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나는 터미널 광장 옆 묶여있는 닭을 봤다. 판매 중인 닭이다. 나물을 펼쳐놓고 장사하시는 할머니도 있었다. TV에서만 보던 시골 마을 풍경이 신기했다. 나물 할머니 옆 택시를 타고 목적지를 말하자 기사 아저씨는 바로 출발했다. 이 도시에서 그 회사를 모르면 안 되지.
“차는 중고로라도 빨리 마련해야...”
입사가 확정되고 회사 담당자가 내게 처음 한 말이다. 직업 특성상 자동차가 필요하다고 얘기했다. 난 주말에 중고차 매장에 다녀오겠다고 답했다. 자가용이 없으니 정말 힘들구나. 사무실로 출근하는 첫날 깨달았다. 집을 나온 지 4시간. 시내버스, 시외버스, 택시를 차례로 거치며 출근하는 동안 시간이 많이 지났다.
‘자취방도 이 도시로 옮겨야 하나?’
고민하는 동안 택시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넓은 주차장 앞 낡은 노란색 건물 1층이 회사 사무실이다. 4층 건물에 1층 우리 회사 빼고 전부 공실이었다. 출근 첫날부터 피곤하다.
“쿵.”
오늘도 아침을 먹는 중 깜빡 잠들어 식당 테이블에 머리를 찧었다. 처음 출근하고 3일이 지났는데 아직도 집에 못 돌아갔다. 씻지 못하고, 잠 못 자고 일하다가 3일째 아침이다. 어제 아침에도 졸아서 머리를 찧었었다. 같이 일하는 선배는 내 앞자리에 앉아 이 모습을 보고 웃지도 않는다. 하긴 자신도 사람인데 이쯤 되면 웃을 힘도 없을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양치도 못하는 상황은 곤욕스러웠다.
나는 3일 일해 보고 그만두겠다는 소리는 차마 하기 싫었다. 젊은 나이의 객기였을까?
그보다 당장 집으로 돌아갈 자동차도 없었다. 그런데 이 선배는 왜 이렇게 일만 하는지, 왜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잠도 안 자고 밥도 하루 한 끼만 먹고 씻지도 않으며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 작업을 알려주지도 않고 계속했다. 커다란 기계 안에 작은 부품을 떼어 약품으로 닦고 다시 조립했다. 이 작업을 3일 밤낮으로 반복했다. 잠도 안 자면서! 약품으로 닦을 땐 연기도 났다. 이렇게 보호구 없이 일하다가는 며칠 안에 폐가 망가질 거라 생각했다.
‘어떻게 이런 위험한 작업을 잠도 안 자고 3일 내내 하지?’
‘이렇게 일하는 건 법에 어긋나지 않는 건가?’
이런 생각이 새벽 4시에 잠시 스쳤을 뿐이다. 지금은 이미 이틀이 더 지났다. 뇌에 있는 생각하는 부분이 멈춰 나는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잠 안 자고 일하며 세 번째 아침을 근처 식당에서 먹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회사 주차장에서 담배를 뻐끔거리는데, 내 매니저인 부장님이 차를 몰고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신입 사원이 3일째 작업하느라 집에 못 간다며? 구해 주러 왔다.”
우리 회사는 시간 맞춰 퇴근하는 구조가 아니라 누군가 구해 줘야 퇴근하는구나. 온 힘을 끌어모아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그런데 내 사수는 다시 일하러 가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는 나는 속이 거북했다. 역한 감정이 올라와 토할 뻔했지만 나 혼자 살려고 매니저 차에 올라 기숙사로 돌아갔다. 나는 배신자였다. 하지만 이것이 마음속 인간 본성이었다.
“성공하려면 주 100시간 이상 노력해야 한다.”
- 일론 머스크
나는 일론에게 묻는다. 우리 회사 모든 사람은 주 100시간 이상 노력했어요, 그런데 왜 우리는 몸만 상했나요?
나를 시작으로 2명의 신입 사원이 더 들어왔다. 신입 사원이 늘자, 회사는 기숙사를 제공했다. 사무실 바로 옆 아파트에 기숙하며 고객 전화에 출동하는 5분 대기조 팀이 우리였다. 힘들어 눈이 반쯤 뒤집히는 내 첫 회사 생활 이야기는 이 기숙사에서 시작한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우리는 몸빵 팀이었다. 힘든 거 견디면 엔지니어 시켜주고 아니면 나가든가. 뭐 이런...
법으로 주당 근무 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 게 고작 4년 전이다.
처음 법을 만들면서 많은 사람이 반대했다.
난 반대하는 사람들이 미쳤다고 확신했다.
직접 경험한 사람만 이 법의 의미를 안다.
잘 모르시겠다면, 복 받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