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따라 물 따라

울산바위에 오르다

by 청산별곡

가을이 저물어가고 있다. 산천초목들이 산을 물들이고 있지만, 아쉽게도 올해는 예년처럼 단풍이 화려하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 기후 변화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상 기후로 인해 여름철 평균 기온이 예년보다 높은데다가, 가을에도 고온현상이 지속되면서 단풍시기가 늦어졌다. 또한 일교차가 크지 않아 안토시아닌 생성이 줄어들어 붉은색 단풍이 덜 선명하게 보인다고 한다. 잦은 비와 강한 바람도 단풍의 색감을 흐리게 하고 나뭇잎이 고르게 물들지 못하게 한 요인이다. 따스한 봄바람에 희망의 꽃을 피우고, 여름 햇살에 뜨거운 정열을 불태우다가, 마침내 결실을 거두는 가을. 2세의 종자를 남겨놓은 채 곧 색바랜 잎마저 떨어뜨리고 벌거벗은 몸으로 침묵으로 들어가리라.

자식을 성장시켜 출가시키고 마침내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가는 인간도 흡사하다. 평생동안 한 우물만 파며 시계추처럼 집과 직장만 오가던 직장에서 물러나 인생 후반기를 살아가는 초로의 나의 모습도 가을을 맞은 단풍의 모습이 아닐까? 동류의식을 느끼며 초목들이 아름답게 장식하며 삶을 회향하는 모습을 보고싶어 내자와 함께 설악산을 품고 있는 속초로 가을 나들이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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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소의 창을 열고 베란다로 내다 보면 울산바위의 웅장한 모습이 바로 눈앞에 다가온다. 구름을 허리에 두르고 하늘로 우뚝 솟은 울산바위. 울산바위는 왜 울산에 있지 않고 설악산에 있는 것일까? 설악산은 강원도 속초시에 있는 산인데 어떻게 ‘울산’이라는 지명이 붙은 바위가 존재하는 걸까?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옛날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기 위해 1만 2천봉의 바위를 모집하는데, 울산바위도 금강산을 지을 1만 2천봉 중 하나가 되기 위해 울산을 떠나 열심히 금강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몸집이 크고 무거웠던 울산바위는 너무 느려서 설악산까지 밖에 가지 못하고 쉬는 사이에 벌써 금강산에 1만 2천봉의 바위가 모이게 된다. 결국 금강산을 만들 1만 2천봉에 끼지 못한 울산바위는 설악산에 그 터를 잡는다.

이처럼 재밌는 전설이 전해내려 오는 울산바위 전설은 속초의 지명 유래와도 관련이 있다.

유람차 설악산에 들렀던 울산 고을의 원님이 울산바위 전설을 듣고, 바위가 위치한 신흥사의 주지 스님에게 세를 요구한다. 자신들 고을 소유의 울산 바위가 그곳에 있으니, 세를 달라는 것이었다. 이 요구에 신흥사 주지 스님은 어쩔 수 없이 세를 상납하였으나 돈이 부족해지자 세를 낼 수가 없었다. 돈이 부족해지자 동자승이 꾀를 내어 주지 스님을 설득하고 울산 고을 원님을 상대한 것이다. 동자승은 도리어 원님에게 울산바위가 땅을 차지해 농사도 짓지 못하고 피해가 많으니 세를 내라고 말한다. 세를 낼 것이 아니면 울산바위를 도로 가져가라는 동자승의 말에 원님은 재로 만든 새끼로 바위를 엮어 놓으면 가져가겠다고 답한다. 재로 새끼를 만들 수 없으니, 세를 계속 받으려는 원님의 술수였다. 하지만 동자는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에 많이 자라는 풀을 이용해 새끼를 꼬고, 그것으로 바위를 엮은 다음 불을 붙인다. 재로 된 새끼로 바위를 엮은 것이다. 당연히 울산 고을 원님은 울산바위를 가져가지 못했고 더 이상 세를 물지도 못했다. 그 후로 청초호와 영랑호 사이의 지역을 묶을 속(束)자와 풀 초(草)자를 써 ‘속초(束草)’라 부르게 되었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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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부터 울산바위에 오르는 것은 나의 꿈이자 로망이었다. 그래서 울산바위 등정은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설악산 대청봉과 한라산 백록담은 몇 년 전에 올랐고, 지리산 천왕봉은 시절인연이 오면 오를 것이다. 이제 눈앞에 웅장한 울산바위가 손짓을 하니 산행이 힘들더라도 경치가 아름다우며 흥미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울산바위를 어찌 오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근처까지 와서 쳐다보기만 하고 오르지 않는 것은 울산바위에 대한 예의가 아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아침 일찍 신흥사 앞에 있는 주차장에 주차하고 설악산신흥사 일주문을 들어섰다. 일주문은 속계와 진계의 경계이다. 일주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속계를 벗어나 진계로 들어서기 때문에 마음은 숙연해진다. 오염된 마음으로 진리의 세상에 들어설 수는 없다는 생각 때문에 번뇌를 버리고 마음을 청정하게 하려고 애써 본다. 울산바위를 찾아가는 산행은 나에게 순례의 길이나 마찬가지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본사인 신흥사는 울산바위로 가는 길 초입에 있다. 광대한 신흥사 경내 곳곳에도 단풍이 내려와 사찰을 곱게 장식을 했다. 설악산신흥사 일주문을 통과하니 좌정한 통일대불이 산을 등지고 미소지으며 맞이한다. 세심교를 건너고 사천왕문을 지나 극락보전에 들러 안산즐산을 기원했다. 신흥사에서 흔들바위까지 2km, 흔들바위에서 울산바위까지는 1km 거리인데, 소요시간은 흔들바위까지 1시간, 흔들바위에서 울산바위 정상까지는 1시간이 소요된다. 흔들바위까지는 비교적 길이 평탄하지만 흔들바위를 지나면 그만큼 길이 가파르고 힘들다는 방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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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사에서부터 많은 사람들이 흔들바위를 향해 순례자의 행렬처럼 줄지어 가고 있다. 어린아이부터 늙수그레한 노인들까지 남녀노소의 얼굴은 단풍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타오르고 있다. 흔들바위까지 오르는 길은 비교적 수월하다. 덥지도 춥지도 않고 산행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다. 경치 좋은 곳이나 평탄한 바위가 보이면 휴대폰 카메라 셔터를 누르거나 앉아서 청명한 하늘을 감상했다.

1시간쯤 걸으니 평탄한 암반 위에 커다란 알처럼 생긴 흔들바위가 환영하듯이 맞이한다. 사람들이 바위를 흔밀거나 껴안는 등 갖가지 포즈를 취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평범한 바위도 이름을 붙이면 특별한 존재가 되어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고 김춘수 시인도 말하지 않았던가. 그런 면에서 이름을 가진 각각의 모든 사람들은 충분히 사랑을 받을 만하다는 자격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쳐간다.

흔들바위 바로 뒤에는 신통제일나한석굴(神通第一羅漢石窟)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계조암 동굴법당이 있어서 한결 안온한 느낌이다.



흔들바위까지의 1시간에 걸친 산행은 전혀 힘들지 않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길도 평이하고 좋다. 울산바위 등정은 하지 않고 흔들바위에서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울산바위에 오르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 때문에 흔들바위에서 만족할 수는 없다. 숙소에서 일찍 출발했기 때문에 흔들바위에 다녀올 시간도 충분하다. 물과 과일, 캔디가 들어있는 조그만 베낭을 둘러메고 내자와 함께 울산바위를 만나러 출발했다.


흔들바위에서 울산바위로 오르는 길은 더 가파르고 계단이 많아 난이도가 높다. 흔들바위까지의 길은 양반이다. 힘들어서 쉬고 싶어도 쉴만한 바위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다가 만나는 평탄한 바위에는 사람들이 앉아 간식을 먹으며 쉬고 있다. 산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우면서도 언제나 정상에 오를까 한숨이 나온다. 산행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려고 하는지 거의 200m마다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가 있어서 '이제 조금만 가면 되겠다'고 힘을 다잡곤 한다. 그러나 200m 가기가 쉽지 않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은 마음이 선한 사람들이다.하산하는 사람들은 "힘 내세요. 이제 조그만 가면 돼요." 라고 격려한다. 유치원생이나 초등학생처럼 보이는 어린아이들 중에 어떤 아이들은 씩씩하게 잘 가지만, 힘들어서 좀처럼 발길을 옮기지 못하는 아이들도 있다. 나도 힘드는데 어린아이들이 힘드는 당연할 것이다. 어머니와 함께 산을 오르는 그런 아이들을 만날 때면 내자가 캔디를 건내면서 "힘 내. 이렇게 힘든 산을 오르면 앞으로 어떤 힘든 일이라도 성공할 수 있을거야. 공부도 잘 할 수 있고"라며 격려한다. 그러면 그 아이는 캔디를 받으며 "네. 감사합니다" 하고는 씩씩하게 걸어간다. 어린아이지만 참 기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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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바위는 참으로 거대하다. 울산바위 곁으로 난 길을 따라 한참 걸어도 좀처럼 끝이 보이지 않는다. 바위가 바로 옆에 있는데 얼마나 바위를 따라 산길을 더 올라야 할까. 오르막 산길이 끝나자 나무데크 계단이 나타났다. 눈을 들어 바라보니 가파른 나무계단이 하늘에 닿아있다. 절벽같은 계단에 붙어있는 사람들, 개미처럼 아득하다. 일반 산길보다 계단길은 더 힘들다. 한 구비 돌아서 쉬고 또 한 구비 돌아서 쉬고 몇 번이나 쉬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걸음 속도가 빠른 편이어서 빨리 한 구비 올라가서 피곤한 다리를 쉬면서 내자가 올라오기를 기다린다. 내자는 힘들지 않는지 천천히 뒤따라 오면서 쉬지도 않는다. 좀 쉬었다가 가라고 해도 쉬다가 가면 더 힘들다고 좀처럼 쉬지 않는다. 대단한 참을성이다. 계단을 오르다가 뒤돌아보면 너무나 가파른 길에 아찔함을 느낀다. 여기서 실수하여 발을 잘못 디딘다면...


한 걸음 한 걸음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다. 조선의 4대 명필 중 한 사람인 봉래 양사언의 시 '태산가'가 머리를 스친다.

"태산이 높다 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건마는 사람이 제 아니 오르고 뫼만 높다 하더라"

일단 오르면 태산이라도 오를 수 있고 이루지 못할 일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 미리 겁 먹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이겠는가.

드디어 고지에 올랐다. 버킷리스트 하나가 성취되었다.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상쾌함.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눈 아래 펼쳐지는 비경. 맞은편에서 대청봉이 윙크를 보내고 있다. 나는 울산바위에 올랐고 울산바위는 너른 품으로 나를 안아주었다.

정상에서 사람들은 보자기를 펼쳐놓고 간식을 먹으며 맘껏 자연을 감상하고 있다. 나도 내자와 과일을 먹으며 다른 가족에게 과일을 권하니 그 가족들이 커피를 타서 준다. 고지에서 따스한 커피를 한 모금 들이키니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 감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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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바위는 높이가 약 200m, 폭이 약 100m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다.

거대하고 특이하여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온 울산바위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관광지 중 하나이다. 울산바위는 해발고도 약 873m에 달하는 설악산의 대표적인 바위 봉우리로 이 높이는 설악산의 여러 봉우리 중에서도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그래서 울산바위를 오르면 설악산의 장엄한 풍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울산바위는 등산객들에게 도전의 대상이 되기도 하며, 그 웅장함과 주변 자연과의 조화는 아름다운 풍경을 연출한다. 울산바위의 높이는 자연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는 요소 중 하나이며, 등산 경로를 따라 올라가며 느끼는 성취감과 정상에서의 시원한 바람, 그리고 눈 앞에 펼쳐지는 경치는 울산바위의 높이가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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