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리 한 소쿠리 - 영국생활 21

엄마와 마지막 여행

엄마가 영국에 계시는 2011년 7월 초, 운 좋게도 교회 단체에서 작은 야유회가 있었다.

'야유회'라지만 거창하지 않고,

정말 우리끼리라는 단어가 어울릴 만큼의 인원이 함께하는 아담한 모임이었다.


처음에는 엄마는 그다지 가고 싶어 하지 않으셨다.

낯선 사람들과 함께 나가는 일은 부담스러워하셨다.

하지만 내가 막달일 때는 몸이 무거워 움직일 수 없었다.

더더욱 출산 직후에는 움직일 수 없어서
이번이 엄마와 함께 외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엄마와 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는

가까운 공원 산책이나 바스 시내 구경이 전부였다.

그래서 이번 야유회는 단순한 나들이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나는 엄마가 조금이라도 바쓰를 벗어난 하루를 보내셨으면 하는 마음으로

함께 가자고 했다.


사실, 그날의 기억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여행이었는지 모든 게 흐릿하다.

다만, 엄마가 떠나실 때 마지막으로 남긴 고사리 한 소쿠리,

그것만이 유일하게 기억이 날 뿐이다.


이상하게 그 장면만 또렷하다.

엄마와 함께 스완지 해변의 아주 높은 언덕을 걸었던 그 순간.

누군가 언덕을 내려가면 바다가 나온다고 말했다.

주차장은 언덕 위에 있었고,

그 아래로는 부드럽게 이어진 길이 바다로 향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트레킹 코스였다.

길은 울퉁불퉁했지만 사람이 지나다닌 흙길을 자연스럽게 잘 닦여있었다.

주변에는 머리가 짧은 잔디가 바람결에 살짝살짝 흔들렸다.

길을 걷다 걷다, 갑자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거 다 고사리네!”
“세상에, 세상에! 이리 많은 고사리가 어디서 나왔니.”
“영국에도 고사리가 있나 보네.”

"영국 사람들은 고사리를 안 먹나 보네."


엄마의 목소리는 들뜬 봄바람처럼 가볍고 경쾌했다.
그때부터였다.
엄마는 맨손으로 언덕의 고사리를 뜯기 시작하셨다.
허리를 굽혀 한 줄기, 또 한 줄기.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아이에게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며
멀찍이서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허리가 아프시다고 늘 말씀하시던 분이었는데,
그날만큼은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엉덩이를 들썩이며, 마치 소녀처럼 신이 나 계셨다.


남편도 그 모습을 보고는 슬그머니 다가가 함께 고사리를 뜯기 시작했다.
장모님의 분주한 움직임이 마음이 편치 않았던 모양이다.
언덕 위에는 바람이 불고, 햇살이 반짝였고,
그 속에서 엄마의 손은 쉴 틈이 없었다.


엄마가 고사리를 뜯는 모습을 본 교인들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하나둘 모여들었다.
누구랄 것도 없이 다 함께 허리를 굽혀
잠시 고사리를 캐는 일에 동참했다.


높고 높은 스완지 바다 언덕 위,
거센 바람을 맞으며 자란 고사리들이
굵고 건강하게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 단단한 생명력을 처음 보는 순간이었다.

나는 지금껏 시장에서 삶고 말려진 고사리만 봐왔다.
초록빛이 통통하게 오른 생고사리를,
그날처럼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모습으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집에 와서 엄마는 고사리를 깨끗하게 씻어서 잘 삶았다.

그리고 영국의 강한 햇빛 아래에 하나하나 널어 정성껏 말리셨다.

며칠 뒤, 바짝 마른 고사리가 한 소쿠리 가득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준비를 마친 엄마는 영국을 떠나셨다.


엄마가 떠난 뒤, 엄마의 빈자리는 컸다.

한시도 쉬지 않고 뭐라도 준비해 두고 가신 손길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집 앞 작은 마당의 자두나무에서도

엄마의 흔적은 남아 있었다.


떨어진 자두를 주워 잼을 만들어 두셨다.

햇살이 반짝이던 그 해 7월,

엄마가 놓고 간 자두잼을 바람 보며

나는 속으로 조용히 인사를 드렸다.


"엄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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