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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사기꾼 Oct 22. 2020

인간이 더 열심히 해야 해요

처음부터 멍멍이들이 사람과 함께 살지는 않았다는 거 알고 있지? 개와 사람이 오늘날처럼 한집에서 한이불을 덮고 맛있는 걸 나눠먹으며 살아온 건 얼마 되지 않았어. 야생에 살던 개가 사람의 집으로 왔으니 우리가 좀 더 노력하고 배려할 일이 많겠지? 어쩌면 우리가 함께하는 모든 시간이 바로 그런 노력의 시간일지도 몰라.(<어린이 동산> 2020년 3월호)


안녕, 난 공원의 왕자 개일일. 어서 나를 뛰게 하라!


“으악! 또 먹어버렸어!”

어제 분명 양말 한 쌍을 열심히 빨아서 건조대에 말려놨거든. 그런데 양말이 한 짝만 걸려 있는 거야. 맙소사. 범인은 바로 일일이다! 세상 행복한 표정으로 자기 집에 들어가 찹찹 입맛을 다시고 있는 일일이의 입가에 한때는 양말이었을 어떤 천조가리가 붙어 있더라고. 다급하게 일일이의 입을 벌려서 확인해봤지만 양말은 아주 작은 흔적만을 남기고 몽땅 사라졌지 뭐야. 

“히히, 맛있다. 엄마 남은 양말 하나 마저 먹어도 돼?”

“안 돼!”

이렇게 사라진 양말이 벌써 몇 개인지 몰라. 사실 양말뿐만이 아니야. 화장실 앞에 놓은 발매트의 가장자리는 이미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돼서, 이 매트가 원래 사각형이었는지 삼각형이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야. 두루마리 휴지는 거의 간식 수준으로 먹어치워 버리지. 딱딱하고 길쭉한 걸 좋아해서 볼펜과 연필도 여러 개 해치웠는데,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올려두고 숨겨놔도 귀신같이 찾아서 먹어버려. 


개는 원래 사냥을 해서 작은 동물들을 잡아먹으며 살았어. 열심히 사냥한 사냥감을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면서 배도 채우고 스트레스도 풀면서 살았지. 하지만 지금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하니까 그럴 수 없게 됐지. 그래서 사냥감 대신 마음껏 물고 뜯을 수 있도록 강아지 전용 개껌이라는 게 생겼어. 오랫동안 씹을 수 있고 삼켜도 괜찮은 강아지 전용 간식이야. 개껌을 주면 일일이가 사고치는 걸 예방할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냐고?

불행히도 일일이는 개껌을 먹을 수 없거든. 일일이는 방광에 작은 돌(결석)이 생기는 병을 앓고 있어. 돌이 생길 때마다 몇 번이나 수술을 해서 치료했지만 돌은 없애면 또 생기고 없애면 또 생겼지. 방광에 생긴 돌은 소변이 나오는 길을 막아버리기 때문에 돌이 생기지 않도록 평생 관찰해줘야 한단다. 그래서 수의사 선생님의 지시대로 먹는 것을 아주 철저하게 관리해야 해. 음식의 영양성분에 따라 돌이 생길 수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거든. 

정말 불행히도 일일이가 먹으면 안 되는 음식 중에 바로 개껌이 포함된 거지. 오직 수의사 선생님이 처방해준 처방사료만 먹어야 하고 개껌은 먹으면 안 된대. 일일이는 본능대로 물고 뜯으며 놀고 싶을 텐데, 개껌을 먹을 수 없으니 눈에 보이는 걸 닥치는 대로 먹어버리기 시작했어. 으으으. 일일아, 엄마 마음 좀 알아주라. 


개껌을 주지 않는다면 발매트를 먹겠어... (발매트를 뜯다가 잠든 내새꾸)


방광에 돌이 생겨 병원에 가는 일이 없도록 개껌을 주지 않는 건데, 그래서 오히려 병원 신세를 지는 일도 생기곤 해. 한번은 가죽장갑 한 짝을 통째로 먹어버려서 새벽에 응급병원에 달려간 적이 있어. 도대체 장갑이 무슨 맛이 있다고 그렇게 열심히 잘근잘근 씹어 먹어 버렸는지! 

이물질은 개에게 아주 위험할 수도 있어. 음식이 아니라서 소화가 안 되니까 장에서 큰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고, 뽀죡한 것을 먹으면 장기를 다칠 수도 있지! 가죽장갑은 소화도 안 되는데다 먹은 양이 너무 많아서 아주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어. 나는 일일이가 잘못될까 봐 엉엉 울면서 선생님한테 우리 일일이 좀 살려달라고 부탁했어. 다행히 먹은 것을 토하게 해서 더 위험한 상황까지 가진 않았지.  

휴우. 지금 생각해도 정말 아찔해. 홍차 티백을 통째로 먹어버려서 병원에 간 적도 있어. 홍차에는 카페인이라는 성분이 있어서 많이 먹으면 개에게 아주 해롭거든. 사람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고 몸에도 좋은 음식이 개에게는 치명적인 독이 된다는 걸 명심해야 해. 


개껌을 주면 방광에 돌이 생겨 병원에 가고, 개껌을 안 주면 엉뚱한 걸 씹어 먹어서 병원에 가다니… 개랑 같이 사는 건 정말 쉽지 않아! 하지만 어쩌겠어. 우린 가족인걸. 야생에서 사냥을 하며 살던 개가 작은 집안에서 사람에게 이렇게 열심히 맞춰주며 함께 살아주고 있으니, 나는 그보다 더 노력해야지. 일일이를 위해 일일이가 오래오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더 잘하는 수밖에!

어떻게 잘하고 있냐고? 그야 물론 일일이가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산책도 더 많이 하고 공놀이와 냄새 맡는 놀이도 열심히 해주고 있지. 개는 냄새를 열심히 맡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아주 좋아진대. 그래서 이불 사이에 사료를 한 알씩 숨겨놓고 보물찾기 하듯이 찾아서 먹는 놀이를 하는 거야. 물고 뜯는 것 말고도 이렇게 신나게 놀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것은 아주 많으니까. 힘들지 않냐고? 사실 어떤 날은 만사가 귀찮아서 꼼짝도 하기 싫을 때도 있긴 해. 하지만 일일이와 눈이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게 된다니까.

“내가 지금 이렇게 심심한데, 계속 그렇게 앉아있을 거야? 멍멍!”   

“알았어, 알았다구!”


빨리 놀자 인간아! 일어나라 인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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