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긁어줘’.
밤에 잠들기 전 매일 남편이 하는 말. 짜증 난다. 그리고 내가 브런치를 쓰고 내 할 일을 하는 것도 남편이 코 골며 잠든 시각 이후라는 걸. 지금도.
나는 자녀가 없지만 늘 ‘육아퇴근’하는 기분으로 산다. 일단 남편을 먼저 재우고, ‘안아주지도 않고 ‘ 하며 삐진 남편을 달래주고 토닥여주다가 재우고 그제야 내 할 일을 한다. 가끔 주변에서 예를 들어 아들을 2명 키우고 있다고 하면 ‘한 명은 아들, 한 명은 남편’ 임을 비유하는 것을 봤는데, 왜 인지 알 것만 같다.
남편은 매일 밤 등을 긁어달라고 한다. 나와는 정말 다르게 아토피성 예민한 피부라 가려움을 잘 느끼는 것 같다. 한두 번이여야지 하도 그러니까 이젠 규칙도 정했다. 일요일만 긁어주기로. 그럼 남편은 이렇게 대꾸한다. ‘일요일 거 땡겨서 오늘 긁어줘.‘ oh my god. 벅벅 뻘게진 등을 긁고 있는 건 마치 자해행위와 같아 보여서 차마 내 눈뜨고 못 긁어준다. 나는 남편을 사랑하니까. 그런데 남편은 시원하게 그거 하나 못 긁어주냐고 한다. 하. 이게 원하는 거 안 사준다고 조르고 떼쓰는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심정일까?
흔히들, 자녀를 양육할 때 ‘생각의자‘를 사용한다고 한다. 생각하는 의자에 앉아서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그거 우리 집도 있다.
‘생각베개‘
남편은 희한하게 여태 가만히 있다가 베개에 머리 대고 누워서 잘라치면 ‘근데 있잖아, 아까 그땐 왜 그렇게 말한 거야? 우리 대화 좀 해.’라고 한다. 나는 ‘갑자기 뭐야? 아까 말하지 여태 그거 맘에 담아뒀어?’ 라며 반문한다. 베개에 머리만 대면 그날 일이 주마등처럼 지나가는 것 같다. 이 남자 뒤끝 좀 심하네.
가끔 ‘웃참’도 한다. 서로 누워서 마주 보고 ‘웃음 참기 내기’. 먼저 웃는 사람이 지는 거다. 가끔은 정정당당하지 못한 게임 규칙에 억울할 때도 있지만, 그렇게 웃다 잠들 때도 종종 있다.
그래도 가끔은 뒤끝 심하고, 자꾸 귀찮게 하고, 웃참 내기에서 정정당당하지 못한 반칙을 하는 남편이 흔히 말해 ‘킹 받기’도 하지만 배울 점이 많다.
특히 ‘생각베개’는 감정을 정리하고 그날 있었던 이런저런 일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차분한 시간이 된다. 나는 어떤 상황에서 감정이 올라오면 그 즉시 말하고 감정을 표현한다. 그래서 감정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순화되지 않은 말로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나의 감정을 통제하지 못할 때가 있다. 대신 그렇게 다 풀고 더 이상 맘에 담아두지는 않는다.
하지만 남편은, ‘감정’이 올라오는 상황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더 이상 싸움으로 번지지 않게끔 정리한다. 그리고 나중 가서 시간이 흘러 너도, 나도 나름 감정이 정리되고 ‘차분한’ 상황일 때 조심스레 다시 되짚는다. 그러면 나도 한결, 정리된 감정으로 다시 대화를 해나가며 그날 일을 기분 좋게 푼다.
그렇게 신혼부부의 밤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