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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Aug 23. 2023

특히 우울감이 심해지는 시기가 있다-1

부모님의 다툼과 어린 자식

 중학생부터 내가 기억하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은 사소한 말다툼을 하거나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들리지 않게 혼잣말로 불만을 늘어놓는 것이 그나마 평화로운 날의 모습이었지만 나는 부모님의 사소한 말다툼이나 어머니의 혼잣말이 혹시나 더 큰 싸움으로 변하지는 않을까 항상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를 툭툭 건드리며 그만하라고 신호를 보내거나 최대한 어머니가 그 감정에서 나올 수 있게 다른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 상황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어머니가 나의 신호를 잘 받아들였는지, 그 이야기를 왜 했는지 이유는 아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머니는 어머니가 하고 싶은 그대로 이어나가셨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중학생이었던 어느 주말에 언니만 빠진 세 명이서 동물 관련 프로그램을 보다가 내가 ‘나도 뱀 키워보고 싶어.’라는 한 마디를 했는데 그 한 마디가 그날 부모님 다툼의 원인이 되었다. 어머니는 안 된다고 반대하셨고, 사춘기였던 나는 더욱 고집을 부리며 나중에 커서 키워 보고 싶다고 하는 거고, 키우겠다고 확정 지은 것도 아닌데 그걸 왜 어머니가 반대하느냐고 어머니와 내 사이에 말씨름이 조금 길어지자 아버지가 내 편을 살짝 들어주었다. 그러자 어느새 어머니와 나의 말씨름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다툼이 되었다. 문제는 어머니와 나의 말씨름은 그 주제로만 이어졌지만 어머니와 아버지의 말다툼은 과거의 일까지 가지고 오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 것이었다. 그만하라고 몇 번이고 두 분을 말려도 끝이 보이지 않자 나는 ‘내가 안 키우면 되잖아!’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방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무 일 없이 평화롭던 주말의 아침이 한순간에 깨져버렸다. 그렇게 방으로 들어온 나를 따라서 어머니가 한 번, 아버지가 한 번 들어왔던 것 같다. 어머니의 반응은 특별히 기억나는 것이 없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싸워서 미안하다.’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을까 추측한다. 그리고 들어온 아버지 하고는 짧은 듯 긴 이야기를 나눴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버지의 화난 얼굴을 보면서 말을 하는 것이 매우 무서웠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왜 엄마, 아빠가 서로 말하고 있는데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가는 것이냐’라고 혼을 내셔서 그것이 어떻게 서로 대화하는 것이냐, 싸우는 것이라고 반박했고, 부모님이 다투는데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랬을 때 아버지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리고 이유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버지가 무언가 서운하다며 눈물을 보이셨는데 그 눈물에 나는 더욱 마음이 아팠다. 어린 자식이라는 이유로 부모님의 사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은 굉장히 큰 무력감을 느끼게 한 것 같다. 내가 무엇을 해도 부모님의 사이를 바꿀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그나마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 어머니의 하소연을 듣는 것이었던 것이다.      


 부모님의 다툼이 내게 주는 후유증은 꽤 오래 진행되었다. 학교에서 집을 오가면서 머릿속으로 내가 본 부모님의 모습을 끊임없이 소가 먹은 것을 되새김질하듯 반복하고 있었고,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뒤를 이었고, 어두운 분위기의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어머니와 단 둘이 있을 때는 어머니가 하소연을 하셨고, 그러다 아버지가 오시면 ‘설마, 오늘도?’라며 분위기를 항상 살피며 불안해했다.      


 부모님의 큰 다툼은 보통 주말에 일어났다. 아버지는 젊으실 때부터 배드민턴을 취미로 하고 계셨는데 우리가 어릴 때는 가족이 함께 아버지가 배드민턴을 치는 뒷산으로 올라가고는 했다. 그러면 가끔은 언니와 나랑 둘이 배드민턴을 치거나 아버지에게 배드민턴을 배우기도 했다. 아버지의 알려주는 방식의 90%가 호통이라서 우리는 금방 아버지와 배드민턴 치는 것을 포기했다. (잠깐 사설을 붙이면 그래서 나는 자전거도 성인이 되어서 혼자 익혔다. 지금은 또 잊어버렸지만) 그렇게 주말을 함께 보내는 날들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아버지는 운동을 혼자 가셨고, 운동을 하시면서 간단한 안주에 음주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셔서 땀을 씻어내시고 다시 나가 식사와 반주를 하고 저녁에 들어오시고는 하셨다. 그렇게 아버지가 혼자가 아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때 나는 언니와 어머니와 함께 집에서 시간을 보내거나 우리도 바람 좀 쐬자며 어딘가 나가고는 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은 둘로 갈라졌다. 그렇게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가 되는 저녁이면 나의 불안은 다시 시작됐다.      


 술을 드시고 잠드신 아버지를 보며 어머니는 혼잣말을 계속하거나 한숨을 쉬거나 기분 나쁜 티를 내시기도 했고,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장난스러운 스킨십을 툭툭하면 술 냄새가 난다며 짜증을 내고는 하셨다. 그러면 아버지는 기분이 상하셨고, 특히 잠드셨다가 일어난 상황이면 그때는 더욱 일이 커졌다. 술이 어중간하게 깨신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언성을 높이시며 속에 있는 말을 날카롭게 내보내셨다. 그러면 어머니는 처음에는 반응을 보이지 않다가 점점 한 두 마디씩 말을 붙였고, 그렇게 두 분 모두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걸 나와 언니는 그대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그 다툼이 말이 아니라 몸으로 바뀌는 순간이 되면 나와 언니는 한 명은 아버지를 한 명은 어머니를 잡았고, 어머니와 한 명이 함께 집 밖으로 나가면 남은 한 명이 아버지를 어떻게든 뿌리치고 뒤늦게 밖으로 나갔다. 그러면 아버지는 화를 내시며 들어오지 말라며 문을 잠가버리셨다. 그렇게 문이 닫힌  어느 날에는 집 안에서 이것저것 유리가 깨지는 소리와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함께 들려왔다.      


 부모님의 큰 다툼이 있은 후에 나는 어머니에게 항상 같은 말을 들었다. 

 엄마는 말 안 해도너희는 아빠 오시면 꼭 인사해야 돼.’

그것이 어머니의 교육 중 하나였다, 그래서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이가 좋지 않고, 성인이 되어서 내가 아버지와 다툼으로 어색한 상황을 겪게 되었을 때도 퇴근한 아버지를 모른 척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부모님의 다툼이 일어나고 얼마동안은 아버지의 눈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아버지의 눈이 아무런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있음에도 아버지가 화를 낼 때 그 눈으로 보여서 아버지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나의 우울함은 대부분 부모님의 다툼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뒤로 따라오는 내 나이대의 고민들이 그 우울함을 더했다. 우울한 내가 적응이 되지 않고, 무서울 정도로 우울함을 느끼면서 여러 날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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