마다, 밟고 지나간 흔적을 지우려고 조용히 혼자 주문을 걸었다.


"깨끗해."


우리가 이사한 곳은 플랫하우스(Flathouse)였다.

여러 세대가 함께 사는 공동주택으로, 보통은 출입구가 하나뿐이다.

중심 입구를 들어서면 각 집으로 이어지는 개별 현관이 따로 나 있다.

그런데 우리 집은 조금 달랐다.

같은 플랫하우스이지만, 들어가는 길부터 구조가 달라서 마치 작은 단독주택을 얻은 듯한 느낌이었다.

중심 입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우리 집으로 연결되는 작은 앞마당과 별도의 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더 조용하고, 마음도 한결 편했다.


개별 현관이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지만, 그 덕분에 우리 집을 오가는 발길이 많아졌다.

마당이 있는 집을 구한 학생들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주차장으로 연결된 작은 앞마당은 자연스럽게 모임 장소가 되었다.

남편의 학교 친구들이 자주 찾아와 바비큐를 굽고, 맥주를 나누었다.

저녁 무렵이면 숯불 냄새가 피어올랐고, 학생들의 대화는 늦은 밤까지 이어졌다.


나는 겉으로는 괜찮은 척했다.

웃으며 음식을 내주고, 대화에도 가끔 끼어들었지만 사실은 조금 힘들었다.

밤이 깊어도 이야기는 좀처럼 끝나지 않았고,

신경 쓰는 듯 소리를 줄인 말소리가 벽을 넘어 방 안까지 들어왔다.

누워 있어도 대화가 이어지는 소리가 들려 새벽이 되어서야 겨우 잠이 들곤 했다.


그렇게 모임 장소였던 집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조용해졌다.

학생들의 발길이 하나둘 줄었고, 마당에서 들리던 대화 소리도 사라졌다.

대신 아기의 울음소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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