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아교육, 인생교육] 말 한마디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

말 한마디로 천냥 육아 너머 가치생 살기

by 소소호호


“수오야, 동생들 데리고 가서 네가 돌봐줘. 네가 가장 잘하는 거.”


어릴 적 어른들은 나에게 아주 큰 임무를 주었다. 그것은 바로 9명의 사촌 동생들을 잘 보살피라는 임무였다. 추석이나 설날처럼 대가족이 모두 만나는 날이 되면 나는 동생들의 대장이 되었다. 크고 작은 아이들 중 제일 맏언니는 단연 나의 친언니였지만, 언니에게 어른들은 그 임무를 주지 않았다. 그 일은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다고 하셨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해 보면, 시끌벅적한 동생들과 함께하는 일을 언니 역시 원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깨가 한껏 높아지면서 “얘들아 다들 나 따라와!” 하고 신나게 모두를 이끌고 방에 들어가는 나의 모습을 보면서 어른들은 다가올 평온함을 기대하며 미소를 짓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네가 가장 잘하는 것’이라는 그 한마디의 힘은 나의 인생을 안내했다.


방에 들어간 뒤, 어린 시절의 나는 동생들을 위한 영유아교육 활동을 이미 구성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우선 동생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그들을 모두 앉혀 놓고 동화책을 실감 나게 읽어주었다. 인형들을 가지고 인형놀이를 해주고, 역할 영역에서 놀이의 흐름을 맡는 엄마 역할을 했다. 슬슬 힘이 들 때면 동생들에게 자유놀이 시간을 주었다. 누가 무슨 놀이를 하는지 틈틈이 살펴보고 다가가서 말을 건네며 참여하기도 하였다. 조금 큰 동생들에게는 한글 쓰기를 알려주었고, 아직 어린 막내들은 곁에서 안고 아기침대를 흔들며 재웠다. 나에게 그 일은 어렵거나 힘든 일이 아니라 즐겁고 재미있는 시간이었다.


나에게 유아교육은 그때부터였을까. 지금도 나는 유아교육이 가장 먼저 ‘보살핌’이라고 생각한다. 이때 ‘보살핌’이라는 것은 많은 것을 포함한다. 그들의 얼굴이 편안한지 살펴야 하고, 갈등을 해결해 주어야 하며, 힘들지만 나의 마음뿐만 아니라 내 몸을 그들에게 바쳐 지켜야 한다. 내 품에서 포근하게 낮잠을 잘 수 있고, 배우고 싶은 것을 내가 알려줄 수 있고, 나에게 어떠한 두려움 없이 그들의 마음속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그들의 마음을 지키고 살피고 보호하는 것. 그것이 나에게 유아교육의 의미였다.


이렇게 나의 마음속에 자리 잡았던 ‘유아교육’의 의미를 다시 꺼내주신 분은 바로 대학교에서 만난 교수님이시다. 유아교육학과에 입학하고 맨 처음 신입생 환영회를 하는 자리에서 만난 교수님은 모두에게 질문을 주셨다.


“왜 중앙대학교 유아교육과에 입학하셨나요?”


꼭 나의 눈을 마주 보며 나에게 개인적으로 질문하시는 것 같이 마음이 콕 찔렸다. 사실 나에게는 뚜렷한 사명감이나 목표의식이 없었다. 애정이나 흥미를 가지고 내 인생을 계획하여 그 자리에 있지 않았다. 내가 지원할 수 있는 학교와 학과 중에서 다른 곳보다 나에게 편안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그 눈빛을 읽으셨는지 교수님은 정말 신기하게도 이런 말씀을 하셨다.

“여기에 큰 꿈이 있어서 온 학생 별로 없지요? 성적 보고 맞춰 왔겠지. 나도 그렇게 이 대학교에 오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여러분의 선배로서 그렇게 유아교육을 선택하여 공부하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데 분명한 것은 후회한 적이 없어요. 내가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든다니까 신기하게. 여러분도 그럴 거예요. 동생들 본 적 다 있잖아요? 동생 돌보면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낀 적 있잖아요? 지나가는 아기를 보며 ‘참 예쁘다’ 하고 느낀 적 있죠? 그거면 여러분도 준비가 된 거예요. 그게 없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환영합니다. 응원합니다. 입학을 축하합니다.” “여기에 큰 꿈이 있어서 온 학생 별로 없지요? 성적 보고 맞춰 왔겠지. 나도 그렇게 이 대학교에 오게 되었으니까. 그런데 내가 여러분의 선배로서 그렇게 유아교육을 선택하여 공부하고 지금 이 자리에 있는데 분명한 것은 후회한 적이 없어요. 내가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시간이 지날수록 든다니까 신기하게. 여러분도 그럴 거예요. 동생들 본 적 다 있잖아요? 동생 돌보면서 즐거움과 기쁨을 느낀 적 있잖아요? 지나가는 아기를 보며 ‘참 예쁘다’ 하고 느낀 적 있죠? 그거면 여러분도 준비가 된 거예요. 그게 없으면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환영합니다. 응원합니다. 입학을 축하합니다.”


정말 멋있으셨다. 섬세하시고, 따뜻하시고, 예리하셨다. 그때 교수님께서는 아마 나의 눈빛이 바뀐 것을 알아보셨을 것이다. ‘유아들에 대해 공부하면 이렇게 따뜻한 표정과 말투를 가지며 눈빛을 보고 마음을 읽고 다독여줄 수 있는 거구나.’, ‘나의 작은 경험도 유아교육이라는 공부를 하기에는 충분하구나.’, ‘내가 여기서 잘 해낼 수 있겠구나.’, ‘유아교육이라는 것은 내가 해왔던 그 보살핌부터 구나.’, ‘나도 교수님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학교를 다니는 것이 즐거웠다. 교수님께 내가 느꼈던 것과 같이 유아교육은 이 세상의 아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것이라는 생각에 꼭 필요한 학문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누구보다 내가 잘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어렸을 때부터 듣지 않았던가. 이것은 바로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다. 편안한 느낌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던 나의 전공이 혹시 나를 위해 짜인 운명은 아니었을까? 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말 한마디는 그렇게 시작의 순간이 되었다.


후에 내가 유아교육과를 전공하고 교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느낀 것인데, ‘보살핌’은 유아교육의 의미임과 동시에 큰 소양이다. 대학시절 진로가 맞지 않다고 바꾸거나 졸업 후 전공과 다른 길을 선택하는 친구들의 이유를 들어보면 ‘보살핌’이라는 것이 자신에게 힘든 일이며 잘 맞지 않다고 말을 했었다. 현장에서 만난 여러 실습생들과 동료 교사 중 유독 유아교육을 힘겨워하는 사람들을 보면 ‘보살핌’에 부담을 느껴 아이들과 함께하는 생활을 어려워했다. 지금까지도 나에게 이런 ‘보살핌’이라는 소양이 어릴 적 나의 경험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에 참으로 감사하다.


‘네가 가장 잘하는 것!’

결국 어른들이 그 옛날 나에게 해주었던 말은 사실이 되었다. 어쩌면 대식구 모임의 질서를 위한 전략이었을 수도 있지만 지금은 내가 선택한 일의 시작이 되었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만난 의미 있는 한 사람이 그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는 말 한마디가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너는 이걸 정말 잘한다!” 전략이면 어떤가. 나의 아이에게 하는 이 말 한마디에 대단한 힘이 담겨있다.





keyword
화요일 연재
이전 08화[유아교육, 인생교육] 진상 부모, 진짜 부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