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좀 멀쩡하고 싶다
테니스를 치면 체력이 좋아질 줄 알았다. 뭐든 일단 안 움직이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좋은 거고, 그게 운동이면 더더욱 좋은 거 아닌가. 운동을 하면 몸과 마음이 건강해지고성인병이예방되고소화가잘되고혈액순환이잘되고암을예방하며잠을잘자고활력이좋아지고어쩌고저쩌고... 하여간 다 좋아지는 거 아닌가! 아닌가?
테니스는 꽤 힘든 운동이고 칼로리 소모도 높은 편이지만 20~30분 레슨을 일주일에 두 번 아무리 격하게 해봤자 운동 시간은 한 시간 내외다. 그 정도 운동으로 갑자기 건강해지는 것을 기대하는 나새기 양심 어따 팔아먹음? 게다가 레슨이 끝나면 격하게 배가 고파져서 허겁지겁 컵라면을 흡입하거나 콸콸콸 맥주를 들이붓곤 했으니 당연히 건강해질 리도 없고 체력이 좋아질 리도 없고 살이 빠질 리도 없다. 기껏해야 건강한 돼지가 되는 것이 목표였는데, 해보니까 건강한 돼지도 아무나 되는 게 아니다.
사실 테니스를 시작한 지 5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실제로 "테니스를 쳤다"고 말하기 매우 민망하고 애매한 구력을 갖고 있다. 일단 레슨을 매우 띄엄띄엄 받았고(3개월 받고 6개월 쉬고 4개월 받고 1년 쉬고 3개월 받고 3개월 쉬고 그런 식으로 5년을...) 랠리나 게임을 해본 적이 거의 없었다. 동호회는 텃세가 심하다는 말에 지레 겁을 먹었기 때문에 굳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없었고, 무엇보다 실력이 늘지 않으니 누군가와 테니스를 같이 친다면 상당한 민폐가 될 것 같았다.(아닛, 테니스 같이 칠 사람이라며 A언니를 합류시켰잖아! 그녀는 동호회에 가입해 매우 꾸준히 열심히 부지런히 테니스 인생을 즐기고 있다. 가입 기회가 있을 때 나에게도 오라고 제안했었지만 정기적인 게임 시간이 새벽 6시라서 그 시간에 일어나는 건 불가능하다며 거절했.... 지금 생각하니 무척 멍청한 선택이었...) 실제로 가끔 A언니의 초대로 동호회 게스트로 가서 게임을 했는데 속으로 와 씨 저를 죽여주십쇼, 죄셩합니다,를 백번 외치며 울기 바빴다.
그러니 나는 '취미로 테니스를 친다'는 문장조차 당당하게 말할 수 없는 사람인 것이다. 유일하게 제대로 배운 운동이 테니스인데 그마저도 젓가락으로 밥알 한 알씩 집어 먹듯이 깨작깨작 먹다 말다 하다 말다 시큰둥... 그렇게 또 레슨을 안 받은 지 1년이 넘어가고 있었다.
1년에 한 번씩 편집자 친구들과 1박2일로 여행을 가는 행사(?)가 있다. 벌써 10년이 넘은 정기 행사가 되었는데, 강화, 부여, 평창, 남해, 속초, 동해 등 해마다 가고 싶은 지역을 한 군데 선정해 다같이 차를 몰고 달려가 해당 지역을 조금 구경하고 대부분 밤새 술을 먹으며 보내는 연례 엠티 같은 것이다.
2024년, 올해의 여행지는 전주로 정해졌다. 별다른 이유는 없고 그냥 우리 모임 멤버 중에 전주에서 일자리를 얻고 전주에서 거주하게 된 친구가 있었으므로 그 친구를 만나러 가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여행은 나를 완전한 운동맨으로 각성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데... (궁금한가? 궁금하지? 궁금해줘!)
"나 이대로는 안 되겠어. 너희들한테 너무 민폐야."
"뭐가??"
"나만 늙어가고 있는 것 같아. 겨우 이만큼 걸었다고 이렇게까지 피곤하고 허리가 아플 수는 없는 거야."
"응? 너 원래 그랬잖아."
"맞아. 난 원래 그랬지. 근데 너희는 다 멀쩡하잖아! 나이는 같은데, 너희는 꼭두새벽부터 일어나서 산에 올라가고! 막 몇 킬로씩 아무렇지도 않게 걷고! 나는 시내 좀 걸었다고 허리가 뽀개질라고 해서 혼자 택시 타고 오고! 이렇게는 안 되겠어!"
"왜 그래 새삼스럽게. 우린 다 적응했어. 넌 원래 저질체력이니까, 원래 아침에 못일어나니까 그러려니 했는데?"
"그래 그 저질체력. 분명 10년 전 처음 강화도로 놀러갔을 때는 다들 새벽까지 술 먹고 아침에 빌빌대면서 일어나 겨우 라면이나 흡입하고 그랬는데, 어떻게 40대가 되니까 꼭두새벽부터 일어나고, 걷고, 뛰고 이렇게나 튼튼하게 돌아다닐 수가 있냔 말이야. 난 아직도 10년 전이랑 똑같은데! 뭐가 다르지? 뭐가 달라졌어? 뭐지?"
뭐긴 뭐냐. 친구들은 운동을 했고 나는 안 했으니까 그렇지.
친구들은 각자 꾸준하게 하는 운동이 있었다. 수영, 요가, 발레, 야구, 러닝, 등산 등 각자 자신에게 맞는 운동을 아주 꾸준히 해왔다. 프리랜서인 친구들도 있고 직장인 친구들도 있는데, 프리랜서 중에 나처럼 밤낮이 뒤바뀐 채 불규칙한 생활을 하며 쓰레기같이 사는 친구는 없었다. 정해진 시간에 몸을 일으켜 러닝을 하고, 요가를 하고, 수영을 하며 꾸준하게 몸을 단련해온 친구들은 나이를 먹어도 10년 전과 똑같은 체력을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들 모니터에 고개를 쳐박고 일하는 편집자 또는 연구자인데 그럼에도 거북목이다 못해 버섯목까지 달게 된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러니까 나만 집안에서 꼼짝도 않고 언제나 누운 채로, 하루에 3분 이상 움직이지 않으며, 하루에 30보조차 걷지 않으며, 하루에 300초도 운동을 하지 않은 채 시체처럼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여행을 가도 나는 시체였다. 친구들이 걷고 뛰고 날면서 세상 구경을 하고 있을 때, 나는 아이고 허리야 아이고 나죽네,를 외치며 다 죽어가고 있었다.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은 걸 보면서 똑같은 걸 경험하고 있는데 내 몸은 남들이 경험하는 것의 30%도 받아들이질 못하고 있다. 나도 건강해지고 싶다. 아니 기초체력이 조금이라도 더 있으면 좋겠다. 체력을 키우려면 운동을 해야 하는데... 잠깐, 저는 운동을 할 체력이 없는데요. 하, 체력이 없는데 체육을 어떻게 합니까.
그럼 일단 먹는 거라도 깨끗해지자. 매일 1리터씩 들이붓던 맥주부터 끊어보기로 했다. 아니 금주라기보다는 절주랄까. 자기 전에 혼자 마시는 맥주 대짜 두 캔. 그걸 일단 끊어야겠다. 그리고 정제탄수(빵, 백미, 떡, 면...)와 액상과당(커피믹스!!! 탄산음료, 과일주스 등등)을 끊기로 했다. 쨘! 그래서 끊었을까요?
끊어졌다. 한 달 동안 술, 정제탄수, 액상과당 끊기에 도전했고, 밖에서 친구들 만날 때 마신 맥주 한두 번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켰다. 거짓말처럼 실현됐다. 띠용.
간헐적 단식도 시도했다. 16시간 금식, 8시간 식사. 시간제한 식사라고도 하는데 이렇게 말하면 되게 어려운 것 같지만 사실 하루에 두 끼를(원래 두 끼 먹었다) 8시간 이내에 다 먹는 거라고 생각하면 쉽다. 그때 먹는 것은 배불리 먹어도 되지만 건강한 음식이어야 한다. 그래서 8시간 동안 끼니마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식이섬유 등을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야채, 고기, 현미밥을 기본 메뉴로 정해놓고 챙겨먹었다. 그게 되냐? 되더라고. 먹는 걸 바꾸니 일과 중에 졸음이 쏟아지거나 갑작스럽게 허기를 느끼는 일이 줄었는데 아마도 혈당 스파이크를 유발하는 음식을 먹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과식이나 폭식하는 일도 없어졌다. 건강한 음식은 많이 먹을 수가 없다.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포만감이 상당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몸무게가 4kg 줄어있었다. 우와. 죽어라 굶은 것도 아니고, 칼로리를 줄인 것도 아닌데 그냥 먹는 시간 조절하고 건강식을 배불리 편하게 먹기만 했는데도 살이 빠졌네. 우와. 그럼 여기서 운동을 하면 더 빠지겠네?
운동을 해야겠다.
나 이제 건강해지고 체력도 키우고 살도 빼고 싶다.
건강한 돼지 말고 근육돼지 되고 싶다.
인터넷으로 지도를 열어 동네 헬스장을 검색했다.
와, 동네에 큰 헬스장이 새로 생겼네.
여자 PT 선생님도 있네.
그렇다면 한번 구.... 구경을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