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진, 청춘이 버겁다
청춘(靑春)
새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이라는 뜻으로,
십 대 후반에서 이십 대에 걸치는
인생의 젊은 나이 또는 그런 시절을 이르는 말.
초등학교 저학년은 고학년이 되고 싶어 하고, 고학년은 중학생이 되고 싶어 한다는 말을 예전에는 했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무언가 하나, 둘 할 수 있거나 해도 되는 것이 늘어간다는 자유로움을 원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릴 적부터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그 현재가 좋았다. 나이가 들고, 어른이 되면 그만큼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 늘어난다는 것을 나는 좀 일찍 알았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사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되는 것이 무서웠다.
대학생이 되었다. 여러 지역에서 모인 처음 보는 사람들과 ‘동기’라는 이름으로 대학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사회에 나오자마자 학자금대출이라는 이름의 빚을 지게 되었다. 평일은 대학생활을 했고, 주말은 과제를 하거나 다니던 절에서 학생부 선생님으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당시 나는 용돈을 받은 기억이 거의 나지 않는데 아마도 절에서 한 아르바이트로 받은 소정의 금액으로 한 달을 지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생각나는 것이 입학하고 반년을 기숙사 생활을 했는데 당시는 혼자 밥 먹는 것도 못하기도 하고, 손에 쥔 돈도 얼마 없어서 김밥 한 줄, 집에서 가져간 미숫가루나 방울토마토를 먹었던 것 같다. 그때 방울토마토를 지겹도록 먹어서 졸업하고 몇 년 동안 쳐다보지도 않다가 최근에서야 다시 조금씩 먹고 있다. 나의 첫 대학생활은 그랬다. 평일은 강의실과 기숙사가 다였고, 주말은 집과 절이 다였다.
전문대 2년을 마무리하고 나는 바로 전과해서 사이버대학교로 입학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졸업한 전공을 살려 도서관 주말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그렇게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하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에서는 부모님의 도움을 바라지 않았다. 사이버대학교를 입학해서도 나는 평일은 강의를 듣거나 과제를 했고, 주말은 도서관과 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원하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내게는 당연한 일이었다. 학비를 벌어야 했고, 부모님이 그걸 해 줄 의무가 이제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의 사회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때 내 나이가 21살이었다. 그 후로 나는 비슷한 생활을 몇 년을 더 했다. 바뀐 것은 주말 도서관 아르바이트가 평일 계약직으로 되었다는 것뿐이었다.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길고 이용자들을 상대하는 시간과 책을 정리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내 시간이 생긴다는 것이 과제를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일하면서 나는 학자금을 갚을 돈을 모으고, 학비를 할 돈을 모았다. 그렇게 모으고 남은 돈 어느 정도를 내 용돈으로 썼다. 좋아하는 공연을 보러 다니고, 여행도 다녔다. 일을 계속하다 며칠 다녀오는 휴가가 꿀맛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다. 누구도 말해주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 내가 스스로 참 대견했다. 아마도 혼자 다 알아서 해야 한다는 것을 그 시기에 완벽하게 익힌 것이 아닐까 싶다.
사이버대학교를 졸업하고, 도서관을 다니다 어느 순간 지금이 아니면 제대로 글 쓰는 기회를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내 첫 책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글을 쓰고 있었는데 도서관 계약직 자리도 여러 이유로 마무리 단계였던 터라 결단을 세워야 했다. 도서관계에 계속 남아 있을 것인지, 다른 일을 시작할 것인지를. 그렇게 생각하니 도서관에 계속 있는 내 모습이 나는 그저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일이 익숙해져서 좋기는 한데 더 이상 새로운 느낌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더는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도서관을 나오기로 했다. 그리고 쓰던 글을 계속 써서 책을 내고, 바리스타 자격증을 손에 쥐고 카페 일을 해보기로 했다. 그때 내가 스물하고 다섯이었다. 그때 나랑 제일 친했던 친구는 이미 번듯한 회사생활을 하고 있었고, 다른 친구들도 어느 정도 각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던 때라 나의 시작이 늦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이십 대는 정말이지 외로웠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끙끙 앓고, 불안해하고, 우는 날이 많았다. 그럼에도 그것이 모두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선택한 길이니 무작정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특히 직종변경을 했을 때는 버티지 못하면 앞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을 정도였다. 그때 내가 원하는 것은 그리 큰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일을 걱정하지 않는 것. 하지만 그것이 이루어진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 이십 대 중반부터 나는 매일 내일을 걱정하며 살아왔다. 그것이 청춘의 무게라면 내게는 꽤 무거웠던 것 같다. 하나를 해결하면, 다른 하나가 문제가 생기는 것을 반복하며 나의 평온함을 계속 깨뜨렸다. 어느 순간에는 ‘정말 모두 이렇게 힘든가?’ 생각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무거운 청춘을 보내고 서른이 되어보니 사실 서른도 만만하지는 않다. 아니, 어쩌면 더욱 버거워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어쩌면 예전보다 더욱 무겁게 느껴진다. 음식도 잘 먹어야 체하지 않듯 나이도 잘 먹어야 탈이 나지 않을 텐데 말이다.
나는 청춘이 좀 버겁다
시덥지 않아도 괜히 웃게 되는 말
대단치 않아도 주고받고 싶은 말
멍하니 보내도 편히 잠이 드는 밤
내게 필요한 건 이런 것들야
뭐든 이뤄야만 할 것 같은 많은 질문들
마지못해 꾸고 있는 어색한 꿈들
할 수 있다, 힘을 내란 텅 빈 외침들
오늘도 날 스쳐 지난다
굳세게 버텨라 마음아
날마다 더 큰 게 올 테니까
-이무진, 청춘이 버겁다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