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22일 차
오늘 남편이 9일 일정으로 한국에 들어온다. 한국을 떠난 지 여섯 해 만이다.
아빠는 또 새벽에 도착하는 사위를 마중나가시겠다며 고집을 부리신다.
고단하실테니 버스타고 오라고 하면 된다고 말씀드렸지만, 너만 마중 나간다고 사위가 섭섭해한다시며 신발장 위에 가지런히 놓인 베레모들 중 두 번째 것을 집어 꾹 눌러쓰고는 현관문을 열고 나서신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아빠의 베레모 꼭지를 바라본다. 연한 회색의 잔잔한 격자무늬의 베레모 아래로 새하얀 머리, 그 아래 짙게 주름진 목, 가슴 쪽보다 몸통색이 더 짙은색으로 배색되어, 날씬해 보인다고 칭찬 들으신 후 매우 즐겨 입으시는 바람막이 재킷, 그리고 스케쳐스 운동화...
문득, 내가 어릴 때 이렇게 아빠를 오랫동안 지켜본 일이 있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
국민학교 2학년 때-로 기억하지만, 아닐지도 모르겠다.-, 불우이웃 돕기 성금모금운동을 하는 친구를 따라다니느라 저녁시간이 훌쩍 지나도록 연락도 없이-아니, 연락할 길 없이-귀가가 늦었던 날이 있다. 그날 저녁 나는 아빠한테 무척 맞았다. 그리고 많이 울었다. 울다 잠이 들었다.
말썽을 부리는 건 동생이었고, 혼나는 것도 동생인 줄만 알았던 나에게는, 맞았다는 사실이 큰 사건이었다. 그전에도, 그 후에도 그렇게 맞은 적이 없다. 뉴스를 매일 보시는 부모님께는 소식 없는 늦은 귀가가 꽤 무서운 일이었음을 한참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다음날 아빠가 내 허벅지에 생긴 맷자국에 연고를 발라주셨다는 말을 엄마한테 들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폰게임하면서 20만 원 정도를 허락 없이 결제했을 때에도 그날의 아빠처럼 매를 들었고, 아빠처럼 밤새 아이의 종아리를 어루만졌다. 그리고 다시는 매를 들지 않았다. 그날 아빠의 마음도 나와 같았을까.
내 생일날, 11층 베란다에서 내려다보니 아파트 입구로 들어서는 아빠 손에 뭔가가 들려있다.
아빠 뭐예요?
미니주방세트!
아니, 그거 말고 바비인형이 좋은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아빠는 발길을 돌려 선물을 교환해 오셨다. 철이 좀 들고 나서 이불킥을 하게 하는 장면이다. 퇴근길의 그 고단함을 알게 되었기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그 수고로움을 알게 되었기에. 무엇보다 부모도 상처받는다는 걸 내가 부모가 되어 알게 되었기에.
필름 카메라 시절, 아빠는 사진을 찍고, 현상하고, 사진들을 함께 보며, 앨범에 차곡차곡 정리하는 일에 정성을 쏟으셨다. 명예퇴직을 하시고, 퇴직금으로 시작한 일이 큰 빚을 남기고, 그때 진 빚으로 오랫동안 빚을 갚느라, 초보 성인이 된 자식들의 방황을 함께 하느라 정신없이 사는 동안 필름이 필요없는 디지털 카메라를 장착한 스마트폰이 생겼다. 아빠와 함께 다니는 여행에는 아빠가 구석구석 찍은 사진이 넘쳐난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지 아니하는 남편과 아들덕에, 그들과 다닐땐 내 사진이 별로 없는데 한국에 오면 내 사진이 아빠 덕분에 넘쳐난다.
드라마 '폭삭 속았수다'에 나왔던 관식이처럼, 아빠에게도 꾹꾹 눌러 담아놓은 좋아하는 일들이 있을것이다.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어릴 때 꿈이 무엇이었는지, 살면서 언제 제일 행복했는지, 언제 제일 슬펐는지, 힘들었는지, 속상했는지, 그럴 땐 어떻게 했는지... 와 같은 질문에 나는 답을 잘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빠도 그러하다. 그래서 시간이 나는대로 이런 질문들을 아빠한테 드린다. 이제라도, 아빠가 아빠 자신을 더 돌보시길 바라면서.
부모가 '완성품'이라고 생각했던 어렸던 내가, 그날 부모의 나이가 되어있다.
그리고 나에게도 그날, 그 나이의 자녀가 있다.
이젠 내가 당신의 그날의 마음을 이해하노라고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이, 영종대교를 넘어가는 시간, 새벽녘 어둑했던 길이 밝아온다.
공항 마중 전문가가 된 아빠가 능숙하게 도착안내 표지판을 따라 공항 주차장으로 들어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