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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Sep 02. 2023

특히 우울감이 심해지는 시기가 있다-4(2)

나는 정확한 확인과 인정이 필요하다.

 아버지와의 몸싸움이 있고, 나의 우울함은 더욱 깊어졌다. 당시 나의 우울함은 불안함과 서운함, 두려움 등 부정적인 모든 감정이 합쳐져서 만들어졌다. 아버지와 몸싸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 아무도 내게 안부를 묻지 않는 것에 대한 서운함, 아버지의 존재를 떠올리고 보기만 해도 그날로 돌아가면서 다시 느껴지는 두려움, 그리고 언제 다시 일어날지 몰라서 느끼는 불안함 등 나는 그렇게 더욱 내가 전에는 느껴보지 못하는 우울의 심해의 바다로 가라앉고 있었다. 내가 당시 그 우울함에 적셔지면서 생각했던 것이 있다.      


나는 사랑받을 수 있는 사람인가?’     


내가 아버지와 맞섰다는 사실이 나의 잘못된 행위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아버지에게 발길질을 당했다는 것이 나는 더 이상 누구에게도 귀하게 여겨질 수 없고, 사랑받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만들었다. 누군가 내게 함부로 대하면 ‘나도 우리 집 귀한 자식인데-’라며 떳떳하게 반박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또한 어머니도, 언니도 내게 안부를 묻지 않는 것도 내게는 내가 이 가족 안에서 가벼운 존재라고 느껴졌다. 그렇게 가족 모두에게 서운함과 원망이 쌓여가고 있던 어느 날에 어머니는 내게 물었다.      


 엄마시골로 내려가서 살면 어떨 것 같아?’     


내가 고등학생 시절부터 어머니는 조부모님을 모시기 위해 매번 한 달의 반 정도를 시골에 가서 지내셨는데, 내게 질문을 했던 당시에 할아버지는 돌아가셔서 안 계셨고, 할머니는 요양병원에 계셨기 때문에 시골집은 비어있는 상태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그 집에 내려가서 살면 어떻겠느냐고 물어보셨다. 그 질문에 처음으로 나는 정확하게 내 의견을 말했다.      


싫어가지 마.’      


하지만 어머니는 그 질문을 하고 1-2달 후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와 같은 집에 있게 되었고, 마치 어머니에게 버려진 것 같았다. 내가 나의 학생시절부터 겪어오던 불안함, 우울함을 말하지 않으면서 어머니의 갱년기로 인한 모든 감정들을 받아줬고, 자식으로서는 듣기 힘든 말도 들으면서 견뎌왔는데 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이렇게 대할 수 있을까 서운했고, 원망스러웠다. 어머니가 없는 집은 내게 더는 조금도 편안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 시기부터 집에 있는 시간을 줄여나가기 시작했다. 가족이 아무도 없는 시간에 일어나서 끼니를 대충 해결하고, 최대한 아버지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집안일을 어느 정도 해놓고 준비를 하고 카페에 나가 글을 쓰거나, 바리스타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시간을 보내다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 그리고 끝난 후에도 최대한 집에 늦게 들어오기 위해서 1시간 정도가 걸리는 거리를 매번 걸었다. 그렇게 걷는 시간에 어머니하고는 통화를 자주 했는데 통화를 하면서도 나는 어머니가 원망스러웠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나의 안부를 듣고, 어머니의 안부를 전하고 나서는 매번 아버지 험담을 했다. 내가 아버지와 지내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어머니는 그랬다.      


 그때 나는 ‘이간질’이라는 것이 별 것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쩌면 그 이간질을 나는 학생시절부터 겪어온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더욱 나는 어머니의 감정쓰레기통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고, 더 나아가 때로는 가족 모두의 감정쓰레기통이 된 것처럼 느껴졌다. 어머니의 자리가 비워지면서 집안일에 대한 요구와 불만을 당연하게 표현하는 아버지, 그리고 그런 아버지와 부딪히면서 받는 스트레스나 일을 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내게 말하는 언니까지 가족 모두의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을 내가 나눠 받고 있는데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나의 마음을 터놓고 말할 수 없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들 그것을 끝까지 들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모두 자기도 이러저러해서 힘들다고 자신의 힘듦을 더욱 내게 어필하였다. 그런 날이 늘어나면서 나는 더욱 나의 마음이야기를 하지 않게 되었고, 하고 싶지 않았고, 못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떨어져서 지내게 되면서 나는 ‘독립’을 더욱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살고 있는 이 집에서도 나는 자유롭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욱 강해졌다. 그러다가 알게 된 것이 독립에도 종류가 있다는 것이었다. ‘경제적 독립’과 ‘정신적 독립’ 그리고 나는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 당시 내 현실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어머니로부터 정신적인 독립을 먼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어머니가 아버지의 대한 험담을 하면 나는 그것을 그만하라고 직접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부터 나는 어머니와도 의견 다툼이 늘어났고, 때로는 감정이 상하기도 했다. 과도기였다, 어머니와 나의 관계가 바뀌고 있는 그런 시기였고, 가족에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고 느껴지는 나를 스스로 아껴주고, 사랑해 주어야겠다고 깨닫게 되는 시기였다.


 깨달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나의 감정, 생각보다 상대의 감정, 생각이 먼저였던 내가 나를 표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가족에게도 그랬고, 친구에게도 그랬고, 모든 사람들에게 그랬다. 내가 나의 감정,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깨닫고 4-5년이 지난 지금도 쉽지 않다. 매번 표현하기 전 주저하고, 주저하다가 결국 하지 못하기도 하고, 표현하고 연결되는 그 상황에 힘들어하기도 하고, 그럴 때마다 나는 상대의 대한 나의 가치를 생각하게 된다. 확인받고 싶은 것이다. 내가 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내가 나의 사람들에게 소중한 존재라고 혼자 ‘그렇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너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야, 네가 필요해.’라고 확인받고, 존재를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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