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요 헬스장에 갔어요
솔직히 좀 뻔하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내가, 다이어터가 되고, 헬스장에 가고, PT를 받는다? 이거 너무나 트렌디해서 내 안의 마이너적 열정이 온몸으로 이 뻔한 서사를 거부하고 싶어지는데?
그동안 내 몸에 대한 혐오를 멈추기 위해 무척이나 애를 써왔다. 바람이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젓가락 몸으로 살아갈 때도, 결혼하자마자 그새 임신했냐는 인사를 들을 정도로(물론 임신 안 했다-_-) 뚠뚠보가 됐을 때도, 나는 내 몸을 사랑한다!! 사랑한다고!! 아니 사랑 안 하면 어쩔 건데! 몸이 그냥 몸이지 뭐야! 되도록 몸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고, 가급적 남의 몸에 대해서도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렇다, 그냥 애를 썼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살이 찌기 시작하면서 사진 찍히는 걸 굉장히 싫어하게 됐다. 20대에는 종종 시도해보았던 셀카 같은 것도 살이 찌면서 전혀 찍지 않았다. 사진 속에 담긴 내 모습이 정말 흉했다. 근데, 언제는 안 흉했나? 생각해보니 전에는 사진 속 나에 대해, 현재의 내 모습에 대해 별로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사실은, 살이 찌기 시작하자 내 존재가 거슬리고 내 몸이 흉측하다는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살이 찐 게 싫다'의 반대편에는 '날씬해지고 싶다'가 있을 것 같지만 나는 그 자리에 '멋있는 몸을 갖고 싶다'가 들어앉았다는 것이다. 다시 쇠꼬챙이 같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 같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덩치가 크든 작든, 살이 많든 적든, 키가 크든 작든, 일단 건강하고 근육 많은 몸을 보면 와,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내면의 목소리가 마구 커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헬스장에 가서 피티를 받으며 운동한다는 것이 어쩐지 신경 쓰였다. 왜 그런 거 있잖나. 저,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동네 사람들!!! 저 살 뺄라고 운동하는 거 아녜요, 나 울룩불룩 근육 만들고 싶어서 가는 거야, 나 다이어트하려고 피티 받는 거 아니야 진짜야!!! 물론 살 빼고 싶어서, 선이 예쁜 몸을 만들고 싶어서 운동하는 것도 전혀 문제될 게 없다. 근데 왜 있잖아요, 여러분 나의 진정성 좀 알아줘 제발...
"(...)저 날씬해지려고 운동하는 거 아니에요."
"그럼 왜 해요?"
"건강해지고 싶어서 한다니까요!"
온갖 운동 명칭은 줄줄 꿰면서 이것만은 왜 죽어도 못 외울까.
(...)
놀랍게도 내가 만난 모든 트레이너는 '날씬해지려고 운동하는 게 아니다'라는 개념을 받아들이는 걸 무척 어려워했다. 내가 운동하는 이유를 명확히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아마 많은 여성이 마르고 탄탄한 몸매를 갖고 싶어서 헬스장에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걸 너무 익숙하고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 신한슬, 《살 빼려고 운동하는 거 아닌데요》, 휴머니스트, 2019
처음에는 체육관에서 주는 옷을 입었다. 그러나 작아서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윗도리는 사이즈가 더 큰 남성용을 입었다. 그랬더니, 세상의 편견과 간섭은 거기서도 멈추지 않았다.
"회원님, 그건 남자 겁니다."
내가 손에 든 옷은 그저 (사이즈가 더 큰) 파란색 티셔츠일 뿐이다. 여성용은 빨간색이라고? 성별로 색을 정한 건 도대체 누군가.
"알아요. 그냥 제가 편해서 입는 거예요."
그만 하면 포기해도 좋으련만 중장년 남성들이 가만 놔두질 않았다.
"남자 거라니까요."
- 류은숙, 《아무튼, 피트니스》, 코난북스, 2017
유독 PT를 할 때 '나'는 당연히 혼나고 통제 당해야 할 대상이고, 인바디 수치 하나하나에 죄책감을 느끼고, 트레이너에게 나를 함부로 대할 권리를 줘버린다. 운동 동기랍시고 팻 셰이밍(과체중 혹은 비만인 사람에게 공격적, 모욕적 언사를 하는 행동)을 하는 문화가 공기처럼 퍼져 있는 탓도 크다. 살이 쪘다고 죄송해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이 당연한 명제에 도달하기까지 참 오래 걸렸다.
- 이진송, 《오늘은 운동하러 가야 하는데》, 다산책방, 2019
내가 헬스장에 대한 어떤 '인상'을 가진 것은 여성들이 쓴 운동 에세이에서였다. 나도 뭔가에 그렇게 몰입하고 열심히 트레이닝하는 경험을 해보고 싶은데, 당장은 엄두가 안 나니까 자꾸만 여성이 쓴 운동 에세이를 찾아 읽으며 가상의 가능성을 혼자 가늠해보기를 즐겼다. 그런데 이 책들에서 묘사되는 헬스장 혹은 트레이너들의 어떤 이미지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헬스장이란 곳은 사회가 강요하는(내가 거부하는) 남성성과 여성성을 더욱 강화하는 편견으로 가득찬 곳이로군!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것이다.
모든 것이 걱정스러웠다. 헬스장에 가려면 레깅스에 브라탑 같은 걸 입어야 하는 건가? 그러면 꼭 쳐다보는 남자들이 있을 텐데, 그런 시선들을 견딜 수는 없는데? 샤워를 꼭 헬스장에서 하고 와야 하나? 공중 시설에서의 불법촬영 같은 게 걱정되는데 과연 안전할까? 식단 같은 걸 맨날 보내서 검사 받고 그래야 하나? 나는 당장 몇 달 만에 몇 킬로를 빼겠다 하는 다이어트를 하려는 게 아닌데? 남자 트레이너가 빻은 소리를 하면 어떡하지? 코칭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신체 접촉이 필요하다는데 이 사람의 직업 정신을 믿을 수 있을까?(직업적으로 인간의 몸을 대면하는 의사들도 원체 성범죄를 저지르는 놈들이 많아서 이런 부분에 있어 상당한 불신을 갖고 있다)
퍼스널 트레이닝은 테니스 코칭과는 차원이 다른 '신체적 거리'가 있다. 테니스 코치가 쓰레기 같은 개소리를 하거나 빻은 발언들을 했을 때도 물론 수치심과 모욕감을 느끼겠지만, 어쨌거나 그놈은 저 멀리 코트 너머에 있다. 가끔 스윙을 교정해줄 때도 기껏해야 라켓을 잡은 팔을 밀었다 당겼다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PT는 너무나 가까이에서 진행된다. 나는 그것이 무서웠다. 이토록 가까운 거리에서 내가 원치 않는 상황이나 접촉이 이루어진다면? 상상만으로 이미 머릿속에서는 상대의 귓방망이를 67대쯤 후려치고 있었다. 그러니까 일대일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일대일의 거리가 두려운 것이다.
이 모든 리스크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는 일단 여성 트레이너를 만나야 했다. 물론 여성 트레이너 찾기가 하늘의 별따기 수준으로 어렵다는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나마 발견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규모가 좀 큰 헬스장을 찾아야 했다. 너무나도 다행히,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큰 규모의 헬스장이 존재했고, 그곳에 여성 트레이너가 있었다.
나의 트레이너샘은, 모든 것을 수용했다.
급찐급빠를 원하는 게 아니라 천천히 건강하게 빼고 싶다, 과거의 몸무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안다, 몸무게를 줄이기보다는 근육짱짱맨이 되고 싶다, 웨이트를 열심히 해서 테니스도 더 잘 치고 싶다, 근육 울룩불룩 완전 원한다! 오티를 진행하며 내가 원하는 바를 이야기했고 쌤은 정말 어떤 것에도 의문을 갖지 않고 OK로 응답했다.
사실 피티 시작 첫날부터 그날 아침에 생리가 터지는 바람에 첫 수업을 취소해야 했는데, 그 상황도 아주 자연스러웠다. 생리 땜에 오늘 수업이 어렵겠다는 나, 생리 땜에 오늘 수업이 어렵겠다는 트레이너샘. 우리는 이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편안하게 이야기했다. 트레이너 샘은 엉덩이 근육 쓰는 법을 알려주면서 내 손을 자기 엉덩이에 갖다 대며 엉근을 느껴보라고 했는데, 그때 만져지는 근육이 너무 멋있어서 매우 감탄해버렸다. 와, 짱 탄탄하고 멋있다, 나도 이런 근육 갖고 싶다! 그나저나 여자 쌤이랑 수업하니까 진짜 너무 편하다!
수업은 늘 즐거웠다. 어쩌다 뱃살이 푹 튀어나와서 "어맛! 내 뱃살! 부끄라!" 하고 놀라 수습하려고 하면 트샘은 아무렇지도 않게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마요. 어차피 곧 없어질 건데!"라고 이야기했다. 그 말이 너무 믿음직스러워서 나는 또 와하하하 웃으며 맞아요 없어질 건데 뭐, 했다.
한번은 내가 레그 익스텐션이 하고 싶다고 하자
"보통은 앞벅지가 굵어져서 여성분들이 별로 좋아하진 않는데..."
"앞벅지가 왜요? 나는 앞벅지 짱 커지고 싶은데?"
"그럼 해야죠! 앞벅지 갑시다!"
무게를 살짝 올리기 전에는 나의 근육 로망을 자극하며
"호밀님, 완전 근육짱짱맨이 되실 거잖아요?"
"그럼요!"
"그럼 이 정도는 들 수 있을 거예요!"
"꺄악 싫어요 앙데에에"
"할 수 있어요! 잘한다! 자란다아~!"
"끄아아아아아(든다)"
"그러췌 자란다아아!"
어딜 둘러봐도 우리처럼 재밌게 와하하 즐겁게 까르륵 신나게 피티하는 팀은 없는 것 같다. 근력운동은 지루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긴장감과 불안감 속에서 줄타기하는 기분으로 배우는 줄 알았는데, 매 시간 파자마 파티를 하는 기분으로 즐겁게, 올림픽 나가는 국가대표가 된 것처럼 진지하게 임했더니 오랜 휴업 상태의 근육이 하나하나 깨어났다. 집에 돌아오면 오늘 깨어난 근육들이 오랜만에 인사를 했다. 안녕, 나 여기 있는 거 잊지 않았구나. 안녕, 나도 여기 있었어. 안녕, 난 있는 줄도 몰랐지? 반가워. 앞으로 잘 지내보자(=근육통들의 대합창을 말하는 거임)
테니스나 복싱을 하고 돌아오면 온몸이 천근만근 기절할 것처럼 피곤해서 느러눕기 바빴다. 그런데 웨이트를 하고 오면 타이마사지라도 받은 것마냥 온몸이 쫙쫙 늘어났다가 펄럭펄럭거리는 것처럼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오오오, 이 맛에 웨이트하는구나. 신난다. 불안은 어느새 증발되었고 헬스장에 대한 편견과 날카로운 경계심은 희미해졌다.
PT만 받고 개인운동을 하지 않아 운동효과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 태반이라는데 나는 앞으로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일주일에 두 번 PT 열심히 하고 3일 정도 헬스장에 나와서 개인운동을 하며 근육을 만들어야지. 라고 결심했지만 그것은 역시 쉽게 실행되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사는 게 바빠서 운동 시간을 만들지 못했다는 평범한 사유로 인한 게 아니다. 운동을 너무 많이 해서 운동할 시간이 없었다. 두둥. 이게 다 무슨 소린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