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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ON 다온 Oct 04. 2023

약으로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은 감정을 움직이고, 몸을 움직이게 만든다.


 약을 먹으면서 나는 날이 갈수록 안정을 찾아갔다.

그 안정을 찾기까지 약이 늘어났지만 그래도 그 덕분에 내가 좋아했던 것들을 생각하고, 그것을 하기 위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학생 시절부터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의미 없이 그리던 꽃이 있었는데 그 꽃을 그리고, 칠할 때면 나는 거기에 몰두해서 잡생각들을 잊을 수 있었다. 그래서 종이와 그린 그림을 보관할 파일 하나와 갖고 다닐 수 있는 작은 색연필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방에 항상 갖고 다니면서 누군가를 기다리거나 본가에서 딱히 시간을 보낼 만한 것이 없을 때 그냥 생각나는 대로 쓱쓱 그렸다. 그러면서 나는 더욱 안정을 찾을 수 있게 되었고, 더 안정을 찾고 싶어서 주말이면 나의 힐링 존재인 고양이 도도가 있는 본가로 향했다.      


 어느 정도 안정기가 찾아오고, 일상생활을 하는 데 있던 어려움들이 하나, 둘 없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일상을 되찾아가기 시작했고, 오랜만에 주말을 보내게 되었다. 오랜만에 쉬는 주말, 전 날 본가로 퇴근했던 나는 오랜만에 다음 날 일을 가야 한다는 부담감 없이 잠에 들었다. 하지만 그 주가 오픈 담당 주간이었기 때문일까, 새벽 4시 30분에 눈이 따지더니 그날은 다시 잠드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계속 뒤척이다가, 상체를 일으켜 눈을 감은 채로 앉아있었다. 분명 내 상태는 더 자야 하는 것이 맞는데 잠이 쉽게 다시 들지 않았다. 힘들었던 이른 시간을 보내고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가 아침이 되어서 눈이 다시 떠졌다. 출근 준비를 하는 언니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리고, 간식을 달라는 도도의 모습이 보이고, 그런 도도에게 장난치는 아빠도 보였다. 오랜만에 찾은 주말이 신기했다. 오랜만에 찾은 주말이니까 집에만 가만히 있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내가 나를 너무 잘 알아서 일부러 움직이기로 했다. 오랜만에 주말 운동을 다녀오 남은 주말을 보냈다.      


 나는 병원을 다니면서 나를 내가 확진을 받지 않았지만 그 정도가 어떠하든 우울증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내가 그렇게 내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고, 그래서 사라지고 싶고, 용기도 없으면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이 들었다가도 그 생각들 사이로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생각나고 그들이 걱정되는 내 모습을 느끼면서 나는 어쩌면 지금까지 내 주위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게 변고가 생겼을 때 나를 한 번은 더 생각해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우울하면 어때,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그 모습 또 나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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