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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사기꾼 Oct 18. 2020

고양이 이웃이랑 친구되기

안녕, 친구들! 오늘은 우리 동네 고양이 이웃들 이야기를 해줄게. 고양이 이웃이라니, 어쩐지 특별하게 느껴진다고? 물론 특별한 이웃들이지. 그런데 우리 친구들도 동네를 걸어다니면 언제 어디서나 만날 수 있단다. 골목 어디선가 빼꼼 고개를 내민 길고양이들을 본 적이 있지? 그 친구들이 바로 우리 모두의 이웃이고 동네 주민이란다.(<어린이 동산> 2020년 2월호) 


내게 처음으로 말을 걸어준 고양이, 반반이야


작년 여름, 엄청나게 무더운 어느 날이었어. 우리집 멍멍이 일일이랑 산책을 하는 중이었는데 일일이도 너무 더운지 혀를 쭈욱 내밀고 헉헉거리더라고. 물 한 컵을 따라주니까 찰랑찰랑 소리를 내며 허겁지겁 물을 먹었어. 나도 생수 한 병을 벌컥벌컥 들이켰지. 어휴, 그 맛이 어찌나 시원하고 달달하던지! 


그런데 그때 공원의 나무 그늘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 고양이 친구가 보였어. 문득, 저 친구는 어디에서 물을 마실까 궁금해졌어. 집에 사는 개와 고양이들은 보호자가 주는 물이 있는데 길에서 사는 친구들은 어떻게 물을 마시지? 언제든 수도꼭지만 돌리면 깨끗한 물이 콸콸 쏟아지는 집에 사니까 그런 문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거든. 야생에 사는 동물들은… 뭐 알아서 살겠지, 하고 생각해버렸던 거야. 하지만 도시의 콘크리트 건물 사이나 아스팔트 길 위에 사는 길고양이들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을까? 무엇을 먹고 살고 있을까? 작은 동물을 잡아 먹는 육식동물이라던데 이런 주택가에서 사냥할 동물들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플라스틱 그릇에 물을 담아서 고양이들이 다니는 길목에 놓아두기로 했어. 지나가다가 목이 마르면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도록 말야. 다음 날 가보면 물이 반쯤 없어져 있었는데 고양이가 먹은 건지 그냥 증발한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물그릇 놓는 일을 계속했어.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날 불렀어.

“야옹.”

어? 일일아, 방금 무슨 소리 들리지 않았어? 일일이는 빨리 건너편 돌담 벽에 영역표시를 하고 싶다며 목줄을 잡아 끌기에 바빴지. 

“냐아아아옹.”

고개를 돌려 뒤를 보니 글쎄 고양이 한 마리가 나를 보며 서 있지 뭐야. 내가 놓아둔 물그릇의 물을 먹는 고양이인가 봐! 너무 반가워서 나도 같이 인사를 했어. 근데 자세히 보니까 고양이 뒤로 엄청 작은 고양이가 다섯 마리가 더 있는 거야. 알고보니 나를 부른 그 고양이는 다섯 마리의 새끼를 데리고 나온 엄마 고양이더라고. 새끼를 키우느라 잘 먹지 못했는지 배가 쏘옥 들어가 있고 털은 푸석푸석해보였어. 저렇게 허약한 몸으로 이 폭염을 어떻게 나고 있을까. 


관심을 갖고 지켜보니 우리 동네엔 고양이가 정말 많지 뭐야!


나는 얼른 일일이의 물컵에 물을 채워서 고양이에게 건넸어. 그랬더니 엄마 고양이랑 아기 고양이들이 모두 몰려와서 열심히 물을 먹더라고. 그 모습이 너무 가엽고 안쓰러워서 한참을 서서 지켜봤어. 목이 말랐구나. 아기들도 목이 말랐구나. 

그렇게 고양이 가족을 뒤로 하고 돌아서는데 자꾸만 엄마 고양이의 비쩍 마른 몸이 눈앞에 아른 거리는 거야. 새끼들을 키우려면 잘 먹어야 할 텐데 물 한 모금 마시는 걸로 될까? 나는 자꾸만 뒤를 돌아봤어. 엄마 고양이는 점점 멀어지는 내 뒷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고 있었어.

그 모습이 잊혀지질 않아서 집에 오자마자 일일이의 간식을 한 봉지 꺼내들고 다시 고양이들에게 달려갔어. 고양이 가족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지. 

“그거 내꺼냐옹?”

엄마 고양이는 마구 뛰어오는 나를 보며 눈을 부릅뜨고 경계하면서도 내 손에 들린 간식 봉지에서 눈을 떼지 못했어. 이녀석, 귀신같이 먹을 걸 알아보는구나! 그런데 길바닥에 멍멍이 간식을 부어주려고 하니까 고양이 가족들이 쏜살같이 달아나버리는 거야. 정말 순식간에 사라져버려서 하늘로 솟았나 싶었다니까. 그러다가 바스락, 바스락 간식 봉지 소리가 들리니까 하나둘씩 퐁! 퐁! 고개를 내밀며 나타났어. 자동차 바퀴 사이에서, 나무 뒤에서, 화단 틈에서 뿅뿅 나타나는 아기 고양이들이 어찌나 귀여운지 나도 모르게 꺄륵 웃고 말았지. 

“이리와, 어서 먹어. 멍멍이 간식이라서 입맛에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먹을 만할 거야.” 

하지만 인간은 아직 무서운가 봐. 내가 서 있으니까 가까이 오질 못하는 것 같더라고. 1미터쯤 떨어진 곳으로 자리를 비켜줬더니 그제야 아이들이 가까이 다가왔어. 손바닥만 한 아기 고양이들이 멍멍이 간식을 다급하게 먹기 시작하니까 엄마 고양이가 한 발짝 물러나서 그 모습을 지켜봤어. 아기들에게 먹을 걸 양보하더라고. 그 순간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지. 

“고양이 사료를 사야겠다!” 


반반이의 다섯 아기들 중 가장 용감하고 식탐 많은 니양이. 지금은 거대 고양이로 자랐단다.

편의점으로 달려가 고양이 사료를 한 봉지 사들고 다시 고양이 가족에게 돌아왔더니 엄마 고양이가 “냐옹” 하며 나를 맞아줬어. 정말로 환영인사를 했냐고? 글쎄, 나도 잘 모르지만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었어. 내가 이 고양이 가족들에게 안정적인 먹이를 주는 엄마가 될 것 같은 느낌 말야. 먹을 것도 없고 마실 물도 없는 도심의 주택가에서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힘들겠어. 고양이도 우리 동네 주민인데, 이웃끼리는 서로 돕고 살아야 하는 거잖아. 

다음 날부터 나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고양이 이웃을 만나 물과 사료를 주게 됐어. 사람들은 그런 나를 캣맘이라고 부르더라. 어쩐지 굉장히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졌어. 하지만 내게 또 다른 가족이 생긴 것만 같아서 너무 기뻤지. 나는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여줬어. 

“반반아, 밥 먹자!”

이름을 부르는 순간 어디선가 “냐옹” 하며 화답하는 소리가 들렸어. 우리의 우정은 이렇게 시작되었단다. 


고양이 손님들을 기다리는 고양식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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