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부터 지금까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 하루를 지내왔는지 모르잖아.
나는 매일이 불안했고, 매일이 슬펐는데
내 마음과 생각은 알아보려고 하지 않았잖아.
그저 특별히 사춘기가 없었다고 말할 뿐.
나는 내 사춘기를 홀로 이겨냈어.
내 모든 것이 망가질까 봐.
모두가 알고 있는 내가 없어질까 봐.
나는 혼자 불안하고 무서운 사춘기를 혼자 이겨냈어.
안과 밖으로 불안했고 무서웠어.
내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울타리가 무너질까 봐.
내가 기대고 쉴 수 있는 나무를 지켜내야 해서.
나는 나를 숨기고 숨겨야 했어.
중학생 시절부터인가, 나의 부모님은 두 분의 다툼을 숨기지 않았다. 아니, 그전부터 숨기지 않은 것이 맞고 더욱 커지고 늘어났다. 두 분의 목소리가 올라가고, 말의 모양새가 바뀌면 나의 불안은 시작되었다. 그 시기에 불안이 더욱 심했던 이유는 내가 질풍노도의 시기였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가족은 나의 울타리였고, 어머니는 나의 나무였는데 부모님의 다툼과 어머니가 하는 하소연은 그 모든 것이 휘청거리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아마도 그즈음부터 갱년기를 겪게 되셨는데 그로인한 심적 불편함과 신체적 증상을 숨김없이 말씀하셨고, 아버지와의 다툼과 상관없이 내게 아버지의 험담을 하거나 과격한 말들을 그대로 꺼내어 놓으셨다. 그래서 나는 더욱 나의 불안함을 내색할 수 없었다. 혹시 나의 불안함이 어머니에게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고, 내가 밖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도 예전과 같은 반응이 돌아오지 않아서 나는 나의 감정들을 최대로 숨겼다.
나의 불안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우울감으로 변했다. 고등학교 입학이 다가올수록, 친구와의 관계가 불안해질 때, 나의 존재의 필요성을 모를 때 나의 우울함은 더욱 깊어졌다. 짜증은 짜증대로 나서 감당할 수 없을 때가 많아졌고, 어떨 때는 혼자 짜증이 나서 베개를 내 던지고 때리면서 이유를 알 수 없는 화를 내기도 했다. 우울함이 항상 곁에 있는 것 같다고 느껴졌다 우울함이 깊어져서 그냥 '우울함=나'라는 공식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기다리며 서있다가도 자연스럽게 '지금 움직여서 저기로 가면 치이겠지, 아프겠지, 많이 다치겠지,
아니 살 수 없을지도.'라는 생각이 이어졌다. 일상생활을 하면서도 스스로를 해할 수 있는 생각들을 하고는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당시의 상황을 피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해서라도 부모님이 나의 존재를 필요하다고 느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다치면 부모님이 내게 관심을 가져주고, 걱정해주니 그것을 나는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실행하지 못했던 이유는 나의 변고가 과연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나의 변고가 오히려 부모님의 다툼에 또 다른 이유가 될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 그래서 가족 앞에서는 최대한 티 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혼자 있을 때 울고, 화냈다.
지독한 사춘기를 보냈다. 가족은 모르는 조용한 나만 느끼는 시끄러운 사춘기를 보냈다. 무섭고, 불안했던 그 시기를 잘 건너와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부모니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어머니는 일상처럼 내게 아버지의 험담을 했다. 성인이 된 후 그 관계를 조금이나마 완화시키고 싶어 어머니와 진지한 대화를 했지만 어머니는 아버지 탓만 할 뿐이었다. 아버지가 바뀌지 않으면 바뀔 수 없다는 그 입장이 너무나 답답했고 과거에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며 힘들었던 내가 불쌍하고 억울했다. 마치 정말로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잃고 어머니라는 나무가 결국에는 베어져 없어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