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스스로 어린아이 같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 그래.
가끔 그럴 때가 있거든.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지인들에게도
내가 사랑받고 있나 생각이 들 때.
나는 가족이나 친한 사람들과의 스킨십을 좋아한다. 어릴 적부터 그랬던 것 같다. 누군가와 손을 잡고, 팔짱을 끼고, 가벼운 포옹까지도 나는 좋아했다. 중학생,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기분이 좋을 때면 아버지와 가볍게 볼에 입맞춤도 있었고, 성인이 된 후에도 가족들과 껴안고 자기도 하고 그랬다. 스킨십을 좋아해서 어머니는 내가 남자 친구를 만나면 스킨십이 더욱 많아질까 걱정하셨다.
어느 날에 내가 스킨십을 유독 좋아하는 이유가 있나 생각해봤다. 생각보다 답은 금방 나왔다.
누군가 나의 스킨십을 받아주거나 내게 스킨십을 해주면 나는 심적으로 편안해졌다. 그들이 나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넘어서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낄 수 있어서 안정이 되는 것 같다.
가끔 바쁘게 지내다가 한 번씩 생각이 깊어질 때가 있었다. 지내온 날들이 힘들어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고, 칭얼거리고 싶다고 생각이 드는 때가 있었다. 그러면 그저 상대가 고생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누구에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떠올랐다가도 '아니지.' 하면서 생각을 접었다. 그렇게 가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할 수 없었다. 그러면 나는 내가 정말 그들에게 사랑받고 있나 생각이 들었다. 사랑받고 싶었다. 그저 '네가 있어서 그냥 그게 좋아.'라는 따뜻한 말과 애정이 담긴 시선을 느끼고 싶었다. 나와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궁금해졌다. 나는 꽤나 사랑을 갈구하고 있구나 싶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애정표현을 바라지 않으려고 했다. 내 나름대로 찾은 이유는 '나이'였다. 나도, 그들도 나이가 드니까 표현이 줄고, 어색해지고, 또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거니 생각할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서 마음속에는 다섯 살 어린아이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 표현해주지 않아도 저들은 나를 싫어하지 않는다고 어린아이를 다독거렸다. 나를 싫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잘 지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