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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A Nov 30. 2024

Living like a corpse

*읽은 책: The Stranger by Alberto Kamu

*읽은 기간: 11/1/24~11/15/24


I accuse the prisoner of behaving at his mother’s funeral in a way that showed he was already a criminal at heart.


뫼르소는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고 태연해보였다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가볍게 다루어진 듯 싶은 살인에 형량이 더해져 사형을 선고받는다.

내가 놀란 것은 살인 그 자체보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울지 않은 것에 사람들의 비난이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몰고 가는 검사에 의해서 아주 쉬이.

장례식에 자주 가 본 것은 아니지만, 실은 나도 장례식장에 갈 때면 슬픔의 적당량을 몰라 그 공간에 있는 자체에 어려움을 느낀다. 앞에 놓인 육개장국물이 얼마나 슬퍼보여야하는지, 한켠에서 통곡하는 저이의 고통에 공감하는 내 마음이 적당한지, 이런 저런 생각과 눈치에 배가 고파지면 편육 한 접시를 추가하곤 한다. 물론 나는 부모님의 장례식장에 서있는 상상만으로도 두렵고 슬프고 무섭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뫼르소의 그 태도를 평가하고 입 털 잣대를 가지고 있지 않다.


As a student I’d had plenty of ambition of the kind he meant. But, when I had to drop my studies, I very soon realized all that was pretty futile.


뫼르소는 상사로부터 모두가 환영할 만한 좋은 기회라며 파리 근무를 추천받지만, 전에도 그런 기회가 있었고 그런 기회를 취해보기도 했지만 그 전후가 별 다를바 없었다며 거절한다.


Suppose another girl had asked you to marry her—I mean, a girl you liked in the same way as you like me—would you have said ‘Yes’ to her, too?

Naturally.


그리고, 결혼하자는 Marie에게 사랑하지는 않지만 누구와라도 결혼은 할 수 있다며 청혼을 받아들인다.


모두가 'Yes'라고 할때 'No'라고 하는 소신을 가지는 것조차 광고에 사용되며 소신을 챙기는 것조차 유행처럼 되었을때가 있었다. 지드래곤이 'One of a kind'를 노래할 때도, 입으로는 'One of a kind'를 부르면서 지드래곤이 하는 모든 것을 따라할 때도 있었다. 소신은 있어보이고 싶고, 고립은 되고 싶지 않고..

그것을 수용하기에 아직 우리 사회는 덜 성숙하다.

안타깝게도 아직도, 뫼르소.


I pointed out that the former had condemned me. Yes, he agreed, but it hadn’t absolved me from my sin. I told him that I wasn’t conscious of any “sin”; all I knew was that I’d been guilty of a criminal offense. Well, I was paying the penalty of that offense, and no one had the right to expect anything more of me.


'하나님께 고백할 죄는 없어요. 법적인 책임을 져야하는 죄만 있고요.'

나는 이 부분을 몇번이나 반복해서 읽었다. 무슨 말인가? 이게 무슨 말인가 말이다. 진짜.

나는 이걸 죄로 여기지 않지만, 형사상으로는 죄라고 하니 형사상 처벌은 받는다. 하지만 하나님이 씻어 줄 원죄로써는 인정하지 않는다. 냐하면, 나는 그저 햇볕이 너무 강렬해서 그렇게 하고 싶다 느꼈을 뿐이었으니까.


내내 응원하던 마음이 혼란해졌다. 열어놓은 마음으로 들어온 구정물같은 느낌.


다 쿨하고 멋지고 하다가, 마지막에 뜨악했던 장면이다. 뭉친 실을 풀어놓은 책들을 읽고 쉬운 말들에 익숙해진 머릿 속이 고전으로 인해 다시 엉킨 실타래가 된다.


생의 마지막날까지 자기자신의 손을 놓지 않으려던 뫼르소.


허겁지겁 여기 맞추고 저기 맞추고 살다가 문득 뒤돌아보니, 저 멀리에 떨구고 온 내가 있다. 너무 멀리 있어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다시 돌아가면, 나는 다시 내가 될 수 있나. 나이를 먹어도 스무살에 치던 물음표, '나'를 찾고 싶은 나는 그대로다. 물음표를 든 채로, 하늘로 타고 올라가버린 헬륨풍선보다 잡기 어렵고 찾기 어려운 나를 찾는다고, 오늘은 바쁘니까 내일부터, 오늘은 이것부터 처리하고 내일부터 하며 미루면서 오늘까지 왔다. 꼬깃꼬깃 접히고 잘리고 찢겨서 다시 펼쳐도 원래 어떤 모양이였는지 알 수가 없는 나. 시간을 타고 타고 올라가서 초등학교시절 정도까지 가면 내가 있으려나. 셋방살던 시절, 겨울 찬바람에 방에서도 얼굴이 바알갛던 네 살이던 나에게 물으면 알까.


뮈르소는 정말 그가 살고자 하는대로 살았나.

단두대에 처형되는 그날을 상상하면서, 두려워하는 그때에도 그는 그였나.

결혼하자는 여자를 사랑하지 않음으로 그는 그를 유지했나.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하품을 하면서 그는 그를 잃지 않았나.

다른 이들이 죄라고 부르는 것을 내가 죄라 하지 않으면 죄가 안되나.

나로 살다가는 것과 나로 살다가는 이기심을 부리는 것과 부조리와 싸우는 것과 싸우다 내가 부조리가 되어버리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것인가.

가 하고 싶은 일이 뭔지 모르게 되어 버린 것을 누구 탓을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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