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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p May 25. 2023

그렇게 사는 게 싫어 난.

곰과 여우가 살아가는 법

나는 다 좋은데 그렇게 사는 게 싫어. 뭘 그렇게 사? 또 사? 그만 사.


남편이 자주 하는 말이다. 근데 억울하다. 나는 진짜 필요한 걸 사는 거다. 나는 우리 집 삼돌이와 함께 지낸다. 삼돌이라 함은, 짠돌이, 삐돌이, 곰돌이 같은 남편을 일컫는 말이다. 내가 본 남자 중에 가장 짠돌이고 가장 삐돌이고 가장 곰돌이 같이 생겼다. 귀엽긴 한데 가끔 짜증 난다. 가끔 짜증 나는데 웃긴다. 그렇게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인질을 붙잡고 인질의 머리에 총을 겨누며 상대방을 제압한다. 나는 핸드폰 화면에 ‘구매하기’ 버튼을 보여주며 남편을 제압한다. ‘자꾸 그렇게 하면 나 이거 구매하기 버튼 누르는 수가 있어’라고 엄포를 둔다. 동시에 남편이 제일 ‘버튼’ 눌리는 포인트가 어떤 것을 소비하는 행위다.


헌데, 한 가지 억울한 것은 내가 어떤 것을 소비해서 사들여 놓으면 누구보다 잘 애용하는 사람이 남편이다. 아니 뭐라 할 땐 언제고? 특히 먹는 것에서는 뒤지지 않는다. 안 샀으면 어쩔 뻔했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로 그게 건강식품이든 무엇이든 앞장서서 잘 챙겨 먹는다. 처음에는 어떤 건지 잘 들어보지도 않고 뭔지도 모르면서 ‘안 사, 안 먹어, 안돼, 사지 마 ‘가 자동응답기처럼 말하는 남편이다. 하지만 나도 쉬운 상대는 아니다. 답정너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사버린다. 그래도 꽤나 내 선택들이 합리적이었는지 그래도 뭘 사두면 남편도 만족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제는 이 짠돌이+곰돌이 같은 사람을 컨트롤하는 요령이 생겼다. 일단 이 짠돌이 아니 남편 앞에서는 논리적인 상술 화법  ‘이게 뭐에 좋대, 이게 원가가 얼만데 지금 이만큼 세일한대’라고 설명하는 것은 통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산다. 물론 많이는 아니고 조금만. 그렇게 사서 직접 보여주고, 입혀주고, 먹여주면 만족해한다. 그다음은 마음이 풀려서 ‘오? 괜찮은데? 이거 얼마야? 좋네~’라는 반응이 나온다. 그렇다. 생각보다 단순하고 다루기 쉽다. 물론 여기서 전제는 나부터도 ‘무턱대고 쓸데없이 많은 것을 사두고 그것을 활용하지 않고 버려두는’ 행위를 하지는 않는다. 나 진짜 하나를 사도 제대로 사는 사람 맞다니까. 그 ‘하나’마저도 사기 싫은 남편이랑 살아서 그렇지.


돈의 취향과 이 ’ 돈을 다루는 결‘이 조금 어쩌면 많이 다른 우리지만 티격태격하면서도 곰처럼, 여우처럼 상황을 잘 대처해 나간다. 상대방이 곰 같으면 내가 여우같이 행동하고 상대방이 여우 같으면 곰 같이 행동해 보자. 자꾸 서로 안 맞는 것에 다투고 에너지 낭비할 것 없이 서로를 잘 길들이는 연습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보다 잘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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