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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 Oct 06. 2020

매트리스 소동

안녕 애들아!     


오늘은 얼마 전에 있었던 ‘매트리스 소동(?)’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해요. 샘이 그날도 늘 그렇듯 우리 반 점검을 위해 쉬는 시간에 반을 찾아갔는데, 교실 왼쪽 한 켠에 큰 매트리스가 놓여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퀸사이즈는 되어 보이는 정말 큰 매트리스였죠.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학교 숙직실에서 버린 매트리스를 재활용 수거 공간에서 발견했고, 6명이서 3층까지 이 무거운 매트리스를 힘겹게 들고 왔다고 하네요. 이 이야기를 샘에게 무척 자랑스럽게, 그리고 행복하게 말했죠. 매트리스를 천천히 다시 보니 이미 모습을 다 갖추고 있었어요. 따뜻한 담요 몇 개가 덮여 있었고, 인형도 하나 놓여 있었고, 심지어 바로 옆 콘센트에 핸드폰 충전기까지 구비되어 있었죠. 우리 반이 가로로 길어서 늘 옆 공간이 휑하니 비워져 있었는데 크기도 딱 안성맞춤이더라고요. 이런 게 진정한 업사이클 아니냐고 자화자찬도 했죠.      


샘은 무척 당황했지만, 여러분이 너무 행복해 보여 어찌할 바를 몰라 일단 지켜보기로 했어요. 교무실로 다시 내려와서 일하는 데 괜히 신경 쓰여서 다음 쉬는 시간에도 별 일 없나 관찰하러 갔죠. 계속 확인해보니 참 잘 이용하더라고요. 수업 듣다가 지치면 사이좋게 친구들과 누워 있기도 하고, 또 허리가 아픈 아이들도 다리 펴고 쉬고 있고. 이어폰으로 노래도 들으면서 참 편해 보였어요. 특정 무리가 독점하지 않을까 지켜봤는데 쉬는 시간마다 사이좋게 돌아가며 쓰고 있었죠.      


우리 반 침대(?)는 바로 샘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었어요. 교실 들어갔을 때 반에 큰 침대가 있어서 놀랐다 하시고, 반 아이들로부터 끌고 올라온 얘기를 듣고, 또 잘 꾸며진 침대를 보고 다들 아이들이 귀여웠다며 엄청 웃으셨어요. 저도 참 대단한 아이들 아니냐고 웃었죠. 하지만 대화의 소재가 되자마자 전 엄청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사실 어찌해야 할지를 몰라 지켜보고 있다고 하니, 바로 다른 반도 따라할 수도 있으니 빼는 게 맞다고 하시더라고요. 순간 이걸 내가 왜 지켜봤나 하는 후회가 들면서 바로 교실로 찾아가 면학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다고 대충 얼버무리고 얼른 버리라고 말했죠. 저항을 조금 하더니 이내 자기들도 웃으면서 치우더라고요. 매트리스 소동은 이렇게 이틀 만에 막을 내렸네요.      


비록 동료 샘들 눈치 때문에 소동으로 끝났지만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꼭 제거했어야 했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여러분들의 행복했던 표정이 걸리면서요. 그러고 보니 대청소하기, 교실 뒤 게시판 꾸미기 등 학기 초 환경미화를 할 때는 그렇게 관심이 없었는데, 이번 매트리스 꾸미기는 여러분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첫 번째 환경미화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실 빈 공간을 잠깐이라도 누울 수 있는 휴식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 여러분의 진정한 첫 교실 꾸미기였던 거죠. 불현듯 여러분이 떼거지로 교실 맨바닥에 누워 있었던 게 연결이 됐어요. 10명이 서로 엉켜 땅바닥에 누워있는데 하도 기가 막혀서 노숙자냐고 핀잔을 줬죠. 매트리스가 여러분에게 꼭 필요했던 공간이긴 했나 봐요. 하긴 초등학교 때만 해도 교실에 매트가 있어서 눕거나 놀 수 있는 공간이 많았는데, 중학교부터는 책걸상만 있어 앉기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네요.     


학교 공간을 한 번 둘러보니 여러분이 편하게 쉴 휴식 공간이 거의 없었네요. 샘들은 크진 않지만 교사 휴게실도 있는데 말이죠. 사실 아득해 보이는 매트리스가 있을 때 좀 더 교실이 편안하고 따뜻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샘도 매트리스 담요 위에 한번 누워보고 싶었으니까요.      


사진 - Young샘


문득 샘과 여러분이 교실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샘은 교실은 그저 수업받는 공간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여러분은 그야말로 1교시부터 7교시까지 사는 ‘생활공간’이었던 것이에요. 아무리 우리 반이라고 해도 그 시선이 가끔 관찰하는 외부인에 불과했던 것 같아요. 여러분은 그 속에서 반나절이라는 시간을 견디고 지내면서, 친구들, 선생님들과 호흡하며 끈적한 삶의 희로애락을 느끼고 있었네요. 딱딱한 책걸상만으로는 다채로운 여러분의 감정 표현을 다 담아내지 못할 것 같아요. 매트리스가 별 거는 아니지만 잠시나마 단순한 수업 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으로서의 교실을 가능케 했던 것 같아요.     


이미 매트리스는 재활용 수거차가 가져갔고, 나는 왜 무조건 안 된다고만 했을까 반성을 좀 했어요. 사실 우리 반만 너무 자유로워 보여 튀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고, 결국 이런 공간이 있으면 반에서 너무 떠들 것 같아 면학 분위기를 해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아이들과 대화를 해볼 필요는 있지 않았나 반성하게 돼요. 사실 면학 분위기가 걱정이라면, 반 아이들과 학급 회의를 통해 매트리스 이용 규칙을 정하고 잘 시행되는지 상호 관리체계만 갖추어도 됐을 텐데 말이죠. 교실 공간을 다시 생각하고, 나아가 자체 규칙을 통해 상호 책임감을 높이는 계기가 될 수 있었던 좋은 학급회의 주제를 놓친 것 같네요.     


교실 환경미화가 늘 정형화되어 있는데, 교사의 개입 없이 정말 자유롭게 여러분께 환경 미화를 맡기면 과연 어떤 모습일까 상상해봤어요. 누울 수도 있는 작은 휴식 공간, 쉬는 시간에 찾는 음료와 과자가 구비된 스낵바, 가끔 인터넷 서핑을 할 수 있는 태블릿 PC, 또 같이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 등이 왠지 있을 것 같네요. 우리 반은 에너지가 넘치니 실내 사이클도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마치 요새 유행하는 스터디 카페 같네요. 상상을 해보니 확실히 지금 교실보다는 좀 더 편하고 머물고 싶은 공간이에요.       


샘이 조금 쫄보라서 아직 침대 매트리스는 감당이 안 되고 다음 환경 미화 때는 가끔 누울 수 있는 휴대용 매트 정도는 고려해볼게요.(ㅎㅎ) 그리고 가끔 스낵바를 만들어 시험 기간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것도 참 괜찮을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우리 반이라는 공간에서 늘 편안함을 느끼고 행복한 기억만 가득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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