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내가 나를 보살핀다는 것

-아이유, 팔레트

by DAON 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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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무덤덤해지는 것을 느꼈다. 일을 할 때도, 사람을 대할 때도 크게 별 감흥이 없었다. 힘이 들면 그저 내가 겪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친한 사람들을 만나도 웃고 떠드는 시간이 줄어들었지만 각자 힘들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처음에는 그런 내가 낯설었는데 나중에는 그런 내 모습을 받아들이려고 했고, 그것이 나이가 들어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무덤덤해지는 날이 길어지더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무기력해지기 시작했다.


스스로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싫어하는 것은 또 무엇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것이 사라졌고, 해야 하는 것들을 겨우 해내는 날이 이어졌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일, 내가 좋아서 시작한 운동을 출구 없는 쳇바퀴를 도는 것처럼 ‘의무적’으로 하고 있었고, 밥을 먹거나 잠을 자는 등 일상적이고 사소한 행동을 하면서도 함께 사는 사람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냥 어느 시간도 편하다고 느낀 적이 거의 없었던 날들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특별히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후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무기력한 날이 길어지더니 그 쳇바퀴 같은 의무적인 일상을 보내는 것도 어렵다고 느껴졌다. 내가 스스로에게 애증을 느껴도 되나 생각을 반복하게 되었을 때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병원 문을 두드렸다.


정신건강의학과를 처음 찾았을 때 나는 내가 정말 괜찮아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계속 갖고 있었다. 내가 겪고 있는 환경이 쉽게 바뀌지 않을 텐데 얼마나 나아질 수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병원을 갈 때마다 이런저런 설문지를 작성했다. 잠은 잘 자는지, 밥은 잘 먹는지 등등 나의 기본적인 일상부터 감정이나 생각의 대한 질문들의 대한 답들을 체크했다. 그 설문지를 체크하면서 알았다. 내가 식욕이 현저히 떨어졌다는 것을. 먹고 싶은 것이 없던 때였다. 먹는 것도 귀찮다고 생각하던 때였다. 그럼에도 일도, 운동도 해야 하니까 그냥 집에 있는 것들로 대충 먹던 때였다. 아마 혼자 살았다면 더 안 먹었을지도 모르나 함께 지내는 사람이 있어서 그나마 먹었던 것 같다. 병원을 다니면서 나는 차츰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무언가를 할 것을 찾기 시작했다. 드라마 한 편을 정해놓고 보기도 하고, 산책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좋아했던 것들을 했다. 안정기가 길어지면서 나는 그동안 내가 나를 보살피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나를 보살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나를 보살피는 것이 왜 필요하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듯 뒤늦게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네가 나를 어떻게 알겠느냐는 말이 있다. 그 말이 맞다. 사람은 변하는 것이라서 취향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아예 바뀌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내가 나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지 않으면 어느 순간부터는 자신을 제대로 알지 못하게 되어버린다. 나도 그랬다. 평소에도 생각이 많지만 더욱 생각이 많아지거나 무언가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면 나는 어떻게 해서든 혼자 있는 시간을 만들었고, 그 시간은 스스로를 위해 썼다. 좋아하는 길을 걷거나 좋아하는 장소에 가서 가만히 앉아서 생각과 마음을 정리했다. 그렇게 시간을 갖고 나면 다시 일상을 보낼 여유가 만들어지고는 했다. 그런데 그 시간이 어느 순간부터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바쁘다는 이유로, 몸이 힘들다는 이유로, 누군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다는 이유로 나는 스스로에게 제대로 된 시간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과는 점점 멀어졌고, 힘들고 싫어하는 것과는 가까워졌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멀어지기 시작하고 무기력해지면서 나는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상대가 뭘 좋아할까, 뭘 싫어할까에 초점을 맞추고 내 행동을 결정했다. 내 의사결정권을 상대에게 넘겨줬다.

그냥 ‘네가 좋으면 좋아’, ‘네가 좋아하는 거 하는 게 편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먹고 싶은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는 무기력함을 등에 업고 있었으니 그냥 다 누가 ‘이렇게 하자’라고 결정해 주면 그냥 그게 좋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게 스스로에게 더 깊은 무기력함을 주는지도 모르고 말이다. 그래서 무기력함이 조금 나아지고 나서는 ‘의도적’으로 좋아하는 것과 가까워지고 힘들고 싫어하는 것과는 멀어지려고 했다.

취미, 사람, 행동 등 모든 것들에서. 그리고 상대의 좋고, 싫음을 생각하기 전에 내가 좋은지, 싫은지를 먼저 생각하려고 했다. 그렇게 생각하려고 하니 내가 매우 이기적인 사람인가 생각도 했지만 모든 사람은 어느 정도의 이기적임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 이기적임으로 사회적으로 크게 문제가 된다면 잘못이지만 그렇지 않다면 사소한 이기적임은 자신을 보호하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나를 보살핀다는 것은 내가 내 상태를 신체적이나 정신적으로 잘 파악하는 것부터 시작된다. 아프고 불편하다고 느껴지면 병원을 찾기를 바란다. 내가 무기력해졌던 시기를 생각하면 나는 이미 우울감과 불안감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나오고 있었음에도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다. 그것 또한 내가 그냥 바빠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냥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들이었다. 그러니 힘들고 피곤하면 단 하루라도 제대로 쉬어봤으면 좋겠다. 좋아하는 것들을 하거나 그것도 할 기력이나 마음이 없다면 그냥 하루 정도 아무런 생각하지 않고 침대를 나가보지 않는 것도 좋겠다. 그렇게 몇 번을 쉬어본 뒤에도 피곤함이 가시지 않는다면 조금은 자신의 마음도 들여 봤으면 좋겠다. 요즘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것을 언제 마지막으로 해봤는지 생각해 보고 요즘 날 괴롭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고 그것을 조금이라도 멀리 할 방법이 없는지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다.


나는 한 번 잃고 알게 되었으나 누군가는 잃기 전에 알았으면 좋겠다. 내가 나를 보살핀다는 것은 남을 살피기 전에 무조건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내가 나를 잘 알아가고 그것들을 해 나가는 것이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고, 좋아하는 취미를 갖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몸에 좋은 것들을 하는 것. 그리고 그 거리가 어떻든 나를 괴롭히는 것들을 의도적으로 멀리하려고 하는 것. 모두 아프지 않고, 사소한 행복들이 가득하길 바란다.


이상하게도 요즘엔 그냥 쉬운 게 좋아

하긴 그래도 여전히 코린 음악은 좋더라

Hot Pink보다 진한 보라색을 더 좋아해

또 뭐더라 단추 있는 Pajamas, Lipstick 좀 짓궂은 장난들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좋아하는 거 알아

I got this. I'm truly fin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긴 머리보다 반듯이 자른 단발이 좋아

하긴 그래도 좋은 날 부를 땐 참 예뻤더라

오 왜 그럴까 조금 촌스러운 걸 좋아해

그림보다 빼곡히 채운 Palette, 일기, 잠들었던 시간들

I like it. I'm twenty five

날 미워하는 거 알아

I got this. I'm truly fin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아이유, 팔레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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