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이 아닌 추락, 그 서글픈 몸부림에 대하여

성해나 소설집 <혼모노>를 읽고 든, 늙음과 욕망에 대한 단상

by 짱이아빠

문단에서 화제가 된 소설,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를 읽었다. 젊은 무당과 한물간 늙은 무당이 등장하는 이 단편은 '진짜와 가짜'의 경계를 다루며 2024년 젊은 작가상을 수상했다.


많은 이들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 늙은 무당 문수가 작두 위에서 보여주는 그 위태로운 몸짓을 두고 이상의 소설 <날개>를 떠올린다. 억압된 현실을 벗어나려는 자아의 비상(飛上), 혹은 예술적 승화로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책을 덮은 나의 생각은 달랐다. 나의 눈에 비친 문수의 마지막은 결코 비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철저한 '비극적 파멸'이자, 추락하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처절한 비명에 불과했다.


인정하지 못하는 자의 비극


물리학을 전공한 탓일까, 나는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진리처럼 믿는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고 에너지는 결국 소멸하거나 흩어진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다.


주인공 문수 역시 자신에게서 신(神)이 떠나버렸음을, 자신의 시대가 저물었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다. 깨끗하게 인정하고 내려오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적응하거나.


신기가 떨어졌다면 사주명리학을 배워 상담가로 전향할 수도 있었을 것이고, 굿판의 화려함 대신 연륜 있는 말 한마디로 사람을 위로하는 길을 찾을 수도 있었다. '제대로 된 방법'으로 삶을 연명할 길은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는 노력 대신 '질투'를 택한다.


갓 신내림을 받아 기세등등한 젊은 무당 신애기를 보며 "저것은 가짜다"라고 손가락질하는 문수의 모습. 그것은 변화하는 세대를 인정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남은 권위를 내세우는 우리 시대 꼰대의 초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줄 유일한 방법이 '떠나간 신이 기적처럼 돌아오는 것'뿐이라고 믿는 그 수동적인 태도는 미련함을 넘어 바보스럽기까지 했다.


외부의 힘에 기생해 온 자가 홀로서기에 실패했을 때, 인간이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소설은 잔인하게 보여준다.


신애기, 아직 늙지 않은 문수일뿐


그렇다면 문수를 비웃는 젊은 무당, 신애기는 승자일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신애기에게서 젊은 시절의 문수를 보았다. 그녀는 그저 '아직 늙지 않은 문수'일뿐이다.


지금 문수가 겪는 쇠락은 신애기에게도 필연적으로 찾아올 미래다. 20년, 30년 뒤 신애기 또한 신기가 쇠할 것이고, 그때 등장할 더 젊고 새로운 무당을 보며 지금의 문수처럼 질투와 패배감에 젖을 것이다.


누가 진짜이고 누가 가짜인가를 따지는 그들의 싸움이 내게는 덧없게만 느껴졌다. 문수도, 신애기도 '시간'이라는 거대한 시스템 안에서 잠시 반짝이다 사라질 소모품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를 비웃고 무시하지만, 그들은 결국 같은 길을 걷고 있는 동행자이자 시간차를 둔 동일인이다.


'혼모노'라는 역설


작가는 제목을 '혼모노(진짜)'라고 지었지만, 책을 덮고 나면 그 단어는 지독한 반어법으로 남는다.

이 세상에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짜'는 없다. 오직 "모든 것은 변하고, 언젠가 끝난다"는 사실만이 유일한 '혼모노'일 것이다.


이 소설은 무당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한때 빛났으나 이제는 저물어가는,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빛나고 있지만 곧 저물게 될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나는 문수처럼 파멸할 것인가, 아니면 흐름을 인정하고 다르게 살아남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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