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집 알아보기
남편이 졸업하던 해인 2012년, 영국은 이민자 정책을 강하게 내놓았다. 당시 정부는 “불법 체류자가 살기 힘든 나라를 만들겠다”라고 공언하며, 이민 규정을 대폭 강화했다. 신문과 뉴스마다 단속 현장의 사진들이 쏟아졌고, 공항이나 이민국 앞에서 줄을 선 이민자들의 모습이 연일 보도됐다. 그때 나 역시 앞날을 걱정하느라 하루하루가 정신없었다.
특히 유학생들이 졸업 후 현지에서 일할 수 있던 Post-Study Work 비자가 폐지되면서, 많은 한국 학생들이 졸업과 동시에 어쩔 수 없이 귀국해야 했다. 그런데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정말 운명이었던 건지, 남편은 그 어려운 시기에 런던의 한 회사에 취업하게 되었다. 그 덕분에 우리는 남들처럼 짐을 싸지 않아도 되었고, 영국에 남아 새로운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 남편 혼자 바스에서 런던까지 기차로 출퇴근을 했다. 매일 두세 시간을 오가는 길이었고, 한 달 기차비만 해도 당시 돈으로 70만 원이 넘었다. 이대로는 도저히 오래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우리는 큰 맘을 먹고 런던으로 이사하기로 했다.
“진짜 이사 갈 거예요?”
“잘 생각해 봐요. 런던이 좋은지, 바스가 좋은지.”
“아이들이랑 바스에 남고, 남편만 출퇴근하라고 해요.”
바스에서 함께 지내며 친하게 지냈던 선생님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분은 바스를 참 사랑하셨다.
뭐가 그리 좋았을까,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분의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런던에서 살아본 적은 없었지만, 바스가 얼마나 아름답고 평온한 도시인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도 그곳을 떠나기 아쉬웠지만, 따분하고 지겨운 것도 있었다.
이사하기 전, 우리는 2주 동안 런던으로 향했다.
미리 지도를 펴서 집에서 확인하고 지하철 존(Zone)을 확인하며 움직였다. 결혼 전 영국에서 유학을 오래 한 남편은 런던 지리에 밝아서 좀 수월하게 움직일 수 있었다.
런던의 중심부는 존 1, 숫자가 커질수록 시내에서 멀어진다. 이번엔 둘째까지 함께여서, 우리 가족은 네 명이었다. 그래서 단칸방은 안 된다고 했다. 아이가 둘이면 하우스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누가 했던 걸까. 부동산 직원이었을까, 아니면 집주인들이었을까. 아무튼 우리는 또다시 ‘하우스’ 앞에서 발이 묶였다.
사실 나는 작은 방 하나에서도 넷이 잘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월세도 한두 푼 하는 게 아니니, 차라리 아껴서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결국 우리는 하우스를 구하기로 했다.
우리는 먼저 존 4에 있는 집을 보러 갔다. 딱 내가 꿈꾸던 벽돌집이었다. 싱크대 앞에는 창문이 있었고, 그 창으로 햇살이 들어오는 모습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집주인은 우리를 원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우리는 여러 집을 보러 다녔다. 플랫 2층 집도 있었고, 마지막으로 존 5에 있는 하우스를 보게 되었다.
집 구조는 나쁘지 않았다. 주방도 새로 수리되어 있었고, 전체적으로 공간이 넉넉했다. 2층 큰 방에는 역시나 어.두.운. 파란빛의 오래된 카펫이 깔려 있었고, 중간방은 두툼한 원목 바닥이 세월을 견디며 군데군데 벌어져 있었다. 틈 사이로는 어쩐지 쥐라도 나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가장 작은 방에는 낡고 해진 카펫이 깔려 있었는데, 솔직히 당장 걷어내고 싶은 상태였다. 그동안 봐온 카펫 중 가장 오래되고 더러웠다. 집을 내놓고 월세를 받는 집주인들은 왜 카펫을 갈지 않는 걸까.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 돈이 들겠지만 그래도 이번에 본 카펫은 너무 아니었다. 하지만 더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작은 방 카펫만 교체해줄 수 있냐고 물었지만 단호하게 안된다고 했다.
이 집으로 정해야 한다는 예감이 들자, 답답함과 화가 한꺼번에 밀려왔다. 정원은 공사가 끝나지 않은 듯했다. 이곳저곳에 버려진 자재와 도구가 뒤엉켜 있었고, 잡다한 쓰레기가 아직 그대로였다. 그제야 왜 이 집이 조금 더 싼 지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때 파운드 환율은 거의 2천 원대였고, 기억을 더듬어보면 집세가 1,200파운드쯤 되었던 것 같다. 가깝지는 않아도 역이 있었고, 양쪽으로 공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조용하고 괜찮은 동네였다. 하지만 매달 이 월세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생각하니 머리가 아찔했다. 앞이 막막했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내야 했다.
그렇게 우리는 날짜를 정하고, 결국 이사를 결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