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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짱이아빠 Feb 23. 2024

모든 사람은 외국계 회사에 대해 잘못 알고 있어요.


이쯤에서 궁금할 수도 있겠다. 미국 회사라며 이렇게 비체계적이며 일을 많이 한다고? 


우리나라에는 여러 종류의 외국계 회사가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BMW, 스타벅스 등. 일반인이 알 수 있는 기업부터 특수 분야의 잘 모르는 기업까지 대한민국에는 많은 외국 기업이 진출해 있다. 분야별 각기 다른 스타일을 보이지만 내가 경험한 외국계 반도체 회사에 관해 설명해 보겠다. 


반도체라는 말이 나오면 우리 대부분은 삼성전자와 하이닉스를 떠올린다. 한국인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인들이 그럴 것이다. 그동안 ‘치킨 게임’으로 많은 반도체 제조 회사들이 무너졌고 살아남은 회사는 망한 기업의 매출을 흡수하며 덩치 키우기를 반복했다. 도대체 이러한 반도체는 어떻게 만드는 걸까?  


반도체 원료는 실리콘 판이다. 300mm 지름의 원형 판을 웨이퍼라 부르는데 이것만 전문적으로 파는 회사가 있다. 이 웨이퍼 구입해서 그 위에 여러 가지 물질을 얇게 코팅하고 자르고 하면 컴퓨터 메모리도 되고 카메라 센서도 된다. 그렇다면 실리콘 판 위에 여러 가지 물질은 어떻게 코팅할까? 미국, 일본, 네덜란드 회사가 만든 기계를 사용한다. 그래서 반도체 제조 공장을 만들면 사람 키보다 큰, 수십 종류의 제조 기계를 구입해 공장 내부에 빼곡히 세워놓는다. 이 기계들이 아주 비싸다. 그래서 공장 하나를 지으려면 대략 30~40조를 쏟아부어야 한다. 또한 기계 중 한 종류라도 없으면 원하는 반도체 완제품을 만들지 못한다. 얼마 전 미국은 중국이 반도체를 만들 수 없게 하려고 수출하는 기계 중 단 2~3종류를 수출 제한했다. 그래서 중국은 자신이 만든 수십조를 쏟아부은 반도체 공장에서 고작 싸구려 반도체만 만들 뿐이다. 반도체 장비 엔지니어란 이러한 기계를 담당하는 사람들이다. 고장나면 고치는 사람이다. 기계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만드는 사람이다. 


‘외국계 회사’라는 타이틀을 보면 묘하게 설렌다. 나도 그랬다. 국내 회사에 합격하여 출근을 기다리던 어느 날 외국계 회사에서 면접 보러 오라는 전화를 받고 설렜다. 모두 자유로운 복장에 활기찬 회사 생활을 하는 듯 보였다. 면접 당일 처음 가 본 외국계 회사 직원들은 셔츠와 넥타이가 아닌 청바지와 일반 셔츠를 입고 있었고 ‘제임스’, ’테디’와 같은 미국식 이름을 부르진 않았지만 미소 띤 얼굴에 영어를 30% 정도 섞어 말했다. 나와 같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왠지 모를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국내 회사를 내팽개치고 외국계 회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실제로 월급 수준도 높았고 시간 외 근무 수당도 꼬박꼬박 챙겨주는 회사였다. 


하지만 3개월도 되지 않아 알게 됐다. 사실 자유로운 복장은 옷을 신경 써 입을 기운조차 없어서 아무렇게 걸치고 출근한 것이었고, 활기찬 회사 생활을 하는 직원은 사무직 인원 몇 명뿐이었다. 모든 엔지니어는 고객사 공장에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동여매고 땀을 흘리면서 일했다. 그래서 회사 사무실이 텅 빈 것이었다. 심지어 엔지니어는 개인 책상도 배정하지 않았다. 


가끔 티브이에서 외국계 회사의 회의를 재연하는 모습을 보는데 실소가 터져 나온다. 희극을 가미했다지만 영어 이름을 부르며 자유롭게 자기 주장하는 모습을 재연하는데... 정신 차려라, 외국계 회사라는 이름만 가지고 있을 뿐, 직원은 모두 한국인이었다. 그리고 직원 대부분은 남자였다. 외국계 회사의 첫인상? 나는 하마터면 군대 2회전인 줄 착각할 뻔했다. 어찌나 서로 거칠게 대해주던지. 자유롭게 얘기하는 회의는 사실 미국 땅에서도 불가능하다. 공장에서 일해야지 무슨 회의? 회의로 결정할 일은 위 분들의 몫이다. 


하긴 대기업 기업 문화를 1년 동안 간접 체험할 기회가 있었는데 대기업 문화는 이보다 더 답답했다. 출근은 1시간 빨리 해야 했고, 퇴근은 1시간 늦게 해야 했다. 쉬는 날에는 집에서 쉬고 싶었지만, 동아리에 참가해야 했다. 그것에 비하면 외국계 회사는 자유롭다. 부장님 퇴근했는지 눈치 안 보고 퇴근해도 되고, 부장님이 주말에 억지로 산에 가자고 하지 않는다. 참, 축구는 한다.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군대 2회전이다. 군대에서 했던 축구를 회사에서도 했다.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외국계 회사에서 엔지니어로 일하는 가장 큰 장점은 본사로 가는 해외 교육이다. 2~3년에 한 번씩 다녀온다. 평생 회사 다니면서 회삿돈으로 해외에 갈 기회가 얼마나 있겠는가? 엔지니어로 일하면 해외에 주기적으로 교육을 받으러 간다. 호텔에 숙식하며 자동차도 렌트해 준다. 엔지니어가 담당하는 기계는 크기가 크고, 무겁고, 가격이 비싸다. 그래서 회사는 트레이닝 센터를 본사에 만들어 전 세계 직원들을 불러들인다. 최대 장점이자 유일한 장점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육을 가면 고객으로부터 전화를 받지 않는다. 매일 밤을 새우며 일하지 않아도 된다. 교육은 아침 9시에 시작해 저녁 6시에 끝난다. 퇴근하고 운동도 할 수 있다. 교육 기간 2~3주 동안은 인간답게 사는 삶이 무엇인지 배울 수 있다. 


몇 년 전 내 자신에게 그때의 경험을 후회하는지 물어봤다. 대답은 ‘후회 안 함.’ 왜냐면 그 때에 비하면 지금은 너무 쉽게 회사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그때의 기억이 강렬히 뇌리에 박혀 이후 겪은 일은 별로 힘들지 않게 느껴졌다. 그토록 힘든 생활을 해 보니 다른 일은 식은 죽 먹기였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비를 한 번 넘기니 모든 일이 쉬워졌다.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절 눈 뒤집히며 일하던 나를 만난다면, 이 노래나 한번 들려주고 돌아오겠다. 


https://youtu.be/Gk2fBpu2bW4?si=UldhAhfiQY-_jvgw

<전인권 - 걱정말아요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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