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ON 다온 Aug 19. 2023

우울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것이 이렇게 오래 머무를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기억하는 부모님의 첫 다툼은 어느 주말에 일어났다. 언니와 함께 안방에서 TV를 보다가 잠들게 되었던 것 같은데 시끄러운 소리에 깨어보니 부모님이 서로를 마주 보며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그것이 무서워서 나는 언니에게 더욱 안겼고, 언니는 나를 더 세게 안아주었다. 본인도 겁에 질려 울먹거리면서 내 등을 토닥거려 줬다. 언성을 높이던 아버지는 홧김에 TV리모컨을 던지셨고, 그날 리모컨은 윗부분이 깨져서 한동안 나는 그 리모컨을 볼 때마다 그날로 돌아가고는 했다.      


 내가 자랄수록 부모님의 다툼은 잦아졌고, 때로는 마음의 상처뿐이 아닌 신체적 상처가 생기고, 컵이 깨지거나 도망쳐야 하는 큰 다툼이 일어나고는 했다. 그렇게 부모님의 다툼을 겪으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은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럴 때면 어머니가 평소에는 거들떠도 보지 않는 술을 한, 두 잔 드시고 방에 혼자 누워서 우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우는 어머니의 등을 토닥거려드리고는 했는데 내가 그러고 있으면 어머니는 미안하다는 내 손을 잡거나 나를 안으며 미안하다는 말을 반복하고는 했다. 아버지와 다툼이 있던 날이 점점 지나면 어머니는 더는 울지 않으셨지만 아버지의 대한 거친 생각을 내게 쏟아내고는 하셨다. 그러면 나는 그 모든 말을 들으며 내 방식대로 어머니를 위로했다. 그때는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중학생이 된 나는 때때로 사소한 것에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아졌다. 그럴 때면 어머니와 이야기하는 것으로 풀고는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어머니의 반응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잘 들어주시던 어머니가 ‘네가 너무 예민해. 그러면 너만 힘들지’라는 반응을 점점 자주 보여줬다. 나는 내 이야기에 공감해주지 않고, 나를 책망하는 것 같은 어머니의 반응에 더욱 짜증이 났고, 점점 나의 이야기를 가려가면서 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에도 어머니는 아버지와 관계에서 드는 생각들을 내게 말했고, 나는 그 이야기에 젖어갔다.      


 어머니의 하소연과 나의 고민이 내 안에 쌓여갈수록 나는 불안과 걱정에 묻히기 시작했다. 그러면 나는 누군가와 있을 때는 아무 일 없는 듯 밝아 보였지만 혼자가 되면 머릿속이 부모님 사이의 대한 걱정과 나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 찼다. 그때 처음으로 우울감을 느끼게 되었다. 하지만 그 우울감을 심각하게 느끼지는 못했다. 그때의 우울감이 현재 나의 우울의 시작점이 아니었을까 라는 생각은 성인이 되고, 스물 중반이 되어서야 하게 되었다. 청소년 시기의 우울감은 그저 사춘기로 인한 새로운 감정이라고 여겼던 것 같다.      


 간혹 그 우울감에 갇혀서 하면 안 되는 상상을 하고, 그 상상을 하는 나 자신이 스스로 무서울 때도 있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내가 잘못되면 슬퍼할 부모님, 정확히 우는 어머니의 모습이 함께 생각나서 금방 고개를 내저으며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쉽게 벗어날 수 없게 나를 둘러싸고 있던 우울감은 ‘나는 행복하지 않아.’, ‘우리 가족은 화목하지 않아.’, ‘우리 가족이 부끄러워.’ 등 좋지 못한 생각을 하게 만들고는 했다. 그리고 그건 나의 자신감, 자존감에도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 우울감이 어느 정도 나와 하나가 되었을 때 나는 그것이 더욱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단순히 나의 가정환경이 그랬기 때문에 내가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아진 것이고 생각했고, 낮은 자존감이 오로지 내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한동안은 그 낮은 자존감을 높이려고만 노력했다. 자존감이 낮아서 우울함이 찾아오는 줄 알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를 흉터로, 더는 아프지 않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