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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은경 Oct 09. 2020

E05. 라면 2개, 김밥 1줄 +a

지금은 이렇게 못 먹지만염@.,@


전례 없던 식욕이 생기고 있다.

엔진 사용이 늘며 연료 소모량이 증가한다. 넣어 준지 얼마 지나지 않은 것 같은데 주유계가 깜빡인다. 배가 고프다. 점심 먹은지 3시간이나 지났나. 눈치없이 꼬륵 대는 뱃떼기에 내가 다 민망하다.


운동 전에는 식이를 통한 다이어트 강박에 벗어나지 못했다.

내 나이대 여자애들 해본다는 식이요법은 대부분 따라해 본것 같다. 원푸드, 1일 1식, 덴마크 다욧. 강냉이만 먹고 하루를 버텨본 적도 있고, 오후 6시 전을 기준으로 폭식과 절식을 반복했던 경험도 있다. 씹어 삼키면 아주 큰일나는 줄로 알았다. 먹는 일이 공포였겠다. 살이 찔 거라는 두려움은 결국 강박을 만들어만남을 자제하기에 이다. 약속은 보통 식당에서 이루어지니까. 사람 단절, 여기까지는 의지로 가능했는지 모른다. 다만 의지는 한정 자원이라 밤이 되면 고갈. 다짐했던 금식을 어기고 밤 12시, 부엌으로 기어 들어가 냉동 만두 꺼내먹는 건 그때문이다.


과식과 절식, 폭식과 금식을 반복하며 1년 후에도 내 겉 몸은 그대로였다. 속 몸은 1년 전에 비해 더 나빠졌는데, '지방간이 늘어 식단 조절 할 필요가 있다'1년간 식단 조절만 해온 내게 의사가 전했다. 음식 앞 불필요한 죄책감과 지방간만이 내게 남았다.



운동 후 집에 와 늦은 저녁을 차린다.

라면 1개와 김밥 1줄만 먹기로 샤워할 때 이미 정했다. 밤 8시, 곧 자야하니까. 냄비를 올린다. 물이 보글보글 끓기 시작하면 라면 한 봉지 꺼내 반으로 쪼개 넣는다. 후레이크와 스프도 탈탈 털어놓고 익기만을 기다린다. 라면을 서성인다. 한 번 휘적, 다시 한 번 휘적. 내가 돕는 행위가 라면을 빨리 익게 할 것 같다. 그 사이 식탁엔 김밥 한 줄이 차려진다. 오는 길에 편의점 들러 사온 불고기 김밥이다. 리고 라면이 익었다. 푹 퍼진 면 보다 꼬들꼬들한 면을 선호하므로, 이만하면 됐다. 작은 설렘이 기다린다. 라면 1개와 김밥 1줄, 엄마가 보낸 김치 조각이 한상을 차린다.


흡입이라는 게 있다면 5분 전 내가 보인 모습일테다. 라면 1개와 김밥 1줄, 가장 보편적이라는 free 사이즈의 위를 가진 자라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그러나 땀 흘리고 온 나는 좀 다르다. 허기가 가시질 않는다. 내시경으로 꿰뚠다면 20%나 찼을까. 내적갈등을 한다. 끓일까, 말까. 대단히 사소한 고민을 대단히 심각하게 한다. 에라잇. 한 번뿐인 인생, 하고 싶은 건 다 하고 살기로 한다. 라면 물을 한 번 더 올린다. 그리고 두번째 라면을 맞이한다.



위에 문제가 생겼다.

라면 2개와 김밥 1줄로 성에 차지 않는다. 밥 반 공기를 후식 삼아 말아야 겠다. 과감히 반을 덜어 국물에 담근다. 예전의 나라면 쌀 한톨에 겁이나 갯수를 헤아려 가며 먹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운동 후의 나는 다르다. 강박이란 없어지고, 끼니의 즐거움만 고스란히 가져간다. 오늘의 운동은 라면 2개와 김밥 1줄, 공기밥 반 공기로 마무리 한다. 먹어치운 음식에 섬뜩하긴 하다.


그러나 배 부름이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먹고도 기분 나쁘던 그때와 다르다. 언짢음이란 없어 소화마저 잘 될 테다. 누가 그랬다. "마쉿게 머그면 0 칼로뤼에요. 안녕하세요, 췌화정이에요." 지방량은 어제나 오늘이 같을 것이다. 허나 근육은 늘어 있겠다. 근육돼지는 생각보다 되기 힘든 일이다. 근육이 지방을 잡아 먹을테니.


잠이 솔솔 온다. 배고픔에 잠 못 이루던 그때란 없다.

강박이 사라지고, 즐거움이 남는다.

점차 지방은 거두어지고, 근육이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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