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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사기꾼 Jun 07. 2018

나를 일으키는 개

외롭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사람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가 너무 싫었는데 프리랜서가 되어 집에서 혼자 일하니 사람 안 만나도 되고 세상 편하다고 동네방네 외치고 다녔기 때문이다. 물론 딱히 외로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말을 하고 싶었다. 대화를 하고 싶었다. 일하다가 잠깐 휴게실에 커피 마시러 갈 동료도 없고, 교정 보다가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볼 옆자리 선배도 없으니 하루 종일 목소리를 한 번도 내지 않는 날도 많았다. 


어느 순간 혼잣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이쿠 이거 한 문장 빠트렸네! 교정지는 오늘 온다더니 왜 소식이 없는 거야? 내일의~ 일정은~ 어떻게 될까나~ 아저씨처럼 문장에 아무렇게나 멜로디를 넣어 말노래를 하기까지 했다(제발 그것만은!).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다가 급기야 밥통에게 말을 걸었다. 


“쿠쿠가 잡곡 취사를 시작합니다.”

“그래 열심히 좀 해라. 지난번에는 밥이 좀 질더라. 내가 널 얼마 주고 샀는데 일을 그렇게 설렁설렁하냐.”


허리가 너무 아팠다.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정말 허리가 아팠다. 회사에서 일할 때도 똑같이 앉아서 일하는데 왜 유독 허리가 아프다고 느낄까. 곰곰이 생각해보니 회사에서는 회의하려고 일어나고 커피 마시려고 일어나고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고 가끔 책장 대청소한다고 다 같이 일어나고, 하루에도 몇 번씩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했다. 혼자 일하고 있으니 화장실 가는 일 외에는 의자에서 일어날 일이 없다. 허리가 아프지 않을 리가 있나. 


어느 날 TV에 개통령이 등장했다. <세상에 나쁜 개는 없다>라는 귀여운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동물행동전문가가 문제견의 문제를 파악하고 원인을 찾아내 해결하는 방송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마도 수많은 반려견 가족들은) 개가 가진 문제의 대부분이 산책이라는 간단한 방법으로 해결된다는 사실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또한 개에게 있어 산책은 숨을 쉬는 것만큼이나 일상적이어야 하고 개의 삶에 필수적인 것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랐다. (물론 그 외에도 그동안 내가 얼마나 개를 잘못 키워왔는가에 대한 깨달음은 너무 많으니 일단 묻어두기로 하자.) 


구부정한 거북이 자세로 모니터만 바라보던 나는 매일 하루에 한 시간씩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개 산책이라는 아주 훌륭한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개는 온 동네를 총총총총 걸어다니며 풀 냄새를 맡고 개친구들을 만나고 응가 냄새를 확인하며 부지런히 소셜라이프를 즐겼다. 나는 그런 개의 똥꼬발랄한 모습을 보며 웃는 날이 많아졌다. 다른 개와 보호자들을 만났을 때, 처음에는 눈인사만 하다가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몇 살이에요? 남자예요, 여자예요? 아이고 너무 귀엽네요. 우리 개는 겁이 많아요. 저쪽 체육공원 가보셨어요? 거기가 개 냄새가 많이 나나봐요, 애들이 되게 좋아해요.” 나는 결코 모르는 사람에게 쉽게 말을 거는 성격이 아닌데 정신을 차려보면 어느새 키즈카페에서 만난 엄마들처럼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 이렇게 애엄마, 아니 개엄마가 되어가는 걸까.


산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발바닥을 닦아주면서 오늘 산책은 어땠는지, 오늘 개친구들 냄새는 많이 맡았는지, 왜 새 소리를 듣고 놀라서 껑충 뛰었는지, 다리가 아프진 않았는지 물었다. 물론 개는 말이 없다. 뭔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고 당장 이 발을 내려놓고 개껌을 달라는 표정으로 올려다볼 뿐이지만, 동료랑 수다를 떠는 것만큼 즐겁고 편안했다. 


가끔 다시 회사에 들어갈까 하는 생각을 하곤 했다. 편집자가 하는 일이라는 게 책 만드는 모든 과정을 홀로 디렉팅하는 감독에 가까운 역할인지라,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긴 하지만 딱히 회사 동료들과 협업을 할 일이 많지 않다. 그럼에도 동료들은 내가 그토록 힘들어하던 조직생활을 견디게 해준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그런 존재가 곁에 없다는 생각을 하니 자주 힘이 빠지고 맥이 풀렸다. 하지만 다시 회사로 돌아가는 상상을 하니 절로 탄식이 흘러나온다. 아니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지. 


어차피 동료들과 마음을 나누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것은 업무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업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하면 서로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내게 필요한 것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지치고 힘들 때 같이 웃을 수 있는, 그저 곁에 있기만 해도 평온해지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을까. 그런 존재를 나는 왜 그토록 멀리서 찾으려 했을까.


이제 더 이상 밥통에게 말을 걸지 않는다. 일하다가 안 풀리면 개를 앉혀놓고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허리가 아프면 똥가방과 똥봉지, 목줄을 챙겨 산책을 나간다. 개엄마들을 만나면 개육아에 대한 수다를 떤다. 동네 개들을 자주 마주치니 이름을 부르며 반갑게 인사하는 날이 늘었다. 개가 나를 일으키고 개가 나를 일하게 하고 개가 나를 살게 한다. 바보같이, 외롭다고 말할 뻔했다. 이렇게 사랑스럽고 다정하고 헌신적인 동료가 곁에 있는데, 바보같이 ‘혼자’라고 생각할 뻔했다.  


일러스트: 김재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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