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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08. 2020

E04. 오랜만에 크롭탑을 꺼내 입었다.


"하이고. 이걸 워따 써먹을라고. 이렇게 짧은 걸 우쯔케 입는데? 요즘 이게 유행인가벼? 껄껄."

"헤헤헤. 그런가 봐요."

"원하는 만큼 줄여놓긴 했는데, 입고 다닐 수 있을랑가."

"헤헤헤. 얼마에요?"

"삼천원만 줘."

"여기요. 사장님 또 올게요!"


운동할 때 입을 나시가 필요해 아디다스 탱크탑을 샀다. 여러모로 딱 이었다. 세 갈래 불꽃 모양이 정 가운데 위치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고, 흰 바탕에 파란색 adidas 로고도 마음에 든다. 꼬까옷 입고 운동할 생각에 신이 난다. 다만 하나가 거슬린다.  티가 너무 길다. 엉덩이까지 길게 늘어졌다. 타고난 비율의 사람이라면 무엇을 걸쳐도 찰떡같이 소화해 냈을 테다. 그러나 그게 나는 아니다. 몸 전체가 짧은 탓에 엉덩이 지나 허벅지 일부마저 가릴 가능성도 있다. 그럼 나의 짧음이 강조될 테다. 거울에 비친 나를 보는 일이 괴로워질 테다. 도망가고 싶을 테다.


잘라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허벅지 언저리가 아니라, 여기까지가 내 상체라는 것을 알려야겠다. 그럼 어디까지가 내 상체인가. 허리의 기준은 수선집 단골인 내가 정하는 것이기에 또 다른 고민을 한다. 배꼽 아래, 아님 적당히 배꼽 위. 수선집 사장님께 의사를 밝다. "사장님 이만큼 잘라 주세욧!"



자신 몸을 보아야 한다. 실루엣 그대로 드러날만큼 타이트하거나 살이 보일만큼 짧은, 거의 걸친 수준의 운동복을 입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게다가 나름의 다이어트 효과까지 있어 운동 시작하는 열이면 열에게 비싸지 않은 운동복 살 것을 권한다. 나시 사 입고 어깨 운동하는 이유다.


뱃구리까지 간당간당하게 보이기로 했다. 아주 얼핏 복근 확인도 가능할 거 같기 때문이다. 근육 결이 드러나는 기쁨을 눈으로 보고 싶기도 다. 따라서 배꼽 위, 밑단 접어 옷핀으로 표시를 한다. 수선집 아저씨와 소통에 오해란 없도록 명확히 표현한다. 내가 정한 마지노선 보다 조금 더 짧아져 헬스장 나를 난감하게 하거나, 그보다 조금 더 길어져 나를 추레하게 해서는 안 될 일이다.


오랜만에 아디다스 크롭탑을 꺼내 입었다. 오늘은 어깨 운동하는 날이다. 어제는 퇴근 후 교촌 매콤&허니 반반에 맥주를 곁들였다. 과식한 다음 날이면 보통 노출 있는 옷은 피하게 되지만 오늘은 예외다. 브라탑 위에 손바닥만한 크롭탑 하나를 걸쳐 입는다. 이 작은 걸, 우쯔케 입었다. 사이사이가 -하다. 초등학교 1학년, 아랫니 윗니 빠져있던 때 처럼 뚫린 공간으로 바람이 인다. 급 쌀쌀해진 공기에 겨드랑이와 배꼽이 시리다.


그러나 이내 달아오를 것을 안다. 운동의 열기로 가을의 추위쯤 이겨 낼거라 믿는다.


오랜만에 크롭티 꺼내 입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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