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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Sep 16. 2023

우울감과 외로움은 짝꿍인가 보다

함께 있어도 혼자인 것 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우울한 것이 느껴질 때면 나는 꼭 내 존재의 의미에 대해 생각했다. 부모님에게 나는 어떤 자식인가, 언니에게 나는 어떤 동생인가, 친구에게 나는 어떤 사람인가 등등 나의 모든 인간관계를 생각하면서 그들에게 내가 꼭 필요한 사람이며, 그 역할에 맡게 잘하고 있는지 생각했다. 정확히 말해서 내가 그들에게 필요한 사람, 소중한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 했던 것이다. 그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을 나는 매 순간 갈망했지만 우울함이 깊어질 때면 더욱 그 인정과 사랑에 갈증을 느꼈다.      


 중학생 시절,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느끼게 된 감정이었고 어머니의 갱년기로 인해 어머니의 모든 이야기를 들어야 했던 나는 나의 감정을 가족이나 친구에게 뚜렷하게 말할 수 없었다. 그런 기간이 늘어나면서 나는 나의 감정은 오로지 나의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면서 그 감정을 나누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어머니의 감정을 나눠 받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부정적 감정 나눔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저 나의 부정적인 감정이 그들에게까지 미쳐서 그들이 힘들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 것이니 내가 알아서 해결해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러던 찰나에 어머니가 내게 예민하다는 말을 했고, 그 후부터는 더욱 나의 감정을 누군가에게 말하는 것이 어려워졌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나의 이야기를 하면 돌아오는 것은 내가 언젠가 그들에게 보냈던 공감, 위로가 아닌 또 다른 그들의 사정이야기가 시작이 되거나 내게 해결책을 주려고 하는 말들이었다. 그러면 나는 그 순간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한 것을 후회하고는 했다. 함께 있어도 마치 혼자가 된 것 같았다. 이 세상에 나를 위로해 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것을 느끼고 나면 나는 한 층 더 동굴을 파고 내려가고는 했다.      


 깊은 동굴로 들어가면서도 누군가 내게 너 잘하고 있어라고 한 마디만 해주면 금방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깊은 동굴에 있는 날이 길어지면 가끔은 동굴 밖을 보고 싶은 날이 생긴다. 그런 날에는 누구든 상관없이 나를 안아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무조건적으로 내 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런 설명하지 않고 ‘힘들어’라고 말하며 기대면 ‘그렇지, 힘들었지, 고생했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어깨나 품을 빌려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내 곁에 항상 누군가 있었지만 외로워했다. 그 외로움이 더 큰 외로움과 상실감을 가져올 것이라는 사실은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내 안에 있는 어린아이가 계속해서 울고 있었지만 나는 그 아이를 달래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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