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호밀밭의 사기꾼 Jun 08. 2018

실체가 없는 일의 실체

종이의 결이 잘못 들어갔다. 인터넷서점에서 주문한 책을 받아든 순간, 이것은 필시 종이 결이 잘못 들어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페이지를 양 옆으로 활짝 열었을 때 부드럽게 스르륵 펼쳐지지 않고 어떻게든 열리지 않겠다고 버티는 굉장한 힘이 느껴진 것이다. 갑자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아, 어떡하지. 어떡하지. 인쇄소에서 종이 잘못 넣은 것 같은데 어떡하지. 내가 만든 책도 아닌데 쓸데없이 걱정이 되고 마음이 안정되질 않았다. 강박증이 있는 사람들의 심정이 이해가 될 지경이었다. 안 돼! 종이 결이 잘못 들어갔다구! 결국 조심스럽게 해당 출판사의 SNS계정으로 ‘종이 결이 반대로 들어간 것 같다, 책이 잘 펴지질 않는다’고 메시지를 보내고 말았다. 정말 오지랖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오지랖이었다.  


이제 막 인쇄를 마친 책, 아니 가제본을 받아들고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본문 종이를 만져보는 것이었다. 이 책의 콘셉트와 판형에 적절하게 어울리는 두께감인가, 너무 얇아서 뒤가 비치지는 않는가, 혹은 너무 두꺼워서 지나치게 부피가 커지진 않았는가, 종이 결은 제대로 들어갔는가, 냄새는 좋은가. 응? 아니다, 마지막 항목은 농담이다. 어쨌든 내게 책의 종이는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책의 물성을 완성하는 핵심 재료는 아무래도 역시 종이니까. 그리고 샘플과 경험치를 바탕으로 종이의 종류와 두께를 결정해서 발주를 한다 해도 인쇄가 완료된 후 직접 만져보기 전까지는 알 수가 없는 게 또 종이니까. 


디자인 시안을 컴퓨터 모니터상으로만 판단해야 할 때 나는 또 마음이 불안해졌다. 종이에 인쇄하면 어떤 느낌이 될지 모르잖아! 뭐든 일단 출력을 해봐야 했다. RGB 컬러가 CMYK 컬러로 변환되면 명도와 채도가 달라진다. 종이의 평활도와 무게, 두께, 색깔에 따라 잉크를 흡수하는 정도가 달라지고, 코팅의 유무에 따라 채도가 또 달라지고, 코팅이 유광인지 무광인지에 따라 또 달라진다. 


이렇게 책을 만드는 과정 중에 확인하고 예측하고 가늠해야 할 것들이 무수히 많지만 편집자에게 ‘책을 만든다’는 의미는 때론 실체가 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편집자가 무슨 일을 하냐는 물음에 책을 만든다고 하면 인쇄나 제작을 하는 줄 알거나, 책을 편집한다고 하면 편집디자인을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게 아니라면 책을 쓴다고 생각한다. 당연하게도 셋 다 아니다. 편집자의 일을 구구절절 설명하며 이해시키려는 노력을 해봤자 “그래서 무슨 일을 한다는 건가요?”라는 의문문을 되돌려받을 뿐이다. 분명 굉장히 바쁘게 이것저것 많은 일들을 하는 것 같은데 내 일을 정확하게 이해시킬 수 없는 직업이라니. 


반면 자신이 하는 일의 결과물을 물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직업이기도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일들을 통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드는 사람. 정말 흥미로운 직업이지 않은가. 나는 데이터로만 존재하던 지식과 정보가 종이라는 실체 위에서 실체를 드러내는 순간을 최초로 목격할 때 내 일의 실체를 느꼈다. 같은 텍스트라도 어떤 종이 위에 어떤 형태로 얹어지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비로소 나의 일이 ‘책’에 반영되었다는 안도감 같은 것이 느껴지기도 했다.  


사실 책은 아주 불편한 물건이다. 종이가 수백 장 모여서 묶여 있으니 그 무게가 상당한데다 어지간히 넉넉하고 튼튼한 가방이 아니라면 무턱대고 여러 권을 집어넣을 수도 없다. 침대에 누워 읽어보겠다고 양손으로 책을 펼쳐 들고 있다가는 다음 날 숟가락을 제대로 못 들 수도 있다. 책상에 얌전히 앉아 읽는다 해도 펼쳐놓은 책이 자꾸만 닫히려고 해서 짜증이 날 때가 많다. 무엇보다 책장을 넘기다가 종이에 손을 베이면…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를 들을 때만큼 소름이 끼치니 그만 상상하기로 하자. 그리고 책은, 수많은 나무를 희생시킨다.(나무야 미안해) 아니, 세상이 2018년인데 아직도 종이에 출력된 책을 봐야 하는가 싶을 정도로 책을 만든다는 건 어쩐지 시대에 뒤떨어진 느낌이지만, 내가 만드는 것이 책이라는 실체를 드러내주지 않는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자주 ‘도대체 편집자란 무엇인가’를 고민했을 것 같다.  


왜 편집자가 되었냐고 물으면 많은 편집자들이 ‘책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답할 것이다. 이것은 곧 ‘책 읽기’를 좋아한다고 받아들여지기 쉬운데, 나는 이 말이 책 자체를 좋아한다는 의미와도 같다고 생각한다. 종이책이 가진 물성에 대한 애정과 집착이 없다면, 그저 ‘책 읽기’만을 좋아하던 사람이라면, 왜 굳이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려고 했겠는가. 나는 때로 편집자들의 이런 대책 없는 책 사랑이 너무 사랑스럽다.  


일러스트: 김재호


이전 02화 나를 일으키는 개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