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vs 경력
어릴 적, 나에게 직업은 마치 어떠한 숭고한 소명 같은 것이어서, 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발견되는 어떠한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인 줄만 알았다.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나서야 뒤늦은 나의 방황은 시작되었지만… 그리고 깨달았다. 나에게 맞는 커리어를 찾는다는 것은 오히려 시간과 탐구가 필요함을.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하나의 방향을 찾아가는 것임을. 그리고 열정이라는 것조차도, 선행되는 필수 전제 조건이 아닌, 경험의 과정 속에서 탄생되고 성장되어 가는 것임을. 그러한 열정은 일종의 보이지 않는 마음속의 신호등 같은 것으로, 우리를 나아가야 할 방향으로, 그리고 있어야 할 곳으로 계속 이끌어 가는 것임을.
이석현 작가가 말했듯이, 어쩌면 나에게 맞는 직업을 찾는다는 게,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것 사이에서의 비극이 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는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 사이에서, 적당히 접점을 찾으라고 말하지만, 사실 우리는 정작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도 제대로 모르거나, 혹은 너무 많은 선택 속에서 이상과 현실 속에서 방황하곤 한다.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노출이 없으면 좋아하는 것을 알 수가 없고, 너무 다양한 재능과 열정이 있어도 한 가지 직업을 선택하기가 힘들다.
본래 직업이란 것 자체로는, 우리 자신의 다양한 독창성과 개별성을 정확하게 정의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 개개인이 가진 잠재력과 독창성을 기반으로 한 것이 아닌, 사회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시스템의 한 부분이기에. 따라서 우주만큼 복잡하고 다양한 개개인의 인간에게, 단 하나의 이상적인 직업을 찾아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철학, 예술, 과학, 문학 등 아주 많은 다양한 부분에 재능이 있었던 세종대왕, 다산 정약용 선생님, 벤자민 프랭클린,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 젤로 등 과거의 거인들이 고도로 전문화된 현대 사회에 다시 태어난다면 같은 이름을 남겼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최재천 교수님의 말씀처럼, 앞으로의 사회는 통섭이 중요한 때이다. 각각의 전문화된 분야를 뛰어넘어, 연결성과 다양성, 포용성으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그런 인재. 그래서 나는 개인적으로 청년들에게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보라고 말하고 싶다. 또한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Job (직업) 자체에 집중하기보다는, 인생전반의 Career (이력/경력)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다. 직업이 하나의 점이라면 경력은 이어지는 선이다. 점은 상황에 따라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경력은 그러한 직업들이 연결된 하나의 큰 방향이고 틀이다. 그리고 다양한 직업들을 통해 얻어진 경험들과 다양한 관점은 나만의 독창적인 경력을 쌓는데 도움이 된다.
늘 아는 것만큼 보인다. 그리고 보이는 만큼 선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