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에 했던 라식 수술이 수명이 다한 건지,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 둘 다겠지. 매일 먹는 유산균 통을 멀리 떨어뜨려야 겨우 보인다. 각도를 바꾸고, 눈을 찡그려도 그러하다.잘보려고 더 멀리 떨어뜨려보려고 해도 팔이 더 길어질 리가 없으니 난감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불안해서 뜨개질에 지나치게 몰두한 탓에 시기가 당겨진 것도 같다. 미국에 왔던 첫해, 크리스마스 즈음, 산타얼굴 오너먼트를 코바늘로 떠서 페이스북 마켓플레이스에 올려봤다. 처음엔 주문이 세 개, 그다음엔 여섯 개, 그리고 열 개... 그들의주목에 신이 났다. 한꺼번에 16개를 주문받았던 날은 밤을 꼬박 새웠다. 그렇게 약 2주 동안 100여 개를 팔았다. 그해 연말 그 돈으로 라스베이거스에 있는 이름난 뷔페에서 한턱 쏠 때까지도 긴가 민가 했었다.
그 이후부터였던 것 같다. 라면을 먹는데, 입안으로 들어가는 면발이 입으로 다가올수록 흐릿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멀리 떨구면 보이고, 입안으로 들어가기 직전엔 흐릿하고.
그리하여'돋보기안경 aka Reading Glasses'을 한 세트 구입했다.
그런데 한동안은 서랍 속에 넣어두었다. 다치지 않았지만 사 둔 한 상자의 반창고 옆에 고이. 젊음이 낡아가는 신호에 한동안 우울했다.
I need reading glasses.
그리고 시간이 흘러, 요즘엔 총 5개의 'Reading Glasses'가 손 닿는 곳마다 놓여있다. 라식수술을 한번 했던 눈이라 노안교정수술이 될지 어떨지도 모를 일이고, 이 불편을 외면하려니 미간에 내천자가 깊어질 판이 되어서였다. 그러면서왜 이걸 굳이 3개들이 세트로 팔았는지 알게 되었다. 손 닿는 곳마다 발 닿는 곳마다 필요하다.
가끔 스치듯 지나간 쌩쌩했던 쌩눈의 시간이 그리워 우울져지려고 하면 얼른 고개를 들어 창밖에 구름 갯수를세어본다. 그러면 좀 위로가 되기도 한다. 숲을 보는게 나무를 보는것보다 자연스러워졌다. 나무만 보지말고 숲을 보라며 안타까워하던 주변 어른들이여, 드디어 제가 말을 듣습니다. 그려.
"Yeah,I need reading glasses."
오랜만에 안경이다. 초등학교 6학년부터 사용했던 안경을 라식수술로 벗어던지고 자유를 찾았던 그날 이후로.
콧구멍을 짓누를 만큼 내리 낀 내 모습은 이걸 끼고 신문 사설을 꾹꾹 눌러읽던 우리 엄마랑 영락없이 같은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