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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밀밭의 사기꾼 Aug 11. 2024

테니스 코치들은 왜 서로를 싫어할까

테니스 3편: 다들 지가 제일 잘났대

테니스 코치들을 몇 명 만나보니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레슨 어디서 받았어요?"

"ㅇㅇ테니스장이요"

"헹(비웃음)"


이 사람들은 일단 비웃는다. 새로운 코치를 만날 때마다 이어지는 단골 레파토리였다. 그 싸가지 없는 신발코치뿐만이 아니다. 만나는 코치마다 내가 이전에 배웠다는 코치를 욕했다(일단 테니스장 이름이나 코치 이름만 말해도 서로 다 안다는 점에서 이 바닥도 어지간히 좁은 모양이다 싶었다). 코치들은 우선 비웃었고, 그 뒤에 이어지는 반응은 다양하면서도 전형적이었다.


"거기 비싸기만 하고 가르쳐주는 것도 없잖아요.(도덕적 비난)"

"무슨 레슨을 아파트 테니스장에서 받아요?(덮어놓고 개무시)"

"왜 거기서 받았어? 별볼일 없는데?(은근히 수강생 돌려까기)"

“진작 여기로 왔어야지.(시간 낭비했다는 힐난)"


뭐 지들끼리 물고 뜯는 거야 내 알 바 아니지만, 이해가 안 되는 지점은 그딴 소리를 왜 수강생 앞에서 하냐는 것이었다. 영업을 위해서였다면 약간(아주 약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근데! 나는 지금 이미 당신에게 레슨을 받기로 결정했고 수강료도 냈잖아. 그럼 내가 이전에 어디서 레슨을 받았건 이전 코치들을 욕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이놈들아, 나는 이미 잡아놓은 물고기란다. 잊었니?

레슨 코치를 바꾸는 게 꼭 이전 코치가 만족스럽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신발코치처럼 갑자기 그만둬서이기도 하고, 실내가 아닌 실외에서 혹은 실외가 아닌 실내에서 레슨을 받아보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집에서 더 가까운 곳으로 옮기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잘한다고 소문난 코치를 찾아가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하여간 이유는 많다. 그말은 딱히 니(=새코치)가 마음에 들어서 온 건 아니란 얘기다. 아! 그래서 이전 코치를 깎아내리면서 스스로를 높이려는 하찮은 수작인 걸까? 스스로를 높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코칭으로 실력을 증명하는 것일 텐데? 으흥흥?




테니스 레슨은 보통 일대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아(그룹레슨, 커플레슨 등도 있지만) 코치의 성향이나 실력, 성격, 화술 등에 따라 레슨 품질의 차이를 유난히 크게 느끼는 것 같다. 아니다. 뭘 이렇게 우아하게 말하냐. 코치가 쓰레기면 내 기분도 쓰레기가 되고 하여간 코치에 따라 내 실력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레슨하는 날의 기분이가 이랬다 저랬다 한다는 얘기다. 


1. 초심자의 행운이었는데

새 코치들은 대부분 이전 코치들을 욕했지만 딱 한 사람의 이름 앞에서는 모두들 무릎을 꿇었다. 대충 '홍길동'이었다고 치자.

"홍길동 코치? 와 그 사람은 베스트지."

"아 그분은 최고지. 이바닥 레전드예요."

"홍길동 빼고 나머지는 다 쓰레기야."

"홍길동 코치 따라올 자가 없어요."

모두들 그 코치에 대해서는 입을 모아 이 분야 최고라고 진술했다. 젠장. 홍길동은 나의 첫 코치님이었다. 나를 포기하신, 바로 그분. 나는 이바닥 최고의 레전드로부터 버림받은 수강생이었던 것이다. 망했네. 



2. 플레처 교수와 키팅 선생

"잔발! 뛰라고! 라켓 세우고! 스윙 끝까지! 접지 말고! 그게 아니라니까! 쫌!"

신발코치가 하는 말은 틀린 게 하나도 없었지만 말투가 싯팔... 아니 진짜 불친절^^해서 레슨 때마다 사람을 매우 빡치게 했다. 그를 볼 때마다 짜증스럽게 지랄을 떠는 택시기사들이 떠올랐다. 짜증스러운 택시기사들을 보면 그래 하루종일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면서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어,라는 생각을 하다가도, 아니 근데 시발 진짜 직장인들도 회사에서 일할 때 존나 짜증나고 스트레스 받거든??? 그렇다고 나 스트레스 받으니까 옛다 니가 내 감정쓰레기통 해라 하면서 고객한테 지랄하지는 않거든???? 그 생각을 하면 또 다시 빡이 친단 말이다. 

신발코치의 말투를 받아내면서 그래 나 같이 운동 드럽게 못하는 애가 자세도 이상한데 교정도 잘 안 되고 같은 말을 수백수천번씩 반복해야 되니 짜증이 날 법도 하지,라고 생각했다가도 다시 "아니 근데 시발 진짜"로 돌아가서 분통을 터트렸다. 

그런 신발코치가 그만두고 새 코치가 부임(!)했다. 

그는 일단 매우 온순해보였다. 목소리도 말투도 코칭 스타일도 온순하고 지지적이었다. 

와우, 플레처 교수가 가고 키팅 선생이 온 것이다. 

한번은 손목 부상으로 레슨을 2주 정도 쉬고 돌아왔는데 배운 거 다 까먹고 또 어처구니없이 라켓을 휘둘렀다. 그러자 키팅 코치님은,

"2주나 쉬면 원래 다 그래요. 괜찮아요. 금방 잘할 수 있어요^^"

헉, 지금 제 앞에 천사가... 천사가 내려왔어요... 

한번은 무릎 부상으로 2주 정도 쉬고 돌아왔는데 이상하게 공이 아주 잘 맞았다. 그랬더니 키팅 코치님은,

"역시 푹 쉬고 오니까 훨씬 잘하네요^^" 

혹시 예수님이신가요? 지저스크라이스트.... 



3. 고양이 아빠, 코칭은 언제 해요 

아파트 테니스장에 새 코치님이 왔다.(나의 첫 코치이자 레전드였던 홍길동 코치의 후임으로) 

경력 30년이 넘은 베테랑이라고 하셨는데 뭔가 디테일한 코칭을 해주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았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야외 코트 레슨은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그런데 이 코치님, 테니스장 옆에 밥 먹으러 오는 고양이들과 사랑에 빠져버렸다. 내가 고양이 밥을 주는 밥엄마라는 것을 안 뒤로는 레슨 때마다 고양이에 대해 물어보느라 손으로는 공을 던지고 입으로는 고양이 질문을 끊임없이 퍼부었다.

"그 얼룩이는 마 살이 쪄가 뒤뚱거리대?(슉)"

"아, 걔는 임신했어요!(팡)"

"구우래? 그걸 우찌 아노?(슉)"

"젖이 불어요! 중성화도 안 했고(팡)"

"아아아 구우우래? 그 노랭이는 왜 맨날 숨어?(슉)"

"걔는 경계심이 좀 심해요!(팡)"

"하얀애는 요즘 왜 안 와?(슉)"

"새끼 독립시키고 떠났어요!(팡)"

"오호잉 구우우우래? 와 완전 고양이 박사네 박사야(슉)"

코치님... 코칭은 언제 해요... 그래도 고양이 사랑하는 남자치고 나쁜 사람 못봤.... 그래요 우리 코치님 사람은 참 좋아요... 



4. 선수 출신, 니가 몰 알아

다른 종목들은 어떤지 모르겠는데 테니스 코치들 중에는 테니스를 취미로 하다가 깊이 빠져서 자격 시험? 같은 걸 봐서 코치가 된 사람도 있고, 어릴 때부터 선수생활을 하다가 코치가 된 사람들도 있다. 그동안은 딱히 코치의 이력에 대해 신경써본 적이 없었는데 M코치를 만난 이후 다시는 선수 출신에게 배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M코치는 선수 출신이라는 데에 상당한 자부심이 있는 듯했다. 뭐 좋다. 선수 출신이니까 잘 하겠지,라는 생각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건 코칭을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무릇 운동선수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타고난 운동신경을 갖춘 자가 자신의 재능을 스스로 혹은 누군가가 발견하여 꾸준히 한 분야의 트레이닝을 하며 만들어지지 않는가. 그러니 그들은 일반인들이 이걸 "왜 못하는지" 이게 "왜 힘든지" 죽었다 깨나도 이해를 못한다. 그런 사람이 코치를 하면 코칭을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미쳐버린다. 

"이게 왜 안 돼???? 그게 뭐가 힘들어????"

"아 님이 해봐여!!! 진짜 힘들다니까???"

"뭐 한 게 있다고 힘들어????"

"아 존나 힘들다고요!!!!"

"????????"

"????????"


영원히 합의가 안 됨.



5. 미친놈아 선 넘지 마라 

"뱃살을 좀 빼."

뭐...뭐라고?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 방금 코치 새끼가 나한테 뱃살을 빼라고 했다. 미쳤나? 미친놈인가? 

첫 레슨 때부터 뭔가 알 수 없는 위화감으로 쎄함을 느꼈는데 어느 날 내게 저런 말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쓰윽 지나가는데 순간 내가 뭘 들었는지 믿을 수가 없어서 잠시 멍- 했다. 

그러니까 첫 레슨 때 그는 잠시 뭔가 꼰대 같은 일장연설을 늘어놓았는데 무슨 맥락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아마도 테니스 코치는 동성에게 받는 게 좋다는 얘기였던 거 같다) 내가 "아 그럼 여자 코치님한테 받아야겠네요?"라고 하자 그는 "헹, 다들 뭐 여자라고 하면 신선하니까 첨에는 솔깃하는데 결국은 다 남코치한테 돌아와요. 여자코치는 별로라고."라는 답을 했고, 저게 무슨 밑도끝도 없는 여험 발언인가??? 싶어 몹시 불쾌했었다. 

그 이후에도 힘들어서 헉헉거리고 있으면 '다리통을 보면 그 정도로 그렇게 지칠 것 같지 않다'는 식의 말을 하는둥 상당히 거슬리는 발언을 했는데 참았다. 참지 말았어야 했다. 결국 뱃살을 빼라는 말까지 듣고 레슨을 그만뒀다. 너, 선 넘지 마라 이 모기색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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