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한마디로 천냥 육아 너머 가치생 살기
사랑해, 안아주기, 뽀뽀
큰 아들인 재재는 말을 좀 빨리 시작했다. 6개월쯤 음마! 음마!를 시작하더니 아빠를 지나서 돌쯤에 의사 표현을 문장으로 하기 시작했다. 집에 있는 사자 인형을 보면서 “사자야,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하고 인형놀이를 하곤 했다. 말을 빨리 시작하는 것은 많은 장점이 있다. 먼저 아이의 기분이나 상태를 빠르게 알 수 있다. 어디가 다쳤냐고 묻기 전에 울면서 먼저 어디에서 어떻게 다쳤는지 이야기를 해준다. 지금 아이가 짜증을 내는 이유가 졸려서인지, 배가 고파서인지 엄마인 나에게 말을 해주니 금방 해결할 수 있었다. 말이 빠른 아이와는 대화하는 것이 재밌기도 하다. 남편이 당직을 서면서 집에 들어오지 못하고 재재와 나 둘이서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 시간이 힘들거나 적막하지 않았다. 친구와 함께 수다를 떠는 것처럼 의지가 되었다. “흠 오늘은 뭘 먹지?” 하고 냉장고를 열어 혼잣말을 하면, “엄마, 어제는 고기를 먹었으니까 오늘은 생선을 먹는 거 어때?” 하고 쪼르르 내 말에 반응하는 것이 좋았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 듣게 된다. 그렇게 그날의 메뉴는 생선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대화의 힘은 대단하다. 어쩌면 명동 한복판보다 무인도가 훨씬 더 살기 어려운 곳이라 생각한다. 임신 기간에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입덧은 혼자 있을 때 유독 더 심했다. 멀리 제주도에 있는 친정 엄마를 대신하여 시댁에서 도움을 받았다. 어머님과 아버님, 아가씨 모두 나에게 혼자 쉬라고 방 한 칸을 내어주셨다. 그런데 이상하게 방 안에 혼자 있으면 귀에 윙 하는 소리가 들리며 멀미가 나고 입덧이 올라왔다. 그렇게 자꾸 방 밖으로 나갔다. 남편은 시댁이지만 편하게 생각하라며 들어가라고 했지만, 모르는 소리다. 그렇게 배 속에 있는 재재와 나는 사람과 함께 웃고 이야기를 하고 싶었나 보다. 방 밖에서 훨씬 마음이 평안했다. 사람들의 목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리니 귀에서 맴돌던 소리도 없어지고 멀미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배 속에서부터 재재는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말이 빨랐던 재재를 우리는 가끔 아이가 아닌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아이의 대화는 마치 다 자란 학생과 부모의 대화 같았다. “아~ 아빠는 재재가 안 놀아 주면 방에 가서 잠을 자야겠다.” 하고 말하면 “아! 아빠가 잠을 자서 내가 혼자 놀면 오늘은 엄마가 더 좋은 날이다.” 하면서 아빠의 말투를 따라 하였다. “에이! 아빠 싫어!”라고 말하지 않고 빙빙 돌려 말하는 그 어린아이가 참 귀엽고 예뻤다. 말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아이의 말은 그냥 부모의 것을 따라 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의 마음을 읽고 부모의 표정을 읽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나의 정서를 조절하여 표현하는 굉장히 복잡한 단계를 거치는 것이다. 그렇게 대화를 하며 우리는 아이를 지극히 사랑했다.
하루는 아이에게 물어봤다. “재재는 엄마가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언제 느껴?” 재재가 답했다. “나는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고 뽀뽀해 줄 때! 엄마 품이 따뜻해!” 엄마 품의 따스함을 느끼고 싶은 그 아이는 영락없는 아이였다. 말을 잘 하니 표현에도 솔직했으리라. 솔직한 아들의 마음을 듣고 나는 아이를 힘껏 안아주고 볼에 뽀뽀를 해주었다. “엄마는 내가 언제 엄마를 사랑한다는 것을 느껴?” 말을 꼭 되돌려 하는 재재는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건넸다.
아차, 이런 물음을 받아본 적이 없다. 나의 엄마와 아빠에게도, 내가 만난 선생님에게도, 연인이었던 남편에게도 이런 물음을 받은 적이 없다. 뭐라고 대답을 해줘야 할까? 고민했다.
“그냥 너는 내 아들이니까 엄마를 사랑하고 있겠지?”
“엄마가 너를 사랑하니까 너도 엄마를 사랑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재재의 사랑은 항상 느낄걸?”
말도 안 되는 대답이다. 정성스레 대답해 주던 두 돌 배기 아기의 대답보다 못한 것만 같았다. “그래. 네가 엄마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처럼 엄마도 너의 사랑을 느낄 수 있을 때가 있어. 엄마는 재재가 엄마에게 ‘사랑해’라고 말해줄 때!”
표현하지 않아도 당연하다고 느끼는 사랑을 표현한다면, 사랑은 얼마나 넘치게 될까? 그렇게 나도 너에게 나의 사랑을 표현하고 너도 나에게 사랑을 표현하게 되었다. 더군다나 두 아들의 엄마인 내가 ‘사랑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때는 언제까지일까? 말을 배워가는 어릴 때 ‘사랑해’라는 말을 가장 많이 하지 않을까? 그렇게 ‘사랑해’ 릴레이는 시작되었다.
그렇게 재재가 두돌 넘어서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매일 사랑을 표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일어난 직후일 때도 있고 유치원에서 하원하고 일 때도 있고 자기 전일 때도 있다. 안아주고, 뽀뽀하고, ‘사랑해’ 하고 말을 한다. “어! 오늘 뭐 깜빡한 것 없어?” 하면 재재는 얼른 달려와 안아주고 뽀뽀를 하고 ‘사랑해요’라고 이야기를 한다. 그렇게 시작한 사랑 릴레이는 매일 계속되어 지금은 첫째와 둘째 아들이 살갑게 사랑을 표현하는 하루를 만들어주었다. 가끔은 엄마가 아닐지라도 형제가 서로가 안아주며 “사랑해” 하고 말을 한다.
유아교육에서 사랑은 애착으로부터 나온다고 한다. 애착은 스킨십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학부, 석사, 박사 과정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보아온 동영상이 있다. 작은 원숭이 한 마리가 실험실에 들어간다. 실험실에는 두 가지가 놓여있다. 하나는 차가운 쇠로 만들어진 원숭이 모형으로 그 가운데는 우유병을 달아 수유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였고, 다른 하나는 먹이는 없지만 부드러운 천으로 덮인 원숭이 모형이었다. 원숭이는 어디를 향해 뛰어갔을까?
원숭이는 강철어미(Iron maidens)가 아니라 헝겊어미(Nture of love)에게로 단번에 달려간다. 그리고 헝겊어미를 끌어안는다. 그렇게 헝겊어미를 끌어안던 원숭이가 배가 고플 때에는 몸을 헝겊어미에게 접촉한 채 입만 벌려 우유병을 빨아먹고는 다시 헝겊어미를 껴안는다. 해리 할로우의 원숭이 애착 실험의 결과이다.
혹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있는가?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음식을 함께 하는가? 영화관에서 손을 잡고 재미있는 영화를 함께 나누는가? 데이트를 하고 나서 멋진 선물을 받았는가? 흔히 사랑은 느낌이라고 정의한다. 진심이 담긴 사랑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축복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당연한 사랑일지라도 이를 표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참 소중하다. ‘차가워!’ ‘따뜻해!’ ‘무서워!’ 어린아이들은 느낌을 말로 가장 먼저 배운다. ‘사랑’의 느낌도 마찬가지이다. 말이 함께할 때 더 잘 배우고 느낄 수 있다. 너무 늦기 전에 사랑을 말로 표현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