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ON 다온 Aug 26. 2023

우울감이 심해지는 시기가 있다-2

친구와의 불화

 초등학생 시절을 지나 어느 정도의 나이가 되면 가족보다는 친구가 전부인 것 같은 시기가 찾아온다. 그 시절의 친구가 평생 갈 것 같고, 그 친구에게는 모든 해줘도 될 것 같고 그런 시기가 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내게도 그런 시기가 찾아왔다.      


 나는 어릴 적부터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 탓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내게 다가오는 사람은 크게 밀어내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하나, 둘 맞는 것이 있으면 친해져서 쉬는 시간이면 수다를 떨면서 보내고, 급식을 같이 먹고 그랬다. 중학교 1학년 친해진 친구가 있었는데 집의 방향이 달라서 하교를 같이 하지는 않았지만 학교에 있을 때만큼은 함께 보냈다. 그런 친구의 생일이 다가오던 어느 주말 언니와 함께 시내에 놀러 나갔다가 그 친구의 생일이 생각나서 생일 선물을 샀다. 그리고 왜인지 그걸 그 친구에게 빨리 알려주고 싶어서 전화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친구가 받지 않아서 금방 끊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집에 있는 나에게 그 친구가 내게 다시 전화가 왔다. 그래서 반가운 마음에 전화를 받았는데 전화 넘어서 들려온 말은 친구에게는 하기 힘든 험한 말이었다. 독서실에 있던 친구에게 내가 전화를 했는데 그 친구의 전화가 울려서 자신이 속되게 말하면 쪽팔렸다는 이야기를 내게 험한 말을 섞어가면서 했고, 통화 소리가 옆에 있던 어머니에게까지 들리고야 말았다. 그 친구는 본인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고, 나는 당황해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옆에서 그 통화를 듣고, 내 모습을 본 어머니는 ‘너는 한 마디도 못 하냐’며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었고, 내가 앞에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어머니는 ‘그 친구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네가 알지도 못하는데 전화를 할 수 있지, 그걸 그렇게 전화를 해서 욕하고 따져야 하느냐’며 화를 내시고는 그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으라고 하셨다. 어머니의 말대로 못 하겠다고 했지만 당시 나는 어머니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어머니는 내 핸드폰을 가져가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고, 어쩌면 내가 해야 하지만 못 한 말을 하고는 끊으셨다. 그리고 나는 그 상황이 마치 내가 마마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내 일인데 왜 어머니께서 해결해주려고 하는지 이해되지 않아서 어머니에게 그 부분에 대해서 언성을 높이고는 방으로 들어가 혼자 눈물을 흘렸다. 그 후로 나는 반에서 그 친구 하고는 인사도 안 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렇게 친한 친구와 멀어지고 나면 나의 우울감은 조금 더 심해졌다. 마치 세상에 나 혼자 남은 그런 느낌이 들고는 했다.

      

 중학교 3학년,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2학년을 함께 보낸 친구들과는 각자 다른 반이 되었지만 만나면 인사하고, 연락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같은 반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다. 각기 다른 모습에 다른 성격을 가진 아이들이 친구가 되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 안에서 가끔은 서열이 생기기도 하고, 가끔은 내가 원하는 대로 친구에게 바라는 상황도 만들어지기도 하고 그렇다. 하지만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모든 것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당시에 나는 나를 포함해서 4명이 함께 다니고는 했는데 각자 원하는 진로가 다르고, 성적의 대한 생각이나 중요도가 달랐기 때문에 각자 할 수 있는 정도에서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나오는 날이면 성적에 예민한 친구가 우리의 성적을 보고, 시험지를 보며 ‘이 정도는 해야지.’, ‘이렇게 했어야지.’라며 안 그래도 복잡한 마음에 더욱 생채기를 내고는 했다. 그러면 그걸 들은 나와 다른 친구들은 기분이 상했지만 당시에는 그 상황을 피하고 싶어서 별말 없이 ‘그래’하고 지나가려고 했다. 그러다 그 친구와 내가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 어떠한 이유로 다투는 날이 생기고는 했다. 각자 무언가 쌓이고, 쌓인 것이 어느 순간에 터져 나왔던 것이다. 대부분 말싸움은 하지 않았고, 문자나 당시 유행한 사이좋은 세상에서 글로 싸웠다. 각자 느낀 것을 쓰고, 원하는 것을 쓰고, 때로는 사과도 했다. 하지만 다툼이 진행 중 일 때는 학교에서 인사도 하지 않았고, 시간을 함께 보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4명의 무리에서 두 명이 싸웠는데 남은 두 명이 한쪽으로 몰려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남은 한 명은 매번 내가 되었다.

      

 친구와 다투는 일을 거의 겪지 않았던 나로서는 그 상황이 매번 힘에 부쳤다. 집에서는 어머니가 아버지의 대한 하소연을 했지만 나는 내가 겪고 있는 그런 상황을 전혀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뭘 잘못한 걸까’라고 생각하면서도 화가 나고 우울했다. 다툰 친구에게도 화가 났지만 어쩌면 내가 더 화가 난 것은 남은 두 명이었다. 자신들도 그 친구에게 불만이 있으면서 나서서 말하지는 못하고, 나와 다투는 것을 그저 방관하고, 그러면서 뒤에서 내게는 그 불만을 말하고는 했다. 그러고는 학교에 가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그 친구와 함께 다녔다. 그렇게 혼자가 되는 것이 한 해에 몇 번이고 일어났다. 다퉜다가 서로를 이해하고 사과하고 좋게 지내다가 다시 다투고 이해하고 하는 것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 시기에 내가 친구가 더욱 전부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 중 하나는 집안 문제의 대한 영향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집에서 받는 스트레스를 당시에 나는 글로 풀면서도 친구들에게 적당한 선을 지키며 하소연을 했고, 친구들은 힘들겠다며 나를 위로해 주었다. 그랬기 때문에 친구라는 존재가 내게는 더욱 클 수밖에 없었는데 그런 친구들과 동떨어져서 보내는 기간에 나는 더욱 우울했고, 내가 뭘 잘못한 걸까 자책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안과 밖에서 우울함을 느끼는 날들이 늘어났다.

      

 안과 밖에서 우울함을 느끼던 나는 그대로 성인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때때로 다투던 친구와는 그 뒤로도 몇 번이고 다투고, 관계를 끝낼 생각까지도 했지만 여전히 지내고 있고, 심지어 함께 살고 있다. 그리고 뒤에서 내게 불만을 털어놓던 친구 2명 중 한 명은 아예 소식을 모르고, 한 명은 SNS로만 연결되어 있다. 성인이 된 후에도 간혹 의견충돌이 나거나 하면 나는 나만의 동굴로 들어가고는 했다. 내가 뭘 잘 못했을까, 내가 왜 그랬을까,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등등 여러 생각을 하면서 그 동굴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부모님의 잦은 다툼을 겪은 나는 관계 안에서 다툼이 아예 없는 것은 힘든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투는 그 모든 상황이 싫었다. 상대방의 변한 목소리, 표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이 다툼으로 내가 그 관계를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불안해했다. 그래서 내 입장에서 스스로 결론을 낸 것이 무던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는 것이었다. 친구들의 장난, 친구들의 선을 넘은 조언, 친구들의 취향 등 웃어넘기고, ‘그럴 수 있지’라고 넘기고, ‘나도 좋아’라고 넘기면서 무던한 사람이 되려고 했다. 물론 그 모든 것에 불호였던 것은 아니었고, 분명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해서 좋다고 한 적도 있고, 친구의 조언이 매우 고마운 날도 있었지만 때때로 나는 불호이면서도 괜찮다고 넘어가고는 했다. 그런데 문제는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제대로 된 나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또 다른 정도의 우울함과 자괴감을 데리고 나를 누르기 시작했다.

       

나는 왜 내 의견을 말하지 못하지?’

매거진의 이전글 특히 우울감이 심해지는 시기가 있다-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