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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분 대기조의 탄생

by 짱이아빠

버스 문이 열리며 발을 내딛는 순간, 도시의 공기가 아닌 시골 특유의 정겨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터미널 광장 한편에는 판매용 닭들이 우리에 갇혀 목을 길게 빼고 있었고, 그 옆에서는 할머니 한 분이 정성스럽게 펼쳐놓은 나물들 사이에 앉아 계셨다. 텔레비전 속에서만 보던 전형적인 시골 마을의 풍경이 신기하면서도 낯설었다. 나물 할머니 옆에 서 있던 택시에 올라 목적지를 말하자, 기사님은 별다른 질문 없이 바로 시동을 걸었다. 아, 이 도시에서 그 회사를 모르는 사람은 없구나.


"차는 중고로라도 빨리 마련해야 해요."


입사가 확정된 후 회사 담당자가 내게 처음 건넨 말이었다. 직업의 특성상 자동차가 필수라고 설명했다. 나는 주말에 중고차 매장을 둘러보겠다고 대답했지만, 첫 출근날이 되어서야 그 말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다. 집을 나선 지 벌써 4시간이 흘렀다. 시내버스를 타고 시외버스 터미널로 이동한 뒤,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이 도시에 도착해 택시까지 갈아타는 긴 여정 끝에 드디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자가용이 없으니 정말 힘들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자취방도 이 도시로 옮겨야 하나?' 그런 고민을 하는 사이, 택시는 목적지에 멈춰 섰다. 넓은 주차장 앞에 서 있는 낡은 노란색 건물의 1층이 우리 회사 사무실이었다. 4층짜리 건물에서 1층 우리 회사를 제외하고는 모든 층이 공실이라는 사실이 묘하게 쓸쓸해 보였다. 출근 첫날부터 벌써 피곤함이 밀려왔다.


"쿵."


오늘도 아침 식사 중에 깜빡 잠이 들어 식당 테이블에 이마를 부딪혔다. 첫 출근 후 3일이 지났지만 아직 집에 돌아가지 못했다. 제대로 씻지도, 잠을 자지도 못한 채 일만 하다가 맞이한 세 번째 아침이었다. 어제 아침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졸음을 참지 못해 머리를 찧은 것이다. 같이 일하는 선배는 내 앞자리에 앉아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면서도 웃지 않았다. 그럴 만했다. 자신도 같은 상황에서 웃을 여유 따위는 없을 테니까. 무엇보다 양치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 가장 곤욕스러웠다.


겨우 3일 일해보고 그만두겠다는 말을 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젊은 나이의 객기였을까? 그것보다 당장 집으로 돌아갈 자동차도 없었다. 그런데 이 선배는 도대체 왜 이렇게 일만 하는 것일까, 왜 힘들다는 소리 한 번 하지 않는 것일까, 이해할 수 없었다. 잠도 자지 않고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씻지도 않은 채로 무슨 일인지도 제대로 알려주지 않고 계속 작업을 시켰다. 커다란 기계 안에서 작은 부품을 분해하고, 약품으로 닦아낸 후 다시 조립하는 작업을 3일 밤낮으로 반복했다. 잠도 자지 않으면서 말이다. 약품으로 부품을 닦을 때면 자욱한 연기가 피어올랐다. 이런 식으로 보호구도 없이 일하다가는 며칠 안에 폐가 망가질 것 같았다.


'어떻게 이런 위험한 작업을 잠도 자지 않고 3일 내내 할 수 있을까?' '이렇게 일하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건가?' 이런 생각들이 새벽 4시경에 잠깐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 지금은 벌써 이틀이 더 지났다. 뇌의 사고 기능이 완전히 멈춘 듯,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세 번째 아침을 근처 식당에서 해결하고 사무실로 돌아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회사 주차장에서 담배를 뻐끔거리고 있는데, 내 매니저인 부장님이 차를 몰고 주차장으로 들어왔다.


"신입사원이 3일째 작업하느라 집에 못 간다며? 구해주러 왔어."


그제야 깨달았다. 우리 회사는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구조가 아니라, 누군가가 구해줘야만 퇴근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온 힘을 끌어모아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그런데 내 사수는 다시 일하러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속이 거북해지며 역한 감정이 치밀어 올라 토할 뻔했다. 하지만 나 혼자라도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매니저 차에 올라 기숙사로 향했다. 나는 배신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마음속 깊숙한 곳에 자리한 인간의 본성이었다.


"성공하려면 주 100시간 이상 노력해야 한다." - 일론 머스크


나는 일론에게 묻고 싶다. 우리 회사의 모든 사람들은 주 100시간 이상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몸만 상했을까요?


나를 시작으로 2명의 신입사원이 더 들어왔다. 신입사원이 늘어나자 회사는 기숙사를 제공했다. 사무실 바로 옆 아파트에서 기숙하며 고객의 전화에 언제든 출동할 수 있는 5분 대기조, 그것이 바로 우리 팀이었다. 눈이 반쯤 뒤집힐 정도로 힘들었던 내 첫 회사 생활의 진짜 이야기는 이 기숙사에서 시작되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우리는 '몸빵 팀'이었다. 힘든 것을 견디면 엔지니어로 인정해주고, 못 견디면 나가든지 말든지, 뭐 그런 식이었다.


법으로 주당 근무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한 것이 고작 4년 전의 일이다. 처음 이 법안이 만들어질 때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다. 나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미쳤다고 확신한다. 직접 경험해본 사람만이 이 법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잘 모르겠다면, 복 받으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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