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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이아빠 Feb 09. 2024

싸구려를 던져라.



우리는 5분 대기조로 일하며 언제 일터로 불려 갈지 모르는 엔지니어다. 그렇다고 대단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매일 불려 가면 기계 옆에 서서 멀뚱하게 화면만 쳐다보는 게 전부였다.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는 듯 무심한 표정을 짓지만 고객이 기계에 대해 질문하면 당황했다. 맞다. 우리는 아무 지식이 없었다. 선배가 조치를 취하러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는 ‘얼굴 마담’이다. 그러니 고객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면 고객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돌아갔다. 이 상황이 불편한 건 고객도 마찬가지였다.  매니저와 선배에게 이런 불편한 상황이 싫다고 이미 여러 번 말했지만 기계에 문제가 생겼을 때 고객에게 얼굴이라도 빨리 보여야 불만이 줄어든단다. 젠장, ‘엔지니어’가 되고 싶었는데 ‘얼굴 마담’이 됐다. 20여 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얼굴을 빨리 비치는 것과 고객 불만의 상관관계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정식으로 기계 교육을 받기 전까지 ‘얼굴 마담’ 생활은 이어졌다. 


내가 입사할 즈음 나를 포함해 신입사원 여러 명이 입사했다. 맞다. 회사에선 머릿수를 늘렸다. 백지장은 맞들면 낫고, 밤샘도 돌아가면서 하면 낫다. 인원도 늘었으니 회식을 해야 하는데, 계획만 잡으면 늘 팀원 중 누군가는 밤을 새웠다. 팀원 중 한 명이라도 퇴근 시간을 넘겨 계속 일 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는 서로 말없이 얼굴만 쳐다봤다. 그리곤 다시 서로의 시선을 피하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주섬주섬 기숙사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 했다. 다음날 아니면 그다음 날은 내 차례일 테니까 어서 숙소에서 쉬면서 기운을 충전해야 한다.  


이런 방식으로 일하면 팀 전체 회식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팀장은 다 같이 힘들게 고생하니 모두 모여보자며 첫 전체 회식을 추진했다. 심지어 팀 회식을 고객사에 전화로 알렸다. 오늘밤엔 문제가 발생해도 전화를 하지 말아 달라 부탁했다. 회식 한 번 하는데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오늘밤 회식은 마음껏 즐기리라 다짐했다. 


메뉴는 한우 소고기 식당에서 꽃등심. 비싸서 잘 먹지 못하는 꽃등심을 게눈 감추듯 먹었다. 팀원 중 한 명은 이곳이 고기 무한리필 가게냐고 조용히 물었을 정도로 회식비 신경 쓰지 않고 먹었다. 그동안 잠 못 자며 일했고 버티자 버티자를 외쳤는데 마침내 조금이나마 보상받는 기분이었다.  


팀장은 우리 한 명 한 명을 찾아 고맙다고 얘기했고 우리는 더 힘을 내겠다고 술김에 대답했다. 기분 좋은 잔이 오고 가자 다들 목소리가 커졌다. 옆 테이블에서 보면 서로에게 고함지르는 사람처럼 보였을 것이다. 팀원 모두 밝은 사람들이었다. 모두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어느새 시간이 지나 회식은 마무리되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가는 택시를 탔다. 그런데 마치 우리가 회식을 끝내기를 기다렸다는 듯,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핸드폰이 울렸다. 누구인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 궁금하지 않았다. 그리고 고객일리 없으니 내일 연락하면 된다. 거실 의자에 던져놓은 전화가 6번째 울렸을 때, 기숙사 옆방 후배가 내 전화를 받아 통화하는 것이 방문 너머로 들렸다. 고객이었다. 문제가 발생했다고 들어오라는 전화다. 전화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은 뒷집 개나 줘 버렸겠지. 왜 받았냐고 후배를 타박하고 시계를 보니 새벽 2시였다. 


술을 많이 마셨는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일터로 향했는지 모르겠다. 숙소 후배의 부축을 받아 짧은 거리지만 택시를 탔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모습을 본 후배도 같이 택시를 탔다. 전화를 받아 친절하게 전화를 바꿔줬으니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당연히 같이 가야겠지. 5분도 안 걸려 회사 사무실에 도착했다. 술기운으로 얼굴이 붉어진 나는 소리를 지르며 무언가를 부셔야 한다며 두리번거렸다.  


“선배 이거.” 


후배가 두 손으로 키보드를 내밀었다. 나는 키보드를 사무실 바닥에 힘껏 내리쳤고 키 알맹이 수십 개가 하늘로 솟구쳤다. 그리고 씩씩거리며 무슨 이런 회사가 다 있냐고 소리 질렀다. 고객은 한 명에게만 전화를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소식은 팀 매니저에게도 전달됐고 회식에 참석하지 않은 다른 부서 엔지니어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요청하는 것으로 사건은 마무리됐다.  


다음 날 아침 오른쪽 발등이 욱신거렸다. 후배는 내가 어젯밤 전화받자마자 화를 내며 책상을 발로 차 뒤집었다고 말했다. 발은 절뚝거리며, 숙취로 망가진 얼굴을 하고 출근했다. 먼저 사무실로 들어가 매니저에게 사과했다. 매니저는 늘 있는 일인 양 별일 아니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했다. 매니저가 시큰둥하게 반응하는 것을 봤으니 최소한 이때에는 눈치채고 도망쳤어야 했다. 하지만 눈치 없는 사회 초년생인 나는 빗자루를 꺼내 사무실 바닥 청소를 시작했다. 펼쳐진 키보드 알맹이 여러 개를 쓸면서 모니터나 노트북이 아니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다음 날부터 다시 고객은 밤낮으로 전화했고 우리는 늘 그랬듯이 뭘 해야 할지도 모른 채 일터로 향하는 날을 반복했다. 


이 것을 1년 넘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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