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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Aug 30. 2023

특히 우울감이 심해지는 시기가 있다-3

미래에 대한 불안

 어릴 적 장래희망이 무엇이었냐고 물어보면 확실하게 답할 수 있다. 그 장래희망을 이루었냐고 물어보면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해야 한다. 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이 있던 날, 졸업식이 끝나고 반에서 각자 앉은자리와 친했던 친구들과 그리고 1년을 보살펴주신 담임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이 끝이 나면 정말 초등학교 생활이 끝이 나는 것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뭘 잘하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전혀 알지도 못했고 생각해보지도 않았다. 그런데 점점 장래희망을 생각해야 하는 단계가 눈앞에 와있던 시기였다.      


 담임선생님은 1년을 보살펴 준 친구들을 한 명, 한 명 안아주시는 것으로 마지막을 장식하셨다. 안아주시면서 한 마디씩 해주시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한 명, 한 명 안으면서 인사를 해주셨고, 나의 차례가 되었다. 나는 반에서 막 튀는 학생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선생님 눈의 안 띌 수 없었던 것이 모든 것이 느리고, 서툴렀던 나는 정규 수업시간이 끝나고 남아서 과제를 해야 하는 날이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선생님하고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그런 나를 선생님이 따뜻하게 안아주셨고, 나도 선생님을 안아드렸다. 그리고 그때 선생님이 내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진선아, 한자 계속하길 바라. 네가 잘하는 거야.’     


그때는 몰랐다, 그날 선생님의 말씀이 내 앞으로 오는 날에 어떤 일을 가져다주게 될지 전혀 예상할 수 없었지만 대답은 잘했다.

     

 중학교 1학년이 된 나는 그저 그런 중학생이 되었다. 평범한 중학생이 된 나는 토요일에 하는 특별활동을 정해야 했는데 특별활동 목록에 ‘한자 자격증 반’이 있었다. 이상하게 거기에 시선이 고정이 되었고, 선생님의 말씀이 지나갔다. 사실 내게 그때 선생님이 한자를 잘한다고 말해주신 것에는 이유가 있다. 나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던 해부터 언니를 따라서 절에 다니기 시작했는데 토요일에 절에 가면 스님에게 한문을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그래서 4학년 때부터 학교에서 뿐만이 아니라 한자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 또래보다 많았고, 그 덕분에 또래보다 아는 한자의 수가 많기도 하고, 한자를 쓰는 것이 또래들은 그리는 것에 가깝다면 나는 쓰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그것만큼은 계속했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선생님의 말씀이 계속 생각나던 나는 나의 특별활동을 ‘한자 자격증 반’으로 선택하였다.      


 내가 선택한 반은 사실 특별할 것이 없었다.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한자 급수 관련 교재를 구매해서 각자 알아서 그 시간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끝이 날 때쯤 얼마나 진행을 하였는지 선생님한테 간단한 확인만 받으면 됐다. 그래서 사실 그 반의 분위기는 자습시간의 풍경이었다. 친한 친구들끼리 모여 앉아서 잠깐 몇 페이지 좀 보다가 조용한 수다가 이어지는 자유분방한 그런 시간이었다. 담당 선생님도 너무 시끄럽지 않은 이상 크게 주의를 주지 않았다.

     

 나는 어찌 되었든 일단 시작한 거 자격증을 얻어 보자고 생각했다. 내가 처음 도전한 한자 급수는 6급이었다. 절에 다니면서 배운 한자들이 꽤 많고, 초등학교 때 배운 한자들도 많았기 때문에 정말 낮은 8급보다는 살짝 높은 급수를 선택해도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렇게 나는 토요일마다 특별활동에 진심이 되어갔다. 그리고 드디어 자격증 시험을 보게 되었다. 나의 첫 한자 자격증 시험은 집에서 3-40분 걸리는 초등학교에서 이뤄졌다. 내가 그곳에 가서 놀랐던 사실 하나는 연령대가 다양했다는 것이다. 나보다 어려 보이는 초등학생들도 있었지만 나보다 훨씬 나이가 있어 보이는 분도 계셨다. 그래서 속으로 꽤나 놀랐던 기억이 있다. 정해진 자리에 앉았고, 시험 시간이 시작되자 문제지를 받게 되었다. 문제를 하나, 하나 읽어가면서 풀어나가는데 거의 막힘이 없이 풀어나갔다. 마치 머릿속에 교재가 그대로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풀었다. 객관식, 주관식 모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기분 좋게 문제를 풀고 나왔다. 집에 와서 가채점을 해보고 나는 자신감을 더욱 얻었다. 떨어질 일이 전혀 없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시험 주최하는 아래에 있는 학원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나의 점수가 꽤나 높은 점수여서 자격증과 함께 우수상장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얻은 자신감으로 좀 더 높은 자격증을 따기 위해 홀로 공부하는 중이었다.

      

 높은 점수로 쉽게 자격증을 땄기 때문이었을까, 높은 자신감을 얻은 나는 이유 없는 자만심을 갖게 되었다. 공부에 소홀해졌다. 그리고 새로운 교재를 살 때 바로 위 급수가 없어서 그 위에 급수의 교재를 샀더니 더욱 어려워져서 흥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상태로 시험을 봤고, 결과는 보지 않아도 예상되었다. 그 후에 나는 조금 충격을 받고는 한자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급수가 올라갈수록 혼자 공부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을 어머니가 했고, 당시 시험 접수를 한 곳이 작은 한자 학원이었기 때문에 그곳으로 나의 학원이 정해졌다. 매주 2-3회, 2시간씩 보내고 왔다. 그렇게 학원을 다니면서 나는 한 단계, 한 단계 자격증을 모으기 시작했고, 중학교 3학년이 되었을 때 내 장래희망은 ‘한문교사’로 정해져 있었다. 그때 내가 한자 3급을 준비하던 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의 장래희망이 정해지고, 나는 주위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받기도 했다. 그 시기까지 본인이 뭘 하고 싶은지 정하지 못하고 지내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나는 확실하게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에게는 그것이 대단하면서도 부럽다는 느낌을 줬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그만큼 그것의 대한 무게감을 견뎌야 했다. 내 장래희망이 한문교사인 것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 몇 명은 어느 날 갑자기 수업시간에 내게 한자를 읽히게 시켰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나는 등 뒤에서 식은땀이 흐르고, 모든 시선이 내게 집중되는 것 같았고, 틀렸을 경우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그렇게 나는 중학생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나의 장래희망을 바꾸지 않았지만 내 속에는 꽤 큰 불안감이 존재했다. 내가 지금까지 해 온 것은 하나인데, 이것이 이뤄지지 않으면 나는 뭘 해야 하는 걸까 싶었던 것이다. 나의 대한 확신이 들지 않을 때면 나는 불안했고, 무서웠고, 내가 과연 잘하고 있는 것일까 끊임없이 고민하면서 우울해했다. 하지만 그것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해결법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그냥 시시때때로 혼자 동굴에 들어가서 혼자 속으로 울고 다시 괜찮아지는 것을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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