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묵묵히 나를 받쳐주는 버팀목

-인순이, 아버지

by DAON 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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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기억의 시작은 어린 내가 잠에서 깨었더니 누군가의 등에 업혀 있었고, 나를 업은 사람은 계속 걷고 있었다. 내가 일어난 것을 느낀 그는 ‘일어났어?’라고 물었고, 얼마 가지 않아 보이는 한 작은 중국집을 가리키며 ‘짜장면 먹고 갈까?’라고 물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우리는 단 둘이 저녁을 먹었다. 이 기억의 조각이 하나, 둘 떠오르고 맞춰지는데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게 내가 어린 시절에 처음으로 기억했던 아버지와 나, 둘 만의 시간을 가진 첫 기억이라는 것이다. 나중에 하나, 둘 맞춰진 조각들은 왜 둘만 나가게 되었는지, 어디를 갔는지, 왜 하염없이 걸어야 했는지 등 이었는데 그것들이 맞춰지면서 이야기는 좀 더 자연스러워졌고, 나는 그 속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는 아이었다는 것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주말이면 나를 데리고 어딘가를 다니셨던 것 같다. 문득, 문득 떠오르는 기억에 운전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있고 뒷 자석에서 나는 창문 밖을 보며 재잘거리며 떠들다가 어느새 멀미를 이겨내지 못하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다니다 어딘가에서 내려서 들판에 핀 꽃들을 보고, 토끼도 보고 그랬던 기억이 있다. 그 기억 속에 나는 때 묻지 않은 얼굴로 환하게 웃고 있고, 아버지도 환하게 웃고 있다.


아버지와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기 시작한 것은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고, 주말에 더는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서였다. 그 무렵 부모님의 사이도 멀어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점점 커가면서 아버지와의 좋은 기억은 희미해졌고, 그 위로 엄한 아버지의 모습이 선명하게 입혀졌다. 그래서 간혹 어릴 때 기억이 떠오를 때면 나는 그 지난 예전이 너무도 그리웠다. 사랑받는다고 확실하게 느꼈던 그 시간들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이 정말 많았다.


내가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갈망했던 것이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과 인정이었다. 어떤 계기가 명확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 순간 내가 왜 스스로를 더 잘 해야 된다고 채근하고 있나 생각해보니 나는 아버지에게 ‘잘 했다.’, ‘잘 하고 있다.’, ‘우리 딸 멋있다.’라는 등의 인정이 담긴 말이 듣고 싶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 그런 말을 아버지를 통해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버지의 인정에 목말랐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를 사랑할 수 없게 되었다.


내가 누군가로부터 사랑받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확실하게 들었던 사건이 있었다. 이제는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 생각도 나지 않는 부모님의 싸움이 그 사건의 시작이었다. 부모님이 언쟁을 피우다가 그 불똥이 나한테까지 옮겨와서 어느 순간 나와 아버지가 다투게 되었고, 처음으로 그 날 아버지와 나 사이에 발길질이 오가는 몸싸움이 있었다. 그렇게 다투고 나와 어머니는 집에서 나가 밖에서 시간을 보내다 새벽시간에 집에 들어왔고, 그 뒤로 나는 한동안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리거나 얼굴을 보면 그날로 돌아가고는 해서 아버지가 오시기 전에 자는 척 방에 불을 끄고 누워버리고는 했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누군가 밖에서 나를 홀대할 때 ‘나도 누군가의 귀한 자식입니다!’라고 소리를 내 볼 기회가 없어졌다고 말이다. 이 세상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사랑해줘야 하는 사람이 내게 그런 행동을 했다는 것이 꽤 큰 상처가 돼서 그 후로 한 동안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 일이 있고 6년 정도의 시간이 지난 것 같다. 그 사이 아버지와의 관계는 그나마 평화를 찾았다. 아버지의 고집이 살짝 누그러진 것도 있고, 내가 아버지의 인정과 사랑에 목말라서 ‘아버지가 좋아하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행동하지 않는다. 6년의 시간동안 하나, 하나 말할 수 없는 생각과 감정들이 아버지와 나를 스쳐지나갔다. 어느 날은 각자 술에 취해 돌아온 집에서 술기운을 빌려 지난 일에 대해 말해보기도 했고, 어느 날은 그냥 무심히 지켜보기도 하고 그랬다. 내가 그렇듯 아버지도 나와 있었던 모든 날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고, 어느 한 기억에서 ‘이 때가 참 예쁘고 살가웠는데’라고 생각도 하실 수 있고, 어느 기억에서는 서운하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기억과 감정들은 사실 말하지 않으면 전혀 알 수 없는 것들이라서 감히 예상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그 기억과 감정들로 서로가 변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안 맞춰줘서, 안 맞아서 사소한 언쟁을 버리는 날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냥 그저 그렇게 어느 정도는 맞아서 무난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싶다

가까이에 있어도 다가서지 못했던

그래 내가 미워했었다

제발 내 얘길 들어주세요

시간이 필요해요

서로 사랑을 하고 서로 미워도 하고

누구보다 아껴주던 그대가 보고 싶다

가슴속 깊은 곳에 담아두기만 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긴 시간이 지나도 말하지 못했었던

그래 내가 사랑했었다

-인순이, 아버지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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