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카시 - 영국생활 24

하숙생

2012년, 우리 가족은 런던 Zone 5의 업니(Upney) 역 근처로 이사를 하게 되었다.
아이 둘을 데리고 집을 구하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영국의 집주인들은 ‘아이 둘이 있는 가족’이라는 이유로 원룸과 투룸을 허락하지 않았고, 결국 우리는 비싼 월세를 감수하고 2층짜리 하우스를 빌릴 수밖에 없었다.


집은 정원이 딸린 아담하고 예쁜 집이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앞으로의 생활비와 월세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남편이 런던에서 공부할 때 알게 된 친구가 함께 하우스를 셰어 하겠다고 해서 너무 기뻤다. 모르는 사람과 함께 산다는 걱정보다는 월세를 아끼고 생활비로 충당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컸다. 그 덕분에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은 다카시이다. 일본에서 불교 종교학 박사 과정을 공부하러 온 학생이었다. 우리는 주말마다 교회에 갔고, 그는 자신의 방에서 향을 피우며 조용히 절을 올렸다. 아이들이 졸라서, 1년 가까이 함께 살면서 단 한 번 그의 방을 구경한 적이 있었다. 그때 방에 가정용 제단을 만들어 둔 것을 처음 보게 되었다. 공부하는 학생이라 남편보다 집에 일찍 들어오는 경우가 많아, 다 같이 자연스럽게 저녁을 함께 먹는 일이 잦았다.


나는 가끔 일본 음식을 시도해서 내놓았다. 처음으로 크로켓을 만들고, 돈가스도 만들어 보았다. 맛은 서툴렀지만 정성만큼은 가득했다. 그리고 어떤 날은 다카시가 우리를 위해 평소에 먹어보지 못한 일본 가정식 요리를 대접해 주었다. 다카시는 한식을 정말 좋아했었다. 우리는 부엌도 함께 쓰면서 서로의 음식도 맛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준비한 식사에 젓가락만 올려서 저녁을 같이 먹자고 한 날이 많았다.


그랬더니 어느 날, 다카시는 식비를 내겠으니 밥을 계속해줄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음식의 맛보다는 본인도 혼자 매일 밥을 챙겨 먹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흔쾌히 수락했다. 그날 이후 그는 하우스메이트를 넘어 ‘하숙생’이 되었다. 그리고 다카시가 내는 돈 보다 더 푸짐하게,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늘 정성을 다해서 식사 준비를 했었다.




선물 받은 액자


내가 저녁을 준비할 때면 다카시는 아이들과 정원에서 놀아주곤 했다. 가끔은 아이들의 손을 잡고 집 근처 마트에 우유를 사러 다녀오기도 했다. 주말이면 고기를 사서 다 같이 정원에 앉아 바비큐도 했다. 서로 언어가 완벽히 통하지는 않았지만, 불편함 없이 서로를 배려하면서 잘 지냈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년 남짓 함께 생활하다가, 우리가 런던을 떠날 무렵 그도 일본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헤어질 때 다카시의 부모님이 런던에 오셔서 인사를 하셨고, 작은 액자 하나를 선물로 주셨다. 그때 어머님께서 직접 말씀하셨던 마지막 한마디가 아직도 내 마음에 남아 있다.


"햄버거랑 피자만 먹던 아들이 당신 덕분에 밥을 먹고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고 했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그 말을 들었을 때, 참 흐뭇했다.
최선을 다해 하숙생을 돌본 나 자신이 대견하기도 했다.


어머님은 액자에 적힌 글귀의 뜻도 직접 설명해 주셨다.
"비가 오는 날은 비를 맞고, 바람이 부는 날은 바람을 맞으라."

사람들은 흔히 비를 피하고 바람을 피하지만, 인생의 현실은 피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라는 뜻이라고 하셨다.


그 뒤로 그 액자는 늘 우리 가족과 함께하고 있다.
지금도 그 액자를 볼 때면, 다카시의 웃는 얼굴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문장이 조용히 내 마음에 말을 건넨다.
“오늘의 날씨처럼, 오늘의 인생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


삶의 고비마다 그 말이 내게 다가온다.
괜찮다고, 이 또한 지나갈 거라고.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다카시가 생각난다.
작은 향 냄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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